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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성중 Feb 22. 2021

'찐' INTP가 말하는 MBTI

우리가 과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

  필자는 '찐' INTP다. 대학교 1학년 때 첫 MBTI 검사를 했고, 그 이후로도 재미로 MBTI 검사를 할 때마다 INTP가 나왔다. INTP는 내향(I), 직관(N), 사고(T), 인식(P)의 조합으로, 요즘 유행하는 야매(?) 검사 결과로는 '논리적인 사색가'라고 정리된다. 논리적이고, 추상적이고, 분석적이라는 등등 여러 특징들이 INTP에 속한다고 한다. 주로 학문을 연구하는 분야의 사람들이 이 성격 유형에 속한다고 한다. 



  필자의 개인적인 소개를 하자면, 대학에서 문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국어국문학으로 입학한 이후 많은 학생들이 취업을 위해 경영, 경제, 광고홍보학 등을 복수 전공할 때 필자는 철학을 복수 전공했다. 그리고 전형적인 '문과' 인생을 살 것처럼 대학을 다녔지만, 취미(?)로 진화생물학이나 현대 물리학에 큰 관심이 생겨서 교양과학서부터 전공서적도 뒤적거리곤 했다. 다행히 고등학교 시절 가장 자신 있던 과목이 수학이었다.(이과생들 입장에서 문과 수학이 아무렇지 않겠지만) 그리고 대학을 졸업한 이후에도 여가시간에는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데, 철학책은 꼭 읽는 편이다. 무슨 수집가 마냥 새로운 번역서가 나오면 꼭 산다. 


  이 정도면 '찐' INTP인 게 증명된 거 같으니, 이제 MBTI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MBTI 즉, 마이어스-브릭스 성격 검사(Myers-Briggs Type Indicator)는 제대로 된 과학적 방법론이 심리학에 적용되지 않던 시절, 융의 심리학 이론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성격 검사다. 1970년대에 생겨난 이론인데, 요즘 정말 많은 곳에서 쓰이고 있다. 특히 10대에서 20대 사이에서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로 통하고 있다.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예상되는 반론에 대해 한 마디 해본다. "재미로 하는 건데 뭘 그리 진지하게 대하냐"라는 대답이 예상된다. 하지만 언제나 편견은 재미로 시작된다. 그리고 그 재미로 시작된 하나의 편견이 차별로 이어질 수 있다. 그리고 필자도 재미로 하고 있다. 앞서 말했듯이, 필자는 '찐' INTP이기 때문에 이런 게 재밌다. 


  MBTI의 가장 큰 문제는 모든 사람의 유형을 16가지로 규정해버린다는 것이다. MBTI에 따르면 전 세계의 모든 사람을 같은 성격 유형에 따라 16개의 건물에 나눠서 넣을 수 있다. 그렇게 넣어두고 나서는 그들의 차이를 설명할 방법은 없다. 그런데 정말 사람은 16가지로 분류될 수 있을까? 이는 마르크스가 사람을 자본가와 노동가로 나눈 것만큼 위험하고 부질없는 짓이다. 


  그 근거는 성격의 정의에서부터 시작된다. 노스캐롤라이나 채플힐 의과대학에서 심리학을 연구하는 박진영 교수에 따르면, 사람의 성격이란 "인간의 외적 특성이 아닌 내적 특성에 관한 것"이며, "일반적이고 안정적인 경향성"이다.(참조 1) 즉 우리는 사람의 외형을 두고 성격을 말하지 않는다. 이는 MBTI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우리는 성격을 이야기할 때, 일반적인 상황을 두고 논의해야 한다. 누구나 많은 사람들 앞에 서서 발표를 하면 긴장된다. 이때 이 사람을 두고 "너는 내향적이구나"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아무리 외향적인 사람이라도 때론 혼자 있고 싶을 때가 있다. 이때 이 사람을 두고 "너는 내향적이구나"라고 말하지 않는다. 


  문제는 너무 단순한 판단이다. MBTI 검사는 흑백논리로 진행된다. A라는 사람은 I이거나 E 거나, S이거나 N이거나, T이거나 F이거나, P이거나 J다. 중간은 없다. 그러나 실제 연구(참조 2)에 따르면 대부분의 사람은 중간에 속한다. 다시 말해서 각각의 2가지 유형 중 어디에 속한다고 하기 애매한 중간에 위치한 사람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대다수의 성격 요인들은 정규분포 형태를 띤다(참조 3)


 

대다수의 사람은 저 봉우리 중간에 위치한다.  


  게다가 성격의 유형도 현대 심리학에서 인정하는 이론과 다르다. 실제 현대 심리학에서 인정하는 사람의 성격 유형은 총 5가지로, 개방성, 성실성, 외향성, 원만성, 신경증이 그것이다. 이를 성격의 5 요인 이론(five-factor personality theory)이라고 부른다. 이 연구 결과는 각기 다른 나이, 인종, 성별, 문화에 따라 통계학적으로 분석한 것으로 MBTI와 달리 현대 과학의 방법론으로 진행됐다.

 

  이 이론은 MBTI처럼 흑백논리를 따르지 않는다. 각각의 성격 요인은 모두 독립적으로 어떤 사람은 개방적이지만, 내향적일 수 있고, 외향적이지만, 신경증이 높아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사람일 수 있다. 그리고 각각의 요인은 모 아니면 도가 아니라 통계적으로 상위 10%, 하위 30% 등으로 추정할 수 있다. 우리가 단순히 이를 20%씩 나눠서 성격요인을 구분해도 5의 5 제곱이니 총 3,125가지의 성격 유형이 나온다. 물론 이렇게 하는 것도 단순화한 것이다. 정말 다양한 사람이 있는데 3,125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다. 사람은 정말 다양하다. 그건 나 자신도 그렇고, 다른 사람도 그렇다. 선입견은 나 자신의 한계를 정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한계도 정해버린다. 성격에 대한 잘못된 이해는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미래도 방해할 수 있다. 사람은 자기 예언적이라 자기 자신을 그 틀에 넣고 그것에 맞춰서 행동하게 된다. MBTI를 그냥 재미로 알아본다지만, 그 정도가 손 없는 날 이사하는 것과 같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리고 이건 이사를 간 사람이 훗날 불행을 겪자 "그러게 손 없는 날 이사하지 그랬어"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꼴이다. 


  어설픈 이해는 때로 큰 피해를 낳을 수 있다. 작년 독감 백신 사태가 대표적인 예다. 선후관계와 인과관계를 구분하지 못한 언론은 독감 백신 이후 사망자 숫자를 매일 세며 안정적인 백신 접종을 방해했다. 독감 백신 때문에 죽은 사람은 없음에도 독감 백신을 맞은 이후 죽은 사람의 숫자를 일일이 보도하며 선동한 것이다. 곧 코로나 19 백신 접종이 시작될 것이다. 과학의 영역은 철저히 과학적으로 다뤄야 함에도 우리는 너무나 쉽게 오해에 빠진다. MBTI는 그런 우리 사회의 한 면이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필자는 어떤 방식으로든 규정당하는 걸 싫어한다. 그러니 우리도 서로 성격으로 규정하지 말자.   


※MBTI의 문제점에 대해 더 알아보고 싶은 분은  「너무 복잡한 인간, 너무 단순한 MBTI」『SKEPTIC vol.23』를 읽어보길 바란다. 필자도 이 글에서 대부분의 정보를 얻었다.


참조 1 : 박진영, 「너무 복잡한 인간, 너무 단순한 MBTI」『SKEPTIC vol.23』, 바다출판사, 2020, 11

참조 2 : Schmitt, D. P., Allik, J., McCrae, R. R., & Benet-Martinez, V. (2007). The geographic distribution of big Five personality traits: Patterns and profiles of human self-description across 56 nations. Journal of Cross-cultural Psychology, 38, 173-212. 

참조 3 :  박진영, 「너무 복잡한 인간, 너무 단순한 MBTI」『SKEPTIC vol.23』, 바다출판사, 202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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