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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구오 Mar 21. 2023

제주일지 prologue

왜 제주도 한 달 살기를 하게 됐는가

       제주도에 온 것은 즉흥적인 결정이 아니었다. 가까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21살 즈음이었다. 나는 대학 동기인 W 누나에게 여느 대학생들이나 가지고 있을 법한 고민을 털어놓고 있었다. 그게 무슨 고민이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당시의 내가 입대에 대한 두려움과 대2병에 완전히 짓눌려 있던 상태였던 것은 확실히 기억난다. 그런 나에게 W 누나는 ‘전역하면 게스트하우스 스텝을 해보라’는 조언을 날렸다. 누나의 말은 즉, 본인이 제주도에서 게스트하우스 스텝을 하면서 정말 다양한 사람을 만났고, 그게 지금의 나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얘기였다. 무척 신통방통한 조언이었으나, 그 당시의 나에게 ‘전역’이라는 것은 절대 오지 않을 그것과 같았기 때문에 그 말을 잠시 잊고 살았다.


        <나홀로 군산> 시리즈에서 등장했던 소대장님과의 대화 이후에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닫는다. 내 세상이 너무 좁았다는 것이었다. 오로지 전역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거라 생각했지만, (그리고 일부 문제는 실제로 해결됐지만,) 정말 전역을 한다면 그 이후에는 뚜렷한 목표를 잃어버린 채로 살아가게 될 것 같았다. 나는 문득 다른 이들의 가치관에 대해서 더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는 지금의 나에게 새로운 목표 설정을 향한 원동력을 줄 거 같았다. 그 순간 W 누나의 말이 떠올랐다. 그래서 아, 제주도에서 한 달을 살아야겠다, 라고 결심하게 됐다. 군산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말이다.


       사실 목적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었기 때문에, 행선지가 꼭 제주도일 필요는 없었다. 게다가 나는 제주도에 큰 관심이 있지도 않았다. 내가 알던 정보는 제주시와 서귀포시로 나눠져 있다는 사실 정도? 살면서 제주도에 두 번 정도 와 보기는 했는데, 그렇게 썩 인상깊은 추억들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제주도에 오게 된 이유는 게스트하우스 스텝 자리를 구하는 일이 수월하기 때문이었던 게 큰 것 같다. 그렇다고 간단하게 스텝 자리를 얻게 된 것은 아닌데, 네다섯 군데를 지원했지만 합격 연락이 오지 않았다. 순진했던 나는 ‘고민해보고 연락 주겠다’는 대답이 완곡한 거절의 표현인 줄 모르고 기다리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렇게 찾아온 2월 마지막 주, 진짜 마지막으로 지원해보고 안되면 그냥 인천에서 아르바이트나 구하겠다는 심정으로 지원서를 보낸 게스트하우스에서 연락이 왔다. 그렇게 나는 3월을 제주도에서 보내게 됐다.


       지금은 제주시 어느 카페에 앉아 이 프롤로그를 쓰고 있다. 이 짧은 시간에 내가 원하던 대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그것은 이상적인 경험이 될 때도, 그렇지 않은 경험일 때도 있었다. 어쨌든 제주도에서 어떻게 살았는가에 대한 시리즈를 연재해보려 한다. 돈을 아끼려 굶고, 걸을 수 있을 때까지 걷는 그런 여행 기록이 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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