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토요일. 집에 와서 점심을 먹었다. 밥을 먹으며 혼자서 술을 한 잔 마신다는 게 좀 과했던 모양이다. 적잖은 나이를 먹어도 일이 잘 안 풀리면 술에 기대게 되는 게 사람의 마음이다.
문제의 발단은 집에서 사용하던 냉장고가 고장이 나서 새로 한 대를 들여놓아야 하는데 그게 260만 원이 넘는단다. 당장 내게는 그런 돈이 없다. 요즘은 돈 융통이 전혀 안 되고 있다. 그 이유를 알 수 없으나 근래에는 전에는 느낄 수 없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필요한 건 사들여야 하는데 지금 내 형편이 그럴 수 없다면 보통의 남자는 기가 죽는 게 정상이다.
나라는 놈은 젊었을 때도 경제적 능력이 신통치 못했다. 그런 내가 밀리고 밀려 한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요즘 그만 일에 충격을 받을 일이 아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일이 이 지경이면 사람의 마음이 편할 수 없다. 그래서 대낮에 한잔한 거다. 홧술은 아니었지만 한잔한다는 게 조금 심했던 모양이다. 취해서 누웠다가 일어나보니 집에는 나 혼자밖에 없다. 마음 편할 일이 아니다.
토요일의 해가 넘어가는 모양이다. 방 안에 있으니 볼 수는 없지만 조금씩 어두워지는 걸 보면 이미 해는 기운 게 분명하다. 지금부터는 급격하게 어둠이 밀고 올 것이다. 어렸을 때 낮잠 자고 일어나 집을 들러보고 아무도 없을 때 느껴지던 황망함이 다시 살아난다. 능력도 없는 이 늙은이가. 외롭게 시리.
전화했더니 성주 엄마는 시장에 나왔고 아이들은 조금 더 있어야 올 시간이란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어떤 경우에도 술이 깨는 순간에 덜렁 혼자라는 것을 느끼는 기분은 절대 좋은 일이 아니다.
문득 냉장고 생각이 났다. 내가 내색을 안 해도 우리의 형편을 뻔히 아는 아내가 모진 소리를 할 사람은 아니다. 그렇다고 그딴 일 하나 흔쾌하게 처리하지 못하는 남자의 마음이 상쾌할 수 없다.
이번에는, 혼자 있는 게 외로워서 한 잔을 더 할까 하다가 참았다. 주량이 확 줄어서 조금만 더 마시면 며칠은 속이 쓰리다. 참담한 내면을 내색해서는 안 될 나이를 나는 이미 지나버렸다.
나는 더 살아야 할까?
내가 기를 쓰며 살고 싶어서 몸부림치는 놈은 아닌데·····.
2024. 10.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