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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용구 Oct 31. 2024

Trick or Treat

시월의 마지막 밤에는 죽은 이들이 길을 거닌다

Trick or Treat

                                                인용구

시월(詩月)의 마지막 밤에는

죽은 이들이 길을 거닌다

은유(銀流)하는 달빛을 따라

백색의 혼들이 곳곳에 흔들린다


똑똑

문을 열자 네가 있었다

여전히 앳된 모습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나는

말을 잃고


너의 눈 있던 자리를 바라보았다

동공(瞳孔)을 대신한 공동(空洞)

허무랄 것도 없던 가슴이

다시금 허물어진다


미안해 엄마 너무 늦었지

기다리는 동안 걱정 많았지

반투명한 손을 내밀며

소리 없이 위로하는 너


아직도 너의 태몽을 기억해

그날 너의 첫울음과

안길 때의 무게를

같은 크기의 유골함

울부짖던 그날

그리고 시작된 악몽


Trick or treat

신의 장난 같다

신의 선물 같았던

네가 떠난 이곳은 꼭 생지옥 같다

세상의 여집합에 놓인 채

오직 너를 기억하기 위해 사는 나

이젠 너의 몫이 되어버린 기다

아직도 살아서 엄마가 미안해


똑똑

오늘도 환청을 듣는다




    옛날에 <참척>이라는 시를 쓴 적이 있다.

아이는 낳을 때 크기의 유골함이 되어 품에 안겼다.
첫울음 소리를 기억하며 어미는 다시 울부짖기 시작했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감정은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을 만큼 비참하여 참담할 참(慘)에 슬플 척(慽) 자를 써서 아이를 잃는 일을 참척이라 부른다고 한다. 감히 상상하고 싶지도 않은 비극이지만 요즘 같은 시기면 그 슬픔을 헤아리는 일을 하게 된다.


    <금요일엔 돌아오렴>이라는 책을 읽고, 또 세월호 관련 다큐멘터리들에서 나는 통곡하는 유가족들의 모습을 보며 같은 비극이 다시는 있지 않기를 간절하게 바랐었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눈물 흘릴 일이 없어지는 나지만 진은영 시인의 <그날 이후>라는 시를 생각하면 지금도 울컥 눈이 뜨거워지고 목이 잠긴다. 세월호 참사에 희생된 아이의 시점에서 남겨진 이들에게 전하는 위로의 말들이, 왜 "아빠 미안", "엄마 미안" 같은 가슴 아픈 사과로 시작하는지. 정말 잔인하게 슬픈데 또 그럴 것 같다. 착한 사람들은 사과를 많이 하거든. 사랑하는 사람의 슬픔을 생각하면 내 잘못이 아닌 것에도 미안한 감정이 들거든.


    고작 10년도 되지 않은 사이에, 참담한 인재가 대한민국 그것도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졌다. 세월호의 시기를 거쳤던, 나와 동생 또래의 친구들이 무참하게 서로에 깔려 유명을 달리했다. 울 엄마 아빠 나이의 많은 사람들이 또 한 번 참척의 고통을 겪어야 했고, 그 참담한 슬픔은 국민 모두의 몫이기도 했다. 아무도 사과하지 않고 누구도, 아니 누구는 무슨 짓을 저질러도 처벌받지 않는 이 끔찍한 나라. 우리는 조금도 나아지지 못했다. 그 무력감에 분노를 잃지 않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고, 언제까지나 기억하고 연대하는 것이 나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할로윈, 죽은 이들이 현세를 찾는 단 하루의 밤이라는 개념은 어떤 이들에게는 간절한 무언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종교는 없지만, 죽음이 꼭 영원한 이별은 아니고 우리는 언젠가 어디에서 어떤 형태로 다시 만날 것이라고. 믿게 되는 날이 있다.



    글에 시월 -> 은유하는 달빛, 동공과 공동, Trick(장난) or Treat(선물)이라던가. 조금의 언어유희가 들어가긴 하는데 가볍게 읽히지는 않았기를 하는 바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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