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때는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이 있으면 단칼에 쳐내는 편이었다.
일을 하더라도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으면 고민 뒤에 일을 접는 편이었고, 사람을 만나는 것에 있어서도 마음에 들지 않는 하나의 포인트가 있으면 면전에 대놓고 절교를 선언하기도 했다. 노래에 가사를 써도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으면 단칼에 쳐냈고, 그런 단칼에 쳐내는 나의 성격이 나의 모습을 정교하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관계로 인해 상처받는 사람들이 생긴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것 때문에 조금은 단칼에 인간관계를 쳐내는 것이 아닌 거리를 두며, 이 관계가 흐지부지 되기를 바랐다. 그렇게 세상을 살며 무언가 단언을 하는 경우가 없다 보니 나라는 자신을 명확하게 정의할 수 없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다. 내가 어떠한 주제에 대해 여러 가지 글을 쓰더라도 그 단어들이 단단하게 나를 고정시키는 나의 모습은 아니라는 뜻이다. 고향이나 전공과 1년에 대한 나의 생각들도 단칼에 썰어내지 않는 한, 언젠가 변할 수 있는 나의 단어들의 향연이다.
나이가 들면 결국 단칼이라는 표현을 잘 안 쓰게 된다. 어린 나이에 나는 만화에 나오는 캐릭터들이 딱 맞아떨어지는 성격이라 좋아했지만 지금은 악역을 자처하는 사람도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는 그 복잡한 미묘함을 사랑한다. 그런 사연 있는 캐릭터 잘못 다루면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별다른 차이점이 없는 캐릭터인데 그럼에도 매력이 느껴지는 걸 보면 캐릭터라는 브랜딩이 얼마나 대단한지 판단하고 있다. 그와 동시에 단칼 같은 성격을 원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 애매한 거리의 이유가 무엇인지 묻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고, 자신이 잘못된 무언가를 파악하지 못한 채 계속 인연을 이어가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이런 모습을 보면 결국 단칼이라는 것은 절체절명의 순간에 알맞게 사용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잘못 사용한다면 꼰대라 얘기 듣긴 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