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imnogoodnw
Aug 17. 2023
골프, 그만두는 중입니다.
골프는 힘을 빼야 잘 친다니까
나, 살면서 나 자신에게 재능 없다, 재능 없다 참 많이도 말해왔지만, 사실은 그 누구보다도 재능으로 충만한 거 잘 알고 있었다. ‘잘한다’의 기준이 남들 대비 너무 엄격했을 뿐. 0.01% 안에 든 건 많이 없어도 0.1% 안에 든 건 수두룩했다. 잘하고 싶다, 마음먹은 건 단 한 번도 못해본 적이 없었다. 뭐든 좀만 하면 내 주변에선 제일 잘했고, 거기서 좀만 더 하면 순위표의 수 페이지 내에서 내 이름을 찾을 수 있었다. 나에게, 뭐든 내가 잘하고 싶은 걸 잘하는 것은 당연했다.
재작년 초, MZ세대에서 골프가 유행한단 말이 슬슬 나올 즈음, 나도 골프를 시작했다. MZ세대라서 시작한 건 아니고(이젠 MZ에 끼워달라기도 민망한 나이다), 그즈음 친구들과 주말 새벽마다 스크린 골프장에 모여 놀다 보니, 구경만 하고 앉아있기엔 짝-짝- 소리가 속된 말로 참 찰지게 들려왔다. 친구들에게 묻고 물어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지 의견을 구하곤, 회사 근처 연습장을 끊었다.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잘하고 싶은 것을 찾은 것은. 음, 아마 회사 들어와서 시작한 게임 이후로 처음이었으니까, 적어도 3년 만에 느껴보는 고양감이었다. 뭐가 그리 재밌었는진 지금도 잘 모르겠지만, 시작하자마자 문자 그대로 골프에 미쳐버렸다. 첫 두 달 동안 연습장에 매일 간 건 물론이고, 스크린골프도 50회 정도 라운딩을 했다. 연습을 마친 후에 집 앞에서 밥을 먹다가, 유튜브로 뭔가 이거다! 싶은 것을 보면, 그 길로 스크린 골프장으로 가 채를 땅에 찍어댔다. 차도 없는 주제에, 아니 그때는 면허도 없었다, 인도어 연습장에 가고 싶어 주말이면 친구들에게 부탁해 근교 인도어로 향했다. 회사 때려치우고 골프 선수할 생각이냐는 말을 제일 많이 들었던 것 같다.
처음 라운딩 갔을 때는, 물론 이리저리 뛰어다니긴 했지만, 공도 아주 잘 뜬 데다가, 머리 올리는 사람치곤 스코어도 나쁘지 않았다. 겉으론 너무 어려워요- 했지만, 속으론, 역시나, 이것도 재능이 충만하군. 나답게, 오만하고 오만했다. 제일 친한 인간한테 내 생각엔 이것도 한 2년, 3년이면 수준급으로 칠 것 같다고, 내 샷이 이렇고 저렇고 말해가며 나의 탁월함을 뽐냈었다.
그렇게 2년 반이 흘렀다. 중간에 잠깐, 기껏해야 1주일 이렇게 쉰 적은 있지만 참 꾸준히도 쳐왔다. 한창 칠 때는 주 10시간 이상 연습에 매진했고, 특훈이라며 친구 하나와 아무도 없는 한 겨울의 인도어 연습장에 거진 매일 다니기도 했다. 골프 친 지 1년 즈음되었을 때는, 달에 8회 라운딩을 나간 적도 있었다. 흥미야 본래 부침이 있는 법이니 항상 도취되어 있었다 말할 순 없겠지만, 감히 단언컨대, 직장인 치고 나보다 열심히 연습한 사람 많지 않을게다.
그리고 지금, 골프채는 당분간 내려놓으려 한다. 처음으로 찾았다. 잘하고 싶은데 잘 못하는 거. 슬슬 인정해야 할 때가 온 듯하다. 아니, 사실 속으론 예전에 알았다. 이거 노력해 봤자 곧 끝이 보이겠구나. 내가 해왔던 것들과는 다른 성격의 무언가구나. 인정을 못했을 뿐이다. 내 인생에서 내가 잘하고 싶은 걸 잘하는 것은 당연했으니까. 이제야, 살면서 내게 질투 난다고 말하던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골프채를 내려놓을 용기가 생겼다.
꼭 무언가를 잘해야만 어떤 행위에 대한 당위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그 자체를 즐기는 것만으로도, 당위는 충분하다. 다만, 나는 그런 인간이 못되어서, 내가 못하는 꼴은 보고 싶지가 않다. 재능 없는 인간으로 남아 좌우로 터지는 볼을 보고 있자면, 즐기겠다 다짐하다가도 화가 머리끝까지 난다. 아직은 어린 애인 까닭이다. 언젠가 어른이 되면, 재능 없음도, 재능 있음도 별게 아닌 것을 가슴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날이 오면, 다시 골프채를 휘두를 수 있을게다. 혹시 모르지, 그때는 지금 보다 훨씬 잘 칠 수 있을지도. 힘을 빼야 잘 친다잖아. 하지만 지금은, 좀 아쉽지만, 골프, 그만두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