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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필수 Jul 19. 2021

영웅의 본색을 드러내라

내 안에는 영웅이 산다


영웅의 본색을 드러내라






사무실 빌딩이 즐비한 뉴욕 거리에 노숙을 하는 거지가 있었다. 그는 매일 아침 바쁜 출근시간부터 종이박스에 도와 달라는 문구를 적어 놓고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구걸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지나가던 한 회사원이 그 사람 앞에 멈추어 섰다. 그는 여느 사람들처럼 그냥 동전만 던져주고 지나가지 않았다.



그는 구걸하는 사람의 종이박스 위에 놓인 볼펜을 집으며 물었다. “이 볼펜 얼마죠?” 거지는 처음 받아보는 질문에 당황해서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머뭇거리고 있는 사이에 그가 다시 물었다. “2달러에 파시겠어요?” 거지는 얼떨결에 대답했다. “예, 좋습니다.” 회사원은 거지에게 2달러를 주고, 그 볼펜을 가지고 총총히 사라졌다.



거지는 ‘볼펜을 팔아서’ 받은 2달러짜리 지폐를 만지작거리며 생각했다. ‘그래, 망하기 전에는 나도 가게에서 물건을 팔았었지. 어차피 이 자리에 앉아서 구걸할 거라면, 볼펜을 가져다 파는 게 낫지 않을까?’ 그는 다음 날부터 돈을 구걸하는 대신 볼펜을 팔기 시작했다.







행인들의 반응은 놀라웠다. 기대 이상으로 많은 사람들이 그의 볼펜을 사주었다. 그가 거지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더 많은 볼펜을 사주었다. 그는 전보다 몇배나 되는 돈을 벌게 되었고, 그 돈을 꾸준히 모아서 작은 문구점을 차렸다. 그는 성실하게 일해서 문구점을 키워 나갔고, 나중에는 문구도매점 사장까지 되었다.



사업에 성공한 그는 어느 날 문득, 거지로 지내던 자신의 볼펜을 사갔던 회사원 생각이 났다. 돌아보면 결국 그가 거둔 성공은 모두 그 회사원 덕분이 아니었던가! 그를 만나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었다. 다행히도 그는 자기가 출근시간마다 구걸을 하던 그 자리에서, 며칠만에 그를 만날 수 있었다.







그 회사원은 거지에서 사업가로 변신한 그의 모습을 보고,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사업가가 된 그는 회사원에게 말했다. “그때 저를 불쌍하게 보고 돈만 던져 주셨다면, 아마도 저는 계속 거지로 지냈을 겁니다. 하지만, 저를 ‘거지’로 보지 않고, ‘상인’으로 존중해 주셨기 때문에, 제 자신의 가치와 능력을 새롭게 발견하고, 사업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오래 전에 들었던 이야기지만, 어떻게 하는 것이 상대방을 정말 돕는 것인가를 잘 보여주는 일화다. 우리는 흔히 돈이나 필요한 물품을 제공하는 것이 상대방을 돕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대개의 경우 물질적인 도움은 의존성을 키우고 자존감을 낮출 뿐, 진정한 자아실현이나 행복으로 이끌어주지 못한다.







실제로 아일랜드를 여행하면서 노숙자 체험을 시도했던 분은 자신의 경험을 이렇게 말한다. ‘부끄러웠다. 나도 모르게 비굴해졌다. 사람들이 돈을 주려고 하니까 은근 기대하면서, 갑자기 더 불쌍한 표정을 짓게 되었다. 내가 작아지는 느낌. 이렇게 계속하면 자존감이 절대적으로 낮아지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노숙자들이 재기하지 못하는 이유도 이것이 아닐까?’



구걸하는 사람에게 몇 푼 건네 주는 일은 선한 행위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주는 사람의 자기만족을 위한 ‘온정주의(溫情主義)’에 불과하다. 물질만 제공하는 것은 ‘적선(積善; 선을 쌓는 일)’이 아니다. 자기 내면에 있는 위대한 존재를 발견하고 자신의 무한한 능력을 발휘하도록 이끌어주는 것이 진정한 도움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진심으로 존중하고, 최고의 자존감을 회복하게 해주어야 한다.







20년 전, 내가 아직 초보 영어강사이던 시절에 어느 생명보험사 영업사원이 우리 학원을 방문했다. 깔끔한 외모에 반듯한 자세, 쉽고 친절한 설명 등 어느 것 하나 흠잡을 데가 없는 분이었다. 나는 그의 정중한 태도와 따뜻한 인상에 반해 그가 추천하는 상품에 바로 가입했다.



그리고 며칠 뒤, 그는 생명보험 가입에 필요한 내 병원 진단서를 떼기 위해 찾아왔다. 함께 병원에 가려고 나와 보니 최고급 자동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나를 자동차 뒷자리 최상석으로 안내하며 문을 열고 닫아주는 서비스는 드라마에 나오는 회장님이나 받을 법한 의전이었다. 이제 갓 서른의 젊은 강사에게는 과분하게 느껴지는 감동이었다.



