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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성중 Feb 18. 2021

당신이 지금 방에서 나와 영화관으로 가야 하는 이유

<세자매>, '정상가족'이란 환상에 질문을 던지다

 *스포일러는 없습니다. 영화를 즐기기 위한 설명만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정상 가족’이란 환상에 익숙하다. 정상 가족이라고 하면, 여자인 어머니와 남자인 아버지, 그리고 귀여운 아이들이 함께 사는 집을 떠올리기 쉽다. 이 스틸컷에 구린 역동감을 주자. 아침이 되면 어머니는 밥을 차리고, 아버지와 아이들은 조금 늦게 일어나 어머니가 차린 밥을 먹는다. 밥을 다 먹고 나면 어머니는 남편을 보내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낸다. 그리고 어머니는 집에 남아 밀린 집안일을 한다.      


  정상 가족이란 환상에는 “00은 어떻게 해야 한다”는 명령이 숨어 있다. 아이들은 부모님의 말을 천금같이 여겨야 하고, 아버지는 가장으로서 책임을 다해야 하고, 어머니는 집안을 돌봐야 한다. 물론 요즘은 맞벌이 가정이 대부분이라 이 정도로 구식이지는 않지만, 여전히 명절만 되면 알 수 있듯이 성별과 위치에 따른 명령은 존재한다.      


  자 이제 현실을 보자. 세상에 정상 가족은 존재하는가. 그리고 이런 가정이 정말 정상적인가? 이는 마치 평균의 오류와 같다. 가령 키가 150cm인 사람 2명과 170cm인 사람 2명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여기서 평균 키는 160cm이다. 그러나 이 집단 중 누구도 160cm인 사람은 없다. 그저 허상에 불과하다. 정상가족이란 말도 그렇다. 정상가족이란 환상은 모두의 키가 다른데 170cm로 살고 있고, 또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명령과도 같다.  현실의 가족은 때로 원수보다 못할 때가 많다. 자라면서 부모님의 은혜에 감사하라고 하지만, 부모 자식 사이의 관계는 그렇게 사랑과 은혜로만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서로가 가족이기 이전에 한 '인간'이라는 것을  존중해야만 가족처럼 살 수 있다. 


  요즘은 ‘정인이’ 사건을 계기로 가정폭력에 관한 관심이 높아졌다. 이 사건은 양부모에 의해 벌어진 일이었다. 그래서 입양에 관한 관심도 같이 높아진 상황이다. 여기서 하나는 짚고 넘어가야 한다. 대부분의 가정폭력은 양부모가 아닌 친부모에 의해 일어난다. 친부모와 아이가 함께 사는 ‘정상가족’이 정말 ‘정상’인지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영화 <세자매>는 이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에 질문을 던진다. 현실에 있는 많은 가족은 정상적으로 살 수 없는데, 왜 아무도 그 문제를 피해자의 입을 통해 말하게 하지 않는지 꼬집는 영화다. 영화는 세 자매의 인생을 분리해서 비추는데, 그들은 각자의 삶 속에 숨어 있는 폭력과 비정상성에 걸려 넘어진다. 카메라는 마치 그들의 불행이 삶의 뒤편에서부터 불어오는 바람인 양 그들의 뒷모습을 자주 비추곤 한다. 그리고 제대로 된 희망도 없는 그들의 삶은 항상 어두운 조명 속에서 흐느낀다. 그리고 세 자매가 다시 만나게 될수록 그들의 비참한 삶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드러나게 된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또 기억나지도 않는 과거가 그들의 뒤편에서 숨통을 옥죄고 있었다. 그래서 세자매는 자신들도 모르게 그 과거 속으로 들어간다.   


  이 영화는 피해자가 피해자로 설 수 없게 만드는 사회에 질문을 던진다는 점에서 이창동 감독의 <밀양>과 닮았고, 서로 상처를 매만지고 보듬어줘야만 함께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점에서 알폰소 쿠아론의 <로마>와 닮아있다. 이 영화들의 제목은 모두 지역 이름이다. 이 영화의 단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바로 이 제목이다. 결국 문제는 기억과 공간이다. 세 자매가 모두 그곳에 가야만 자신들의 기억을 온전히 마주할 수 있는 공간 말이다. 그래서 제목은 좀 바꿔줬으면 좋겠다. 그들의 고향 이름으로.


* 글은 진지하게 썼지만, 영화 자체는 코믹/스릴러(?) 같은 느낌이다. 정말 강추하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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