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칼럼인 ‘Part 1 – 애증의 미일관계’ 에서는 미국자본과 일본의 관계, 그리고 일본의 반도체 산업의 흥망에 대해서 다루었다. 이번 칼럼에서는 미국 영내를 벗어난 달러들이 어디를 향하는지에 관해서 다루어 보고자 한다.
‘아편전쟁‘은 동양 vs 서양 최초의 충돌이었다. 영국은 청나라의 도자기, 비단, 차 등을 수입하면서 ‘은화’가 중국으로 대량유출(광저우)이 되었고, 이러한 무역/경제 불균형을 타개하기 위하여 인도에서 생성된 ‘아편’을 중국에 싸게 팔았다. 철저히 준비한 영국은 2차례의 아편전쟁에서 청나라를 꺾어버린다. 이후, 서양의 동양에 대한 우위가 계속되었다. 아편전쟁 당시의 ‘은화’는 지금 시대의 ‘달러’라고 할 수 있다. 1971년 닉슨 쇼크에 의해서 금본위제가 막을 내렸고, 이후 ‘달러’는 그 자체가 ‘돈’을 의미하는 상징이 되었다.
1. 돈은 상품과 교환되어 흐른다.
반도체는 아편전쟁 전후의 ‘도자기, 비단, 차’와 같은 지위의 상품이다. 반도체에 의해서 ‘은화’와 같은 역할의 ‘달러’가 움직인다. 상품과 화폐의 교환은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가장 중요한 ‘유동성’을 의미한다. 1980년대까지 메모리와 비메모리 반도체 생산을 모두 책임지던 일본은 1986년 미일 반도체협정 이후, 1990년대부터 반도체 산업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미국자본이 그것을 원했기 때문이라는 설명 외에는 특별히 설명할 방법이 없다. 이후, 비메모리의 생산은 '대만', 메모리의 생산은 '대한민국'으로 이전되었기 때문에, 1988년 올림픽 이후 달러의 흐름이 대한민국과 대만을 향하게 되었다. 설계는 다르지만, 반도체를 만드는 방법은 메모리와 비메모리가 전체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왜 ‘한국=메모리’, ‘대만=비메모리’일까? ‘미국자본’은 대한민국에게 ‘변수’가 아닌 '상수'라는 말은 우리나라의 경제적 발전의 근간을 이루는 명제라고 생각된다.
플라자 협정은 미일 반도체 협정의 1년 전인 1985년에 체결되었고, 우리나라와 대만에 산업적으로 어마어마한 기회를 제공했다. 엔화에 대비하여 달러의 가치를 50% 떨어트렸기 때문에, 일본 상품들은 미국에서 2배로 비싸졌다. 1985년부터 1995년 사이에 일본제품을 대체할 제품공급처가 필요했고, 메모리는 한국, 비메모리는 대만에서 생산되기 시작했다. 미국자본에서 Plan B였던 한국은 생각보다 다양한 분야의 원가절감 기술개발에 능한 나라였고, 가전, 컴퓨터, 휴대폰, 스마트폰의 생산과 수출이 증가했다.
미국자본은 그 사이 또다른 플랜C로서의 중국을 육성시켰고, 심천, 광저우 등에서 저렴하고 좋은 물건들을 만들어 미국으로 수출했다. 이러한 동북아시아산 상품들은 미국 물가 안정에 상당히 도움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달러 화폐 발행량의 여유를 불러왔다. 상품이 미국을 향하는 동시에, 달러는 동북아시아를 향했고, 동북아시아로 들어간 달러는 상당수가 미국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2.달러의 소각
우리나라 상법 제343조 제1항 단서규정에 의하면 주식회사의 ‘주식’은 이사회 결의로 소각될 수 있다. 발행주식의 총수만 감소하고, 자본금의 감소는 없기 때문에, 1주당 가치가 오른다. ‘달러의 가치’를 방어하기 위해서 ‘달러가 소각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미국 연준의 이코노미스트들은 1995년 말 기준, 달러의 미국 밖 사용 비율이 총 달러 발행량의 55~70%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Porter&Judson 1996). 그들은 또한 새로 발행하는 달러 발행액의 경우에는 약 75%가 외국에서 유통되는 것으로 추정했다.
