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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포포 Jun 10. 2021

아빠의 꼬리를 본 적 있나요

내 인생의 큰 전환점

엄마는 매일매일 월급을 받았다.

아빠는 매일매일 엄마에게 만원짜리 지폐 몇 장을, 벌이가 좋았던 날에는 10장씩 혹은 장거리를 다녀온 날은 한 눈에 보아도 두툼해보이는 만원짜리지폐를 한껏 잘 보이게 안방 경대에 올려놓곤 했다. 


어릴 때는 아빠가 지갑에서 꺼내던 돈만 알았지, 네 가족이 살아가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돈이 얼마인지를, 한 가족이 생계를 이어가는데 얼마나한 돈이 드는지를 몰랐다. 


고2 야자시간, 장난을 치다가 친구의 핸드폰을 책상에서 떨어뜨려 액정이 나간적이 있었다. 설마했는데 액정을 교체해야한다던 a/s센터의 기사님.(청천벽력) 돈은 없고, 그 당시에도 휴대폰 액정은 한두 푼 하는 것이 아니었으니.(어떻게 하지?) 엄마에게 단과학원 한 과목을 더 들어야한다며(아니, 이번달은 시험 대비특강이 있어서..) 학원 수강비를 받아 친구의 핸드폰을 고쳤다. 그때 돈이란 것은 필요하다면 없는 핑계라도 만들어 받을 수 있는 그런 것이었다. 아빠는 매일같이 나가면 그만한 돈을 척척 벌어오니까. 


인문사회대학에 진학해 4년의 시간을 보내고 졸업반이 되었을 때, 졸업 전 취업을 목표로 인턴쉽부터 정규채용까지 가리지 않고 지원서를 쓰며, 면접을 보러 다녔다. 서류통과에서 보였던 청신호는 면접을 지나며 적신호가 되어 돌아왔기에 졸업이 전혀 기쁘지 않았다. (이번 채용에 지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안타깝게도 지원자 ooo님과 함께 하지 못함을 알려드립니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일을 마치고 들어오는 아빠가 날 불렀다.

“내일 아빠 거래처 회장님이 한 번 회사로 나와 보라고 하니까, 옷 단정하게 입고 9시까지 법원 뒤 사무실로 가봐. 원하는 파트에서 근무할 수 있게 해준다네, 월급도 150은 준다고 하더라.” 

‘아빠는 왜 쓸데없는 부탁을 해가지고...’


투덜거렸지만 아빠의 마음또한 이해가 되었다. 정장의 구두차림으로 택시에서 내리니, 회사 입구에 차를 대고 있는 아빠가 보였다. 아빠. 하고 부르려다 말았다. 말없이 보도블럭 한 켠에 서서 짐을 내리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회사 직원들과 아빠는 켜켜이 적재된 박스를 내리고 옮겼다. 그 후, 사장님으로 보이는 70대의 어르신이 아빠에게 지갑에서 꺼낸 5만원 권한장을 건네주었다. 아빠는 “회장님, 감사합니다.”라며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고선 차에 올라탔다. 


아, 아빠가 아침 일찍 나선게 이 일 때문이었구나. 아빠가 벌어오는 돈은 아빠의 차, 아빠의 시간, 아빠의 노동, 아빠가 회장님이란 사람에게 잘 보이려 건네는 저 웃음이 벌어오는 돈이었구나. 


내가 아빠의 노동을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엄마는 내가 장학금을 탔을 때도 그 돈을 다 통장에 넣어주었다. 학교 다니며 필요할 때 써. 그동안 사고 싶던 카메라도 사고, 계절이 바뀔 때 마다 옷도 사입고 하면서 7자리 였던 통장잔고는 어느새 4자리가 되어있곤 했다. 내 4년간의 학비는 사실상 모두 아빠의 노동에 의해 지불된 셈이다.


"한 달 6번 쉬고, 월급은 87만원이에요."


내가 근무할 부서 담당자로부터 들은 대답 중 기억나는 건 87만원이라는 그 말 뿐이었다. 나는 그 대답에 속으로 웃었던가? 아니면 울었던가. 나는 내 노동의 가치를 터무니없이 이상적으로 생각했고, 아빠의 노동의 가치를 헤아려 본 적이 없었다. 나는 취업을 해야했다. 나를 스스로 벌어 먹어야 했다. 내가 쓰고 입는 것들을 위해, 세상에 고개 숙이고, 응답하고, 내 몫만큼의 일을 해야했다. 최근 읽었던 정재찬 교수의 책에서 '아빠의 꼬리'라는 시를 읽으며 다시금 이 날을 떠올렸다. 내가 이전에 살던 삶으로 돌아갈 수 없게 만든 이 하루를 말이다.


아빠의 꼬리. 딸이 이럴 때마다 저럴 때마다/ 아빠가 어떻게든 해볼게/ 딸에게 장담하다 어쩐지 자주 듣던 소리다 싶어/ 가슴 한쪽이 싸해진다/ 먹고 죽을 돈도 없었을 내 아배/ 아들이 이럴 때마다 저럴 때마다/ 아부지가 어떻게든 해볼게/ 장담하던 그 가슴 한쪽은 어땠을까// 아빠가 어떻게든 해볼게/ 걱정말고 네 일이나 해/ 딸에게 장담을 하면서도 마음속엔/ 세상에서 수시로 꼬리를 내리는 내가 있다/ 장담하던 내 아배도 마음속으론/ 세상에게 무수히 꼬리를 내렸을 것이다// 아배의 꼬리를 본 적이 있었던가/ 아무리 생각해도 아배의 꼬리는 떠오르지 않는데/ 딸은 내 꼬리를 눈치챈 것만 같아서/ 노심초사하며 오늘도 장담을 하고 돌아서서/ 가슴 한쪽이 아려온다 꿈틀거리는 꼬리를 누른다 _ 안상학, <그 사람은 돌아오고 나는 거기 없었네>, 실천문학,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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