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guel Hong May 07. 2024

인생 최대 업적 :  빈지노에게 좋아요 받은 것

누군가에겐 정말 별거 아닌 일이거나 하찮고 불쌍하다고 느낄 수도....

무대 옆쪽 소리 없는 스텝들 헌신도
난 버릴 수가 없지 그들이 없다면 나도 없지 
Self made는 다 거짓 그렇게 뛰어온 10년임
릴러말즈, 빈지노의 True 중 빈지노의 가사
이미지 출처 : Bugs


빈지노에게 인스타그램 게시글 좋아요를 받은 것이 인생 최대 업적이라면??

이걸 채용 면접에서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구직자가 있을까??


누군가에겐 정말 별거 아닌 일이거나 누군가에겐 하찮고 불쌍하기까지 한 일일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에겐 정말 순수한 열정과 가치관을 가졌다는 관점에서 정말 자랑할만한 트랙레코드이지 않을까? 



언제부터인가 '나=커리어'가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내 소개를 할 때 직업, 업무적인 소개만 하게 되었다. 특히 잘하는 것이나 좋아하는 것을 물어보는 원초적인 질문에도 '마케팅', '그로스', '데이터 분석'과 같은 업무적인 내용들만 입에서 나오게 되지만 개인의 순수한 열정을 가진 취미나 특기들은 전부 사라졌다. 아마 대학교 이후로는 이렇게 된 것 같다. 하다 못해 이력서를 쓸 때도 업무적으로 도움 될만한 취미와 특기를 써야지 진짜 개인의 순수한 내용을 쓰면 안 된다고 교육받기도 했었다. 

이렇게 개인의 순수함이 지워지는 삶을 살고 있었다. 이것이 일반적이라고 생각했고 그게 업무를 생계수단으로 삼는 월급쟁이의 자연스러운 패턴이라고 위로하며 살아왔다. 


https://www.youtube.com/watch?v=apUwu6fyfmo

출처 : 유튜브 면접왕이형 채널


음악

그런데 최근 빈지노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과 대화를 하게 되었다. 잠깐의 대화였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을 확인할 수 있는 순수한 대화였다. 내가 힙합을 좋아했고, 어떤 아티스트의 음악을 어떠한 이유로 많이 들었고, 내가 여유로울 땐 서사무엘의 음악을 듣는 반면 빡세게 살고 싶을 땐 도끼의 음악을 듣는다와 같은 순수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 이후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리텐션을 만들고 CPI를 낮추고, '실험해야 한다'와 같은 근로자로서의 문장들을 잠시 내려놓고, 그것들을 통해 이뤄낸 성과들도 잠시 잊는다면 과연 나는 무엇이 남는 것일까? 나를 설명할 때 나는 무엇이라고 정의하고 나에 대한 순수한 성과는 무엇일까? 와 같은 본질의 영역으로 질문의 포문을 열었다. 업무적인 성과와 설명을 제거한 '나'는 무엇이 남을까 와 같은 개인적인 관점으로 내 삶을 들여다보기 시작한 것이다. 





빈지노의 좋아요

인생 최대 업적 중 하나인 빈지노에게 좋아요를 받은 사건(?)은 약 4년 전의 일이다. 

힙합 음악을 좋아하고 아티스트들이 리스너에게 영감을 주는 가사들을 더 널리 알리고 싶은 순수한 마음에 인스타그램 계정을 하나 운영하던 때이다. 가사 한 두줄 + 앨범커버를 조합하여 파워포인트로 대충 폰트만 바꾸면서 정방형 이미지로 콘텐츠를 찍어나갔다. 

하루 한 개씩 공유하는 것이 목표였어서 이름도 Dai1yric 이다. 이 포맷을 유지하면서 내 본 계정에서도 피드에 기둥을 세우고 있었다. 게시글 2개 올리면 음악 콘텐츠 하나 올리는 식으로 피드에 컨셉을 부여해 왔다. 


이때 빈지노의 좋아요를 받았던 콘텐츠는 바로 '릴러말즈'의 'True'라는 곡이고 빈지노가 피처링을 해주며 쓴 벌스를 다룬 콘텐츠이다. 


