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에 옆쪽 자리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온다. "그래 이 새끼야... ", 밥 먹다가 뜬금없이, 전혀 상황과 맥락 없이 들려온 소리여서 내가 잘못 들었을 거라고 생각하고, 그 아이에게 물었다. "너 방금 뭐라고 했어?", 그러자 그 학생이 하는 말, "'그레이색이야.'라고 했는데요..." "그레이색(회색)이라고?, 왜 갑자기 그레이색이라고 한 거야?"라고 물어보자, 이런저런 이유로 답을 하는데, 일단 넘기고 교실에 가서 인터넷을 찾아보았다. 그러자 어느 프로그램에서 비슷하게 들리는 소리로 욕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제야 이해가 가서 그 학생에게 물어보았다. "너, 이거 그레이색이야라고 하면서 욕하는 걸로 나오는데, 너 이 뜻 모르고 진짜 그레이색이야라고 한 거니?", 그러자 "네, 전 정말 그레이색이야라고 한 거예요. 저 친구의 팔찌 색이 그레이색이어서요.(다른 여학생의 은색 팔찌를 가리키며 했던 말임)"라는 답을 한다. 순간 화가 났다. 솔직하게 말하고, 장난이었고 잘못했다고 시인하면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이다. 아이들의 '그럴 수 있음'과 '미숙함'은 당연한 것이므로, 그것을 가르치는 것이 나의 일이고, 가정, 학교, 사회가 그 일을 해야 하는 것이므로. 그런데 그 아이는 일단 발뺌을 한다. 잘못한 것에 대한 사실과 속생각이 밝혀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밀려온 것이겠다. 이 또한 지금까지 많은 사례를 겪어 보아 아이들의 반응으로써 보편적임을 알고 있다. 아이에게 다시 물었다. "정말, 그 뜻을 모르고 사용했니? 근데, 왜 그 상황에서 팔찌색을 말한 거야?"라고 알리바이의 빈틈을 파고들었다. 그리고 도덕 시간에 배웠던 '정직과 신뢰, 관계, 삶'의 개념을 다시 상기시켰다. 그러자 다행히도 이 학생은 솔직하게 고백했다. 그 뜻을 알고 사용한 것이고 장난으로 사용한 것이라고. 그렇게 솔직하게 말한 것에 대해 일단 잘했다고 칭찬하고, 지도를 이어 갔다. 많은 학생들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단계에서 두려움과 부끄러움을 극복하지 못하여 솔직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 학생은 최근 도덕 시간에 배웠던 정직의 덕목을 천만다행(천만다행인 이유는 그 학생, 교사, 지켜보는 학생들 모두에게 배움과 삶이 연결되지 않는다는 좌절과 배신감, 교사에게는 더 큰 패배감을 맛보게 하지 않았으므로) 실천하였다. 이때다 싶어서 아이들(이런 상황에서는 모두가 집중하고 주목한다. 어떻게 될 것인가, 모두가 안다. 그 말이 '그레이색이야'가 아님을)에게 말했다.
" 이렇게 잘못을 인정해 주어서 정말 다행이고, 그걸 인정했기 때문에 선생님은 여러분을 가르칠 수 있게 되었다. 욕처럼 들리는 말을 하는 게 유튜브나 이런 곳에 돌아다니는데, 그걸 장난으로 따라 하더라도 듣는 사람이 기분이 나쁘거나 욕으로 받아들이면 언어폭력이 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유튜브 등에 나오는 이런 장면을 분별력 없이 그대로 따라 하지 말도록 해라. 자신이 하는 말, 행동에는 책임이 따른다. 반드시 생각과 판단이 앞서선 다음 해야지, 생각 없이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은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니다."
요즘 유튜브나 영상을 짧게 편집한 영상을 통에 아이들 연령 제한이 있는 프로그램이더라도 짧은 영상으로 볼 수 있고, 아이들은 유행을 따른다고 생각하여 그런 영상을 바로 따라 한다. 일부 학부모는 연령 제한이 있는 그런 영상을 대놓고 아이들과 같이 보기도 한다. 지금까지 '오징어게임', '더글로리' 같이 숱한 OTT 드라마를 연령 제한이 있더라도 아이들은 거의 다 알고 있다. 또 일부 코미디언이 유행어를 만든답시고 따라 하면 그것을 아이들은 재미로 받아들여 쉽게 모방한다. 영화 '내부자들'의 아이들이 결코 따라 해서는 안될 장면을 따라한 코미디언의 유행어와 행위가 학교에서 그대로 모방된다. 유튜브 영상과 유행을 모두 간파하고 있는 게 아니어서 교사들도 적절히 지도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아이들이 그렇게 유행가처럼 부르는 '홍박사님을 아세요' 노래와 춤이 그런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도 나는 최근에야 알았다. 그 노래는 저번 스포츠데이와 수련 행사에서 아이들이 좋아해서 레크리에이션 시간에 그토록 부르던 노래였다. 그런 저질스러운 내용과 춤인 줄 알았다면 결코 학교에서 부르게 내버려 두지 않았을 것이다.
아래 예시처럼 판단을 하는 기준을 세우고 판단하는 습관을 갖도록 지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전략적 지식, 방법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고, 어떠한 상항에서도 이러한 지식을 적용하여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분별력과 사고력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이 필요하다.
* 판단하는 방법에 대한 전략적 지식의 예
1. 양심에 비추어 보기
2. 주변 사람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기
3. 결과 예상해 보기
<출처: 5학년 도덕 교과서>
깊이 있는 학습과 전이 학습이 중요한 이유
암기 위주나 전이가 부재한 피상적 학습으로 교육이 이루어지게 되면 학교 교육은 사실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진짜 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왜'와 '어떻게'의 기준으로 분별력을 키우는 학습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일의 이치를 깨닫는 '아하, 모먼트'가 생겨나는 깊이 있는 학습 과정이 있어야겠다. 이것이 주가 되는 교육이 학교교육이어야 하며, 그렇지 않을 때 세상의 빠른 흐름에 노출되어 들어오는 여러 인풋들을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암기식 교육, 전이가 없는 교육으로는 분별력을 키울 수 없다. 분별력이 없는 사람은 곧고 바른 마음을 형성할 수 없고, 어른이 되어서는 눈앞의 이득과 욕망, 권력에 좌지우지되는 사람이 될 것이다.
분별력에 대한 이끌림
세상은 변별력에 걸맞게 구조화되어 있다. 정해진 공부를 잘해야 성공할 수 있는 사회, 돈이나 인기, 권력이 주어지면 물불안 가리게 만드는 사회, 진실이 무엇인지 상관없이 내편이 되어 주면 되는 사회, 혐오가 정당해지는 사회, 그런 사회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여러 단면들이다. 하지만 교사로서 분별력에 대한 이끌림이 있다. 어쩌면 교사이기 때문에 그런 흔들림에 맞설 수 있고 이겨낼 수 있는 '아하 모먼트'가 되어 주는지도 모르겠다. 난 시국이 이렇지만 교사라는 직업이 이래서 맘에 든다. 변별력을 따지며 온갖 유혹과 욕망에 흔들리는 나를 바로 세워 주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최초의 사회가 되는 날 것의 교실에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하게 해주어야 하는 상황은 수없이 등장한다. 그럴 때 제대로 된 분별력의 힘을 키울 수 있도록 도와주지 않으면 어떻게 된다는 것이 너무 선하기 때문에 그냥 넘기지 못하고 '교육'을 함으로써 갈고닦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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