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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말 Feb 13. 2024

FC 도르마무

축구팀 이름을 이렇게 막 지어도 되는 것일까

우리 다시 그라운드로


드라마 미생 10화에서 나왔던 대사 중 '그래봤자 바둑, 그래도 바둑'이라는 대사가 있다. 바둑 명인 조치훈 9단께서 하신 말씀을 차용한 대사이다. 바둑 한 판 이기고 지는 거, '그래 봤자' 세상에 하등 영향력 없는 바둑. 세상 돌아가는 이치와 상관없이 나에겐 전부인, '그래도' 바둑.


축구란 운동이 참 그렇다. 남자라면 누구나 아주 어린 시절부터 축구를 접하게 된다. 공 하나에 22명이 뛰어놀 수 있는 효율적(?)인 놀이기도 하고 축구가 가지는 과격함은 성장기 차고 넘치는 에너지를 분출하기에 적합한 놀이니까. 게다가 규칙도 비교적 직관적이고 간단해 축구를 좋아하든 아니든, 잘하든 못하든 간에 친구들의 공놀이에 머리수를 채우기 위해서라도 축구를 접하게 되기 마련이다. 그렇게 하나둘 시나브로 축구의 매력에 젖어들어간다. 하지만 그랬던 축구가 나이를 먹고 점점 성인이 될수록 예전 같지 않아 지는 것이다. 공 하나에 22명이 뛰어놀 수 있었던 효율성이 마음 맞는 사람을 10명이나 모으고 상대팀까지 구해야 하는 비효율성으로 바뀌고 심장이 터져라 뛰고 차고 부딪히며 겪는 과격함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축구라는 운동은 나이가 들면서, 마치 대학생이 된 '앤디'에게 "잘 가, 파트너"라고 마지막 작별 인사를 남기는 '우디'처럼 우리에게 작별 인사를 남기는 듯 하다. 그래 봤자 축구.


그런데 말이다. 고알레 시절 찍은 몇 백 경기가 넘는 아마추어 축구에서, 2시간짜리 축구 트레이닝을 받기 위해 지방에서 서울까지 올라오는 그들의 눈빛에서 나는 그들의 축구에 대한 진심을 봤다. 그래 봤자 축구라며 다른 운동 종목을 찍어 먹어 보다가도 맥주 한 캔 마시며 손흥민의 유려한 감아차기를 지켜볼 때, 오랜만에 만난 동창과 소주 한잔 걸치고 들어간 PC방에서 피파 음료수 내기를 할 때마다 그라운드가 그리워 두 다리가 움찔하는 것이다. 세상 만사 신경 쓸 것 없이 그라운드 위에서 마음껏 뛰놀았던, 그래도 나의 축구.



멀리서 볼 것 없이 내가 그랬다. 고알레에서 나와 다른 일을 고민하다 결국 축구로 다시 귀결되더라. 그게 참 영락없이 '도.르.마.무'였다. 도르마무란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에서 압도적인 힘의 빌런에게 항복을 받아내기 위해 타임 스톤을 이용해서 끝없이 반복되는 시간을 만들어 낸 것에서 유래한 일종의 밈이다.  그렇게 'FC 도르마무'가 탄생했다(의외로 도르마무의 밈을 모르는 사람이 많아 유쾌한 마음으로 지은 팀 이름을 궁금해 하는 사람이 많더라. 'FC 윤회' 정도로 팀 이름을 했으면 어땠을까).


'에이 다 커서 무슨 축구야'라고 말하며 떠나가는 수많은 '앤디'들의 손을 잡고 돌려세우며 말해주고 싶었다.


'도르마무, 축구를 하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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