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지에 살아가는 모든이들에게 건배를, 그럼에도 우리의 결말은 장밋빛이길
타지에서 떨어져, 다시 말하면 출생지에서 의지를 가지고 벗어나 다른 지역 혹은 국가에 체류 혹은 거주하며 사는 또 다른 단점은, 나를 보고자 원근거지에 살던 가족이나 친구들이 큰 다짐을 해줘야 가까스로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들의 그런 자비에 감사하며 지내야 하는데, 감사하게도 이번에 친언니가 업무로 프랑스 툴루즈에 올 일이 생겨 언니를 만날 겸 + 남부 유럽 투어 겸 + 독일 영주권 취득 축하로 오랜만에 타국 바람이나 쐴 겸 언니를 만나러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만나 시간을 보낸 뒤, 각각 다른 비행기로 리스본에서 출발해 툴루즈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저녁 비행기는 웬만하면 타지 않으려고 하지만 일정도 빡빡했고, 선택권이 많지 않았으며, 툴루즈 가기 전 이미 리스본에서 꽤 많은 체력(정신적, 육체적)을 소진한 상태라 툴루즈를 가는 짐을 싸면서도 ‘정말 이게 맞나? 그냥 여기서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게 맞나?’ 하는 생각이 이어졌다.
모국어로 누군가와 소통할 수 있다는 점, 심지어 그 대상이 원가족이라는 점, 연말까지도 한국에 갈 여력도 없는 차에 그녀의 자비로 직접 이곳까지 행차해주셨다는 점. 그래서 그녀의 비즈니스 일정에 동행하는 여정까지 감내할 호기로 비행편은 이미 툴루즈까지 찍고 집(독일)으로 돌아오는 여정으로 끊어진 지 오래였다.
파리는 가봤지만 파리 외에 프랑스 다른 도시는 가본 적이 없었기에 궁금하기도 했고, 언니의 일 때문에 가게 된 도시여서 큰 기대는 하지 않은 상태였다.
문제는 공항에서 툴루즈행 비행기를 기다리는 탑승 대기줄에서부터 심상치 않았다는 것. 건조하고 밀폐된 공간이 주는 특성상 많은 사람들이 기침과 재채기를 하는 건 이해하지만, 본인이 증상이 있어도 타인을 크게 고려하지 않고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증상을 표현(?)하는 건 정말 이해하기 힘들었다.
탑승줄 바로 앞 승객 할머니는 몸이 많이 안 좋으신지 계속해서 기침을 (마스크 없이) 하셨고, 바로 내가 뒤에 서 있었는데도 거침없이 증상을 표출하셨다. 야간 비행 일정이기도 했고, 이미 공항까지 오는 길에 너무 에너지를 많이 소진했으며 짐도 많아서 마스크가 있음에도 배낭을 뒤져 착용할 생각을 하지 못했고, 내가 마스크 착용을 결심하기 전에 이미 그녀의 기침에 노출되어 때는 늦었다는 생각도 들어 특별히 신경 쓰지 않았다.
그 후 비행기를 탑승하고서 서서히 올라오는 나의 훌륭한 면역 반응들이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주었다. 대수롭지 않은 증상이겠거니, 오늘 너무 지쳤고 또 다른 나라에서 넘어오느라 그렇겠거니 넘기며 무사히 툴루즈에 도착해 택시를 통해 언니가 있는 호텔로 이동했다.
나는 투철한 경험주의자이다. 아무리 많은 사진과 넘쳐나는 인터넷 세상 속 정보를 듣더라도 직접 자신의 눈으로 보고 듣고 경험하기 전까지는 확신하거나 믿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역시나 다들 ‘프랑스’ 하면 자연스럽게 ‘파리’를 떠올리고 파리를 방문하듯이, 나는 ‘툴루즈’라는 도시를 들어본 적도 없었고, 물론 니스나 보르도 같은 비(非)파리 도시는 들어봤으나 ‘툴루즈’는 전혀 들어본 적이 없었기에 기대도 하지 않았다.
밤 10시를 넘어 공항에 3% 남은 핸드폰으로 다행히 택시에 탑승해 이동할 수 있었다. ‘유럽’이라고 해서 식당이며 상점들이 다 일찍 문 닫고 다들 철저한 워라밸의 삶을 살 것이라는 편견이 있었으나, 이게 웬걸 — 웬만한 서울보다 더 화려하게 운영 중인 주점과 바, 식당들을 택시 안에서 보며 휘둥그레했다.
알고 보니 프랑스는 식당 및 바 오픈 시간이 저녁 7시라는 것! 일반 식당 같은 경우 저녁 7시쯤 열어서 9시 30분에 닫는 일정이라고 한다. 놀라운 건 점심시간은 12시부터 2시 반까지 운영이라는 것. (그럼 점심 장사 이후 저녁 장사까지 긴 시간을 재료 및 손님 준비 외에 쉐프들이며 직원들은 어떻게 보낼까? 프랑스도 투잡, 쓰리잡이 트렌드인 걸까?)
내가 지내던 독일 쾰른과 다르게 조명 하나만으로도 따스함이 느껴지고, 아기자기한 장식이며 로맨틱한 도시 풍경에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음에도 도시의 따뜻함과 뭔지 모를 활기참을 가득 느낄 수 있었다.
무사히 호텔에 도