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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포포 Jul 29. 2021

우리는 서로를 잘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정을 나누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당신은 나의 아이의 경계성 지능에 대해서 모르고, 나는 당신의 블랙리스트 환자를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만나서 나눈다. 그간 못본 날들의 감정들을 주섬주섬 꺼내놓으며, 이 때문에 골치아팠노라고, 이 때문에 요즘 마음을 쓰고 있다고.


나는 당신에게 소송을 걸어오는 환자를 모르지만, 그 과대망상증을 가진 환자는 당신 병원이 아닌 정신건강의학과로 가야하는게 분명하다며 얼굴도 본 적 없는 그 여인을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의 무뢰한으로 매도해버림으로써 당신의 감정에 조금이나마 닿고자 한다.


당신이 의사일지라도, 관련 분과가 아닌 지적장애에 대한 것은 피차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지만 당신은 나의 눈을 바라보며, 이제껏 봐온 나의 아이가 설령 느리다고 할 지언정 퇴보하는 것처럼 보인적은 없었다. 라고 한 번 말했고, 우리의 대화가 끝날 때 즈음 한 번 더 힘주어 말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건 간에 당신이 취한 제스처는 내가 느낀 절망감에 조금이나마 닿고자, 혹은 사위가 깜깜해 보이지 않는 우물안에 갇힌 듯 한 내게 내미는 작은 손. 어둠에서도 빛날 만큼 하얀 피부가 인상적인 당신의 손이 나를 향해 있다는 사실에 위안을 얻는다.


우리는 서로의 세계를 잘 모른다. 서로를 존경하고 좋아하는 것과는 별개로 우리의 공통분모는 매우 작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로의 마음에 닻을 내리려고 노력한다. 설령 내가 그 모든 것을 이해하지는 못할지라도 우리의 노력은 매번 의미를 만들어낸다. 



"이 우정은 잘되어가고 있어." 귀고리 사건으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그레이스가 내게 말했다. 나는 끄덕였다. 친밀감은 무섭고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결국 편안함과 깊이를 만들어내는 것은 친밀감이다. 내가 존중받고 이해받는다는 느낌, 세상이 좀 더 편하게 느껴진다는 기분을 얻게 해주는 길도 친밀감이다. - 명랑한 은둔자, 캐럴라인 냅, 10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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