여태까지 내가 듣던 일리네어의 음악은 Hustle과 그를 통해 이뤄낸 부와 Money Swag을 보여주는 음악들이었다. 그런데 빈지노는 스텝들의 헌신을 샤라웃 해주며 그들이 없으면 나도 없다는 내용의 음악을 전달했다. 


너무 신기하면서도 이런 게 일류구나, 빈지노는 이런 생각까지 하는구나라고 생각하면서 이런 내용의 랩을 뱉은 아티스트는 빈지노가 유일하다 생각했다(나중에 보니 아니었지만). 그래서 바로 포스팅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빈지노가 좋아요를 눌러주었다. 


빈지노가 좋아요를 눌러주었다?

빈지노가 좋아요를 눌러주었다!

realisshoman은 빈지노의 인스타그램 계정이다.


정말 신기했다. 사칭 계정일까 싶어 몇 번이나 들어가 보았고 나와 비슷한 포스팅이 있는지 검색도 해보았다. 나는 빈지노를 인정하는 콘텐츠를 올렸는데 그 콘텐츠를 빈지노에게 인정받은 것 같아 정말 좋았다. 단순한 좋아요 하나겠지만 그 가치는 하나의 행동 로그 그 이상으로 나에게 전달되었다. 

이게 나에게 굉장히 큰 임팩트일 수 있는 이유는 내가 힙합을 아주 좋아하고 그중 빈지노의 열정적인 팬이며 그의 음악, 가치관, 삶의 태도 등에 크게 동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팬심이 그의 사소한 행동 하나를 가치화하는데 레버리지로 사용된 것이다. 


꼭 업무적으로 매출을 만들어내고 지표를 이쁘게 그리게끔 성장시키는 것들 외에도 내가 순수하게 좋아하고 가치를 느낄 수 있는 것이 존재하고 지속되어 왔음을 뒤늦게 깨닫게 된 것이다. 


인생 업적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내가 무엇을 좋아했고 성과로 자랑할 수 있을지 되돌아보기 시작했고 업무적인 내용들은 의도적으로 제외해 보았다. 

빈지노에게 좋아요 받음

칸쿤 스칼렛 아르떼에서 All-inclusive 호텔에서 하루종일 수영하고 먹고 마시고를 동시에 할 수 있었던 신혼여행

신라 리조트에서 수영장에서 전복 한우 차돌박이 짬뽕 시켜 먹어본 것 (가격이 53,000원 ㄷㄷ)

뛰던 축구팀에서 올해의 베스트 일레븐에 포함됨 

새터(OT) 때 2,000여 명 앞에서 2곡 정도 공연한 것

말년 휴가 나와서부터 아르바이트를 시작하여 여행 비용 마련. 가족으로부터의 재정적 독립의 첫걸음

이런 것들이 있었다. 이외에도 연간 회고를 하며 나왔던 '같이 있으면 정말 즐거운 사람과의 연애와 결혼', '브루노마스 콘서트', '미국 출장으로 들러본 샌프란시스코' 등등이 성과이면서 내가 생각만 해도 즐거운 추억들이었다. 

생각보다 많았다! 최근 인터뷰를 보면서 '자기소개'를 고민하고 엄청 타이트하게 구조화하던 게 신기할 정도이다. 물론 업무를 제공하고 월급이라는 대가를 받는 계약관계이기 때문에 업무 성과와 연관된 자기소개를 해야 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하고 내가 면접관이어도 동일할 것 같다. 


다만 가끔씩은 업무적인 것 외에도 개인의 성과, 업적, 자랑하고 싶은 혹은 그냥 즐거운 일들을 고민해 보고 얘기 나누면 좋겠다. 



개인적인 성과와 추억들도 챙기는 것을 잊지 말자

당연히 생계수단인 근로소득과 사업소득을 위해 커리어와 역량을 개발해야 하는 것은 기본 전제조건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너무 커리어만 좇지 않고 내 개인과 가족들과 함께 우리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할 때 즐거운 추억을 쌓아가는지와 같은 질문들을 끊임없이 던지면서 더 행복한 날들을 보냈으면 좋겠다. 


누군가에게 내 소개를 요청받을 때 이젠 업무적인 성과 외에도 '빈지노', '여행', '가족'과 같은 키워드들도 신나게 얘기할 수 있게끔, 이런 스토리들이 삶에 가득 채워지게끔 :)



작가의 이전글 회사를 놔주는 것의 즐거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