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지겨워진 덕산생활을 마치며

<작은 마을에서 나를 실험중입니다> 청년농촌공동체 이야기

by felizday

“시골 가면 심심해서 뭐해?”

이 말이 무색하게, 제천시 덕산면(이하 덕산)은 여느 시골과는 다르다. 이 작은 면 안에서는 늘 무언가가 일어나고, 그 중심에는 스무 명 남짓한 청년들이 있다.

이곳의 중심에는 ‘청년마을’이 있다. 농촌공동체연구소의 한석주 소장이 농촌에 청년이 필요하다는 절박함으로 세운 농업회사법인으로, ‘청년 농촌정착 플랫폼’이라는 다소 거창한 모토를 내건 실험장이다.

여기에는 각기 다른 이유로 모인 청년들이 산다. 네 명가량은 농림부(지금은 충청북도)의 ‘농촌에서 살아보기’ 프로그램으로 6개월간 머물고, 여섯 명은 귀농학교 학생으로 농사를 배우며 살아간다. 나머지 열 명 남짓은 한 달 살기나 여러 계기를 통해 유입되어, 덕산과 인근 수산면에 터를 잡고 있다.

덕산이 여느 시골과 다른 또 하나의 이유는 제천간디학교다. 대안학교를 중심으로 귀촌한 학부모 세대들이 많고, 이들은 교육의 다른 가능성을 믿으며 내려왔다. 미래 세대를 위해, 나 아닌 존재를 함께 돌보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청년들의 농촌 생활과 실험을 지지한다.

이곳 사람들은 자주 함께 모인다. ‘간디마을센터 마실’에서 열리는 플리마켓 ‘호호장’에서는 덕산초중학교와 간디학교 학생들, 다문화 여성, 어르신, 청년이 함께 모인다. 공연을 하고, 장터를 열고, 음식을 나눈다.

가끔은 ‘주막학교’라는 이름으로 인문학 프로그램이 열린다. 재일동포의 삶을 다루거나, 작가 위화와 그의 친구 백원담 선생의 문학을 읽는 시간이다. 청년마을 청년들, 간디학교 선생님, 그리고 생명평화운동가 황대권 선생의 동지인 레이 선생이 함께 독서모임을 열고, 마을 청년들이 간디학교 수업에 참여하기도 한다.

그 외에도 파란사회서비스센터의 수상한청춘학교, 덕산문화센터 같은 공간에서는 태극권, 요가, 해금교실, 배드민턴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열린다. 시골답지 않게 다채롭고, 사람 냄새가 짙은 곳이다.


덕산에서의 생활은 처음엔 설렘이었다. 그러나 1년 반이 지나고 퇴사를 앞둔 지금은 솔직히 지겹다. 떠나기로 마음먹은 뒤로는 하루라도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다.

덕산에서 배운 게 있다면, 인간은 어느 생활에서도 완전히 만족하지 못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처음엔 모든 것이 새로워 가슴이 뛰고 눈도 반짝였지만, 결국 익숙함은 권태로 변했다.


그럼에도 분명한 건, 덕산에서 나는 ‘함께 있음’의 기쁨을 느꼈다는 사실이다. 지금도 차가 없고, 겨울이면 우풍이 스며드는 방에서 추위를 견뎌야 하는 시골의 불편함이 지겹지만, 그 시간 속에 분명히 충만함과 감사가 있었다.

덕산을 찬양할 마음은 없다. 오히려 지금의 나는 조금 못난 마음으로, 이곳을 냉정히 바라보고 싶다. 그래도 이 시간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지금의 나에게 덕산은 잠시 머물다 간 계절처럼, 인생의 리듬 중 한 박자였다. 그 리듬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고, 이제 다른 리듬으로 흘러갈 때가 온 것뿐이다.

함께 웃고, 함께 밥을 먹고, 함께 버텨준 덕산의 사람들에게 마음 깊이 고마움을 전한다.

그때의 행복을 완벽히 기록할 재능은 없지만, 그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 이 글을 쓴다.

살아 있었다는 증거, 그리고 앞으로도 살아낼 것이라는 다짐, 그 마음을 덕산에서 배웠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래서 이 기록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