재미있게 본 Netflix의 ‘나르코스’ 시리즈를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미국은 콜롬비아, 멕시코의 마약상들의 정보를 진작에 알고 있었고, 쉽게 잡을 수 있는데, 왜 엄청난 달러 부자가 된 뒤에 잡을까?.‘ 이상했다. 추측건데, 충분한 양의 달러가 미국 밖으로 나가고, 중남미의 마약카르텔들이 땅에 묻으면, 그때 정리절차(?)를 진행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달러가 ‘소각’되면, 달러의 가치방어에 도움이 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발생이나, 코로나 사태 또는 리먼브라더스 사태가 발생하면서 우리는 ‘시가촉액 수십조원이 증발’했다는 뉴스를 듣는다. 또한, 암호화폐 루나-테라가 사라지면서 ‘그 그릇에 담긴 달러는 어디로 갔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중간에 매매를 통해서 돈을 버는 사람들은 있으나, 결국 사라지면 0이 된다. 시총증발이나 코인폭락 등에 의해서 달러가 소각되면서, 달러의 가치가 방어되는게 아닐까?
마지막으로, 한국, 대만, 일본, 중국에서 수출된 상품들은 ‘달러’로 교환된다. 이러한 달러들은 한국, 대만, 일본, 중국으로 향하고, 삼성전자, 하이닉스 등의 기업에 의해서 ‘원화’로 직원들의 인건비 및 협력사들의 거래대금으로 간다. 남는 돈은 한국의 시중은행들에게 맡겨진다.
3. 한국에 쌓이는 달러의 부작용
앞선 두 사례에서 볼 수 있듯, 미국 영토 밖으로 나가서 돌아오지 않는 달러는 미국자본 입장에서는 ‘달러의 소각’이다. 동북아시아 기업들이 저렴하고 좋은 물건을 수출하면, 달러는 미국 밖으로 나가서 각 국가에서 돌게 된다.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엄청난 속도로 성장한 일본에는 달러화가 많이 축적되었고, 그것으로 미국 국채만 아니라 미국 부동산도 대량으로 매입했다. 지금도 하와이, 시애틀 부동산의 상당수를 일본인들이 소유하고 있고, 일본기업들의 해외 부동산 보유량도 상당하다. 해외현지에 현지법인을 설립하거나, 현지 기업을 인수한 일본들의 수는 그 수를 세기도 어렵다. 일본과 가장 가까운 한국에도 일본기업들의 자회사들이 많다. 도레이 첨단소재, 스미토모화학 등의 경우 한국 반도체, 디스플레이, 스마트폰 제조에 없어서는 안될 소재를 제공하는 회사들이다. 이렇게 일본은 보유하게 된 달러를 해외에 적극적으로 투자하여, 그나마 30년간의 불황을 버티는 힘이 되었다.
하지만, 우리나라로 유입된 달러화는 국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적극적인 해외투자보다는 급여와 은행대출로 부동산에 적재되고 있다. 미국으로부터 유입된 달러가 ‘원화’라는 옷으로 갈아입는 순간은 수출기업이 노동자들에게 인건비를 제공하거나, 이익잉여금을 은행에 저축하면서 이루어진다. 그 돈으로 개인들은 부동산을 구입하며, 법인들도 부동산을 구입한다. 한국으로 유입된 달러는 계속 한국내에서 자산의 가격을 올리는데 사용되면서 부동산 가격상승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돈이 돌지 않으면, 그 나라의 자본주의 시스템은 심각한 문제에 봉착하게 되며, 우리나라 부동산 가격상승은 그 부작용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수출로 획득한 외화는 국민소득을 상승시키고, 경제적/문화적 수준을 높인다. 달러를 대신할 ‘돈’은 아직 없기 때문에 역시나 수출이 중요하다. 하지만, 국가적 해외투자 전략이 수행되지 않으면, 우리나라에 들어온 달러는 한국의 부동산에 계속 적체되어 미국자본이 좋아하는 ‘달러소각’ 현상에 일조하는 역할에 머무르지 않을까 걱정된다.
마지막 시리즈인 미국자본과 대한민국의 전망 Part 3 에서는 반도체, 선박, 자동차 외에 우리가 앞으로 집중해야 할 산업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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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엄정한 파트너 변리사는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를 졸업하고 2006년 43기 변리사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유철현 변리사와 함께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직접 투자하는 ‘엑설러레이터형’ 특허사무소인 ‘특허법인 BLT’를 창업하였습니다. 기업진단, 비즈니스모델, 투자유치, 사업전략, 아이디어 전략 등의 다양한 업무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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