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감(旣視感).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일이나 처음 본 인물, 광경 등이 이전에 언젠가 경험하였거나 보았던 것처럼 여겨지는 느낌을 이르는 말로, 불어인 데자뷔(deja vu)와 같은 의미를 갖는다. 요즘 산책을 하려고 집 앞 공원으로 길을 나서면 불쑥불쑥 이 말이 머릿속을 파고든다.
긴 겨울에 이어 봄날 같지 않은 날씨로 혼란스럽던 계절이 느닷없는 산불로 인해 어수선해지더니, 사람 사는 세상 또한 덩달아 혼탁(混濁)해졌다. 대통령이 탄핵된 새삼스럽지 않은 상황이 다시 재현되고만 것이다. 그래서일까, 모처럼 만에 공원 광장을 가로질러 걸어가는데 늘 보아왔던 주위 광경이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데자뷔! 공원 한가운데 덩그러니 나 혼자 내던져진 듯한 고립감이 엄습(掩襲)하면서, 으슬으슬 몸에 소름이 돋았다. 난데없이, 사람들이 그리워졌다.
봄이 오고 가는데 날씨는 앞뒤 따로 순서가 없다. 특히, 올해처럼 4월의 막바지에 이르러 눈발마저 휘날린다면 기후의 변화에 따라 계절의 경계를 나누는 일이 어쩌면 무의미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짓궂은 날씨의 분탕질 속에서도 꿋꿋이 그 순서를 따르는 것이 있다. 바로 꽃이 피고 지는 순서이다.
보통, 날이 풀리면서 가장 먼저 꽃을 피움으로써 봄의 전령사(傳令使)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매화이다. 이른 봄날, 사진을 즐겨 찍는 사람들이 홍매화를 카메라에 담으려고 전국 각지로부터 통도사를 찾는 일이 지금은 더 이상 비밀스러운 이야기가 아니다. 매화가 필 무렵이면 산수유도 이내 노란 꽃망울을 터뜨린다. 뒤를 이어, 긴 겨우내 새초롬이 가지 끝을 움으로 갈무리한 채 인고(忍苦)의 나날을 보내던 목련이 순백(純白)의 꽃잎을 활짝 열어 봄날의 화사함을 더한다.
3월 중순을 넘어서면서부터는 노란 개나리꽃이 지천(至賤)으로 널려있다. 산기슭을 따라서 연분홍 진달래가 띄엄띄엄 눈에 띄는가 싶더니만, 가로수 길을 따라 늘어선 벚나무들이 앞다퉈 활짝 꽃망울을 터트린다. 꽃샘추위와 사나운 봄비를 맞아 꽃송이 채로 뚝뚝 져버린 동백과 함께, 벚꽃이 눈꽃처럼 봄바람에 휘날리면 아파트 화단 울타리 너머로 진홍색 철쭉이 화려하게 피어나 봄의 끝자락을 장식한다.
이처럼, 봄꽃이 순서대로 꽃을 피우면서부터 공원을 찾는 사람들의 옷차림도 하루가 다르게 가벼워지고 있다. 오늘은 평일 오후인데도 앳되어 보이는 여학생들이 공원 이곳저곳에서 눈에 띄는데, 하나같이 등하굣길의 발랄한 간편복 차림이었다. 산불로 인해 공원을 품고 있는 등산로의 출입을 한동안 막아놓아서인지, 공원광장은 물론, 미술관이나 그늘막 쉼터로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몰려 어디를 가든 무척 어수선했다. 일순, 익숙했던 공원 안 풍경이 별안간 낯설어지면서 마치 철 지난 바닷가를 홀로 서 있는 듯한 쓸쓸함이 몰려왔다.
그런데, 혼자 걷는 일이 익숙해서일까 이런 막막함이 낯설긴 하지만 몸에 잘 맞는 옷을 입었을 때처럼 한편으론 편안하기도 하다. 잠시, 질곡(桎梏)같이 헤어날 수 없을 상념(想念)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데 어디선가 까르르 밝게 웃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벚나무 아래의 벤치에 엉덩이를 서로 디밀고 앉은 네댓 명의 여학생들이, 화사하게 핀 벚꽃을 배경으로 이리저리 폰을 돌려가며 셀카를 찍느라 정신이 없었다. 배시시 웃고 있는 아이 하나와 우연히 눈길이 마주쳤다. 엉덩이를 두어 번 들썩거리더니, 쪼르르 잰걸음으로 내게로 달려와서는 슬그머니시 휴대폰을 디밀었다.
"아저씨, 우리 사진 한 장 좀 찍어 주이소." 무엇보다, '아저씨'라 불러주는 아이의 말본새가 너무나 이뻤다. 모처럼 만에 들어보는 반가운 말이기도 했지만, 집을 나설 때 로션을 바르면서 귀밑머리에다 향수도 살짝 뿌려주고, 무엇보다 스포티한 애슬레틱룩에 베이스볼 캡까지 쓰고 온 것이 암만 생각해도 무척 잘 한 일인 양 어깨가 으쓱했다.
여러 포즈를 취하도록 과하게 일러가며 서너 컷 사진을 더 찍은 다음, 지나가는 말투로 은근히 물어보았다. "니들 오늘 학교 땡땡이쳤나? 지금 이 시간에, 공원이 웬일이야?" 꼰대 같았을 질문인데도 꼬박꼬박 대꾸를 하는 모양새가 우선은 무척 공손했다. 요즘 중학생들은 이른 방과 후에도 바로 귀가하지 못하고 두어 군데 교습소를 더 들러야 하는데, 그 사이 잠시 놀이 삼아 거쳐가는 곳이 바로 이 공원이라고 한다.
내친김에 은퇴한 영어선생님이라고 지난 신분까지 밝히고 나니, 쭈뼛거리며 거리를 두고 있던 나머지 아이들도 경계심을 허물면서 이런저런 물음에 순순히 답을 해주었다. 그런데, 공교로운 사실은 아이들 담임선생님이 지난날 재직했던 고등학교에서 함께 근무한 적이 있는 H 선생님이었다. 당시, 기간제교사로 방과 후 영어캠프의 전담했던 유능한 선생님이었는데, 이렇듯 뜻밖의 장소에서 계속 인연이 이어지고 있었다. 금방 찍은 사진을 한 장, 한 장 확인하고 있을 동안 페이스북에서 H 선생님의 프로필 사진을 찾아 보여주니 아이들이 박장대소하며 난리도 아니었다. 사진을 일일이 확인한 후 엄지 척을 해주는 아이들을 보면서, "나, 사진 잘 찍어!"라고 한 마디 툭 던져놓고 시크하게 돌아서는데, 돌아선 뒤꽁무니로 아이들의 짤랑짤랑한 웃음소리가 끊어질 듯 길숨히 이어졌다.
공원 벚나무 아래론 이미 져버린 꽃잎들이 듬성듬성 더미로 쌓여 있다. 봄바람이 기력(氣力)을 다해서인지 못다 쓸고 간 꽃잎들이 여기저기 봄의 흔적으로 남은 곳이다. 늦은 오후 적적한 공원에는 여전히 꽃비가 내리면서, 방금 켜진 가로등 사이로 화색(花色)을 다한 꽃잎들이 마치 눈송이처럼 봄바람에 실려 나풀 나폴 날아오르기도 한다. 쉴 새 없이 꽃이 피고 지면서 그 사이로 봄날이 가고 있는 것이다.
문득, 이종암 시인이 생각났다. 동료 교사였던 이 선생은 여러 명망(名望) 높은 문예지를 통해 왕성한 시작(詩作) 활동을 하면서 몇몇 지방신문에도 꾸준히 시평(詩評)을 쓰고 있는 현역 평론가이기도 하다. 다섯 살 손아래 아우이지만 살가운 마음씨가 친혈육 못지않게 다정다감한데, 이 친구가 한 번씩 취중(醉中)에 부르는 백설희의 '봄날은 간다'는 가히 절창(絶唱)이라 이를만하다. 본인 말을 빌자면, 고은 선생을 비롯한 원로 시인들조차 한 목소리로 앙코르를 외쳤을 만큼 널리 인정받는 노래라고 한다. 바로 눈앞으로 봄꽃이 피고 스러지는 찰나(刹那)의 순간에 그가 부른 '봄날은 간다'가 문득 머릿속에 떠오른 것이다.
봄날은 간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 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새파란 풀잎이 물에 떠서 흘러가더라
오늘도 꽃편지 내던지며
청노새 짤랑대는 역마차 길에
별이 뜨면 서로 웃고 별이 지면 서로 울던
실없는 그 기약에 봄날은 간다
열아홉 시절은 황혼 속에 슬퍼지더라
오늘도 앙가슴 두드리며
뜬구름 흘러가는 신작로 길에
새가 날면 따라 웃고 새가 울면 따라 울던
얄궂은 그 노래에 봄날은 간다
노랫말에도 나오듯이, 봄날은 누구에게나 연분홍 치마이고 새파란 풀잎이며 열아홉 시절, 인생의 황금기이다. 이런 봄날에 기약 없는 이별을 해야 하고 세월은 또 뜬구름처럼 흘러가니 어찌 애달프지 아니할 것인가. 머리로는 아니라 하지만, 소스라친 한기(寒氣)와 함께 다시 돋은 소름 때문에 몸속으로 짜르르 전율(戰慄)이 흘렀다. 그래, 바로 이 느낌! 세월의 흐름을 좇아 순탄하게 편승(便乘)해 온 인생이지만, 지나고 나니 삶의 마디마다 만만치 않은 옹이가 흔적으로 남았다. 계절은 흔적을 지우고 반복되지만 만만찮은 세월은 상처로 남아 다시 되돌릴 수 없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산불로 인해 보름 가까이 폐쇄(閉鎖)되었던 공원 등산로의 봉인(封印)이 오늘부로 해제되었다. 며칠 사이 간헐적(間歇的)으로 내린 비가 가는 봄을 재촉하고 있지만, 산야(山野)의 초목(草木)은 여전히 푸름으로 물들어 있다. 늦은 산책길을 나서며 뿌려놓은 내 품 안의 향수도 냄새의 색깔은 푸르름이다. 오늘도 하릴없이 봄날은 간다. 하지만 어쩌란 말인가, 하늘마저 푸르디푸른 이 아찔한 봄날을!
'봄날은 간다' by 장사익
https://youtu.be/JjPGjdPNIuc?si=V8EiN30PcbkTam6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