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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용구 Oct 24. 2024

밑잔

AI로 양산형 발라드를 만들어 보았습니다.

밑잔 (작사: 인용구 / 작곡: Suno)


    때는 바야흐로 2020년, 술을 소재로 이별을 노래하는 양산형 발라드 곡들 (황인욱의 <취하고 싶다>, <포장마차> 등)이 한창 인기를 끌던 시절. 남들과 있을 때는 찍어내는 듯한 멜로디 라인과 진부한 가사들을 욕했지만, 노래방에서는 남몰래 고음 지르기를 연습하며 그들의 가사를 반복학습하던 나는 당대 이별 노래의 공식을 깨우쳐버렸다..!! 술을 먹는 남자가 1) 아무 이유 없이 이별한 그녀를 떠올리고 2) 당신이 얼마나 예뻤는지 추억하며 3) 사랑했던 시간을 그리워하다가 4) 떠난 당신을 원망하고는 5) 지 혼자 애써 체념하는. 지지리 궁상 맞고, 민망하게 공감되는 그런 이야기를 나도 잘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석사 첫 학기, 많이 힘들었나

     그래서 써봤습니다. (...) 당시에는 바이브의 <사진을 보다가> 멜로디에 가사를 붙이는 느낌으로 작사를 진행했는데, 그래서일까 중간에 랩도 등장하고 ㅋㅋ 머릿속에 그려지는 그 진부한 곡 진행보다도 더 촌스러운 노래가 나와버렸다. 최근 이적 형님께서 <술이 싫다>라는 노래를 발표해서, 문득 기억이 난 나의 흑역사. AI의 기술에 힘입어 4년 만에 완성해서 공개합니다. 드디어 오리지널(?)한 멜로디가 나왔는데, 당연히 AI가 만든 결과물이기에 어디서 들어본 듯한 무언가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이 곡은 AI와 한 개인의 양산형 발라드 학습의 끔찍한 혼종 결과물인 셈이다.


    도입부부터 노래 가사가 굉장히 짜치는데, 2022년 <어묵 국물>이라는 노래가 등장했다가 엄청난 욕을 먹었던 것을 생각하면 "계란말이 오뎅탕 시켜놓고서"라는 가사는 정말 시대를 앞서간 구절이 아닐까 싶다. 곡에 등장하는 이별한 여자친구는 심지어 꼰대라 밑잔을 남기는 걸 싫어한단다 ㅋㅋㅋ. 상상 속 여친은 손도 작고 술도 나보다 잘 먹는다고 하는데, 지금 제가 사랑하는 분은 그 정반대라는 개인적으로는 재밌는 부분이다. (오히려 좋아!!) 양산형 발라드 곡이라고 했지만, 랩 파트에 조지훈의 <사모>의 구절을 인용하기도 하고, 용구 특유의 말장난도 한 숟가락 넣어서 나답게도 써보려고 했다.


    보컬로이드 기술이 옛날에도 있었지만, 가사 전달력이 많이 떨어진다고 생각해서 이용해 본 적은 없는데 요즘 기술은 진짜 좋아진 듯. 나는 반드시 해내야 하는 논문 제출이 이제 3주 조금 남은 것 같은데, 아마 어렵지 싶지만 밤새가며 열심히 하는 중이다. 물론 잘 놀기도 하면서 ㅎㅎ. 연말 되면 좀 더 자세한 근황을 전할 수 있을 듯 싶습니다. 그때까지 많은 응원 바람.


    날이 추워졌다. 모두 건강하고 따뜻하게 지내시기를.




[가사]


젓가락을 집다가 짝이 맞지 않아서

나는 너를 생각해 휴지로 받침을 놓아주던 널

계란말이 오뎅탕 시켜 놓고서

날이 밝아오도록 나와 눈을 맞추던 너를


나, 술잔이 크게 느껴질 만큼

작은 너의 손을 잡고 있을 땐

이 순간이 영원하길 바랐어

우리 사랑이 바래지 않기를


밑잔을 남기는 걸 싫어했던 너

그래서 미련 없이 이별도 하는 거니

언제나 나보다 더 술도 잘 먹던

넌 요즘 술 마시는 일은 없는 거니


난 지금 우리 가끔 오던 술집에서

혼자 소주 한 잔 마시는 중이거든

근데 조금 이상해 그때 같지가 않아

술이 참, 이상해 참 많이 쓴 것 같아


아, 쉽다. 아쉬움을 남기는 일은

쓰던 가사를 뱉지 못하고 소주로 대신 삼킨다

잃은 (너무 이른) 못 다 이룬 (우리란) 이름

짠 해서 털어 봐도 잔감정이 남는다


한 잔은 떠나버린 너를 위하여

또 한 잔은 영원한 사랑을 위하여

또 한 잔은 초라해진 나를 위하여

또 한 잔 (또 한 잔) 다시 한 잔을 우리를 위하여


나, 술잔이 크게 느껴질 만큼

작은 너의 손을 잡고 있을 땐

이 순간이 영원하길 바랐어

너의 웃음이 바래지 않기를


밑잔을 남기는 걸 싫어했던 너

그래서 미련 없이 이별도 하는 거니

언제나 나보다 더 술도 잘 먹던

넌 요즘 술 마시는 일은 없는 거니


난 지금 택시 타고 집에 가고 있어

이젠 도착해도 연락해선 안 되지

미안해 습관처럼 또 숙취처럼

네가 남아서 아직 비우지 못해


눈물 깊이의 밑잔 같은 너를

눈물 깊이의 밑잔 같은 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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