내가 병원에서 여러 가지 진단을 받는 내내, 그 영업사원은 병원 복도에서 기다렸다. “영업을 하느라 바쁘실 테니 먼저 들어가 보세요. 진단이 끝나면 진단결과를 보내 드리겠습니다.”라고 했더니, 그가 대답했다. “아닙니다. 무슨 말씀을요. 고객님께서 진단을 받으시는 전과정을 도와드리는 일이 오늘 저에게 가장 중요한 업무입니다. 제가 이 일을 위해 있는 겁니다.”







나는 평소에 영업사원을 만나면 괜히 부담스러워서 자리를 같이 하기도 꺼렸다. 그런데 이 영업사원은 만날 때마다 반갑고 기분이 좋았다. 심지어 소식이 뜸할 때는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왜 그랬을까? 그가 나를 진심으로 존중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일개 보습학원 강사에 불과한 내가 초라하게 느껴지다가도, 그를 만나면 나 자신을 대단히 훌륭한 존재로 느끼게 되는 것이 좋았던 것이다.



이처럼 상대방을 진심으로 존중하는 마음은 상대방에게서 긍정적인 반응과 적극적인 행동을 이끌어낸다. 사람은 누구나 인정받고 싶고, 더 크고 훌륭한 존재가 되고 싶기 때문이다.







요즘 자녀문제로 상담을 요청하는 부모님이 부쩍 늘었다. 이분들이 공통적으로 말씀하시는 문제는 ‘아이가 부모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정이나 학교에서 주눅이 들어 우울한 감정에 휩싸인 아이들, 불안과 분노,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공격적인 행동을 하는 아이들 모두 부모님과 세상에 대해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다.



왜 자녀가 이런 반응을 보이게 되었을까? 그것은 부모가 자녀를 훌륭한 존재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중에 아이가 커서 무엇이 될까요? 어떻게 살게 될까요?”라는 질문에 대부분의 부모님은 “그러게 말입니다. 그게 걱정입니다.”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이야기를 들어보면 자녀를 걱정하고 야단치기만 했지, 진심으로 존중하거나 믿어주지는 않았다.



아들이 착한 심성과 뛰어난 지능을 갖고 있어도, 예절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아버지는 아들의 무례한 행동에 대해 폭행에 가까운 체벌을 한다. 심지어는 딸이 전교에서 1등을 하는데도 100점 만점을 받지 못하고 99점을 받았다고 심하게 야단을 친 엄마도 있다. 이 아이들이 공부에 의욕을 잃고 부모와 대화를 끊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나는 이 부모님들께 다시 질문을 한다. “자녀가 자라서 위대한 인물이 된다면 지금 자녀를 어떻게 대하시겠습니까?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나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처럼 세계적으로 성공한 사람이 된다면요? 아니, 장차 예수님이나 부처님처럼 위대한 성자가 된다면 지금 자녀를 어떻게 대하시겠습니까?”



내 자녀가 그렇게 위대한 인물이 된다고 정말 믿으면 그에 걸맞은 대접을 하게 된다. 그리고 부모의 믿음 속에서 그렇게 존중받으며 자란 아이는 부모의 생각만큼 훌륭한 인물이 된다. 그러니 부모가 할 일은 자녀가 정말 훌륭한 존재가 될 것이라고 믿고, 그 내면에 이미 완성되어 있는 위대한 모습만을 바라보는 것이다.



우리 모두의 내면에는 위대한 영웅(英雄)이 산다. 눈에 보이는 모습이 다르고, 각자의 능력에 차이가 있는 것처럼 보여도 그 안에는 영원한 생명이며 무한능력의 존재이다. 그러나 이 영웅의 본색(本色)인 쌩쌩한 생명과 무한한 능력을 발휘하게 하려면, 먼저 그 영웅의 존재를 믿고 존중해야 한다. 겉으로 드러난 모습이 아무리 초라하고 불쌍하고 구제불능으로 보일지라도, 내면에 있는 완전한 존재, 위대한 존재를 바라보고 끝까지 믿어주어야 한다.







내가 수억 원의 빚, 아내와의 갈등, 끊임없는 신체적 고통에 시달릴 때, 모두들 나를 불쌍하게 보았다. 그리고 나 자신도 가망 없다고 여겼다. 그러나 그 절망의 순간에 만난 코치님께서는 “너는 원래 무한능력의 존재이고 행복 자체다.”라고 선언해 주셨다. 그렇게 전에는 상상도 해본 적이 없는 내 안의 위대한 영웅을 불러내 주셨다.



그리고 거듭되는 나의 잘못과 실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내 안에 있는 위대한 존재만 봐주셨다. 코치님의 그 변함없는 믿음과 존중, 포기하지 않는 사랑이 아니었다면, 이토록 즐겁고 감사한 삶, 영웅의 본색을 드러내는 삶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어느 사찰의 대웅전에서 불상을 보거나 교회나 성당의 십자가를 볼 때면, 온갖 부정적인 생각과 마음의 장애를 이겨내고 자신의 위대한 불성과 신성을 온천하에 드러낸 영웅들에게 경의를 표하게 된다. 그러나 그 영웅의 본색이 바로 지금 우리에게도 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진정한 본성이다.



겉으로 드러난 어떤 모습에도 속지 말고, 자신과 타인의 내면에 있는 위대한 영웅을 불러내어 영웅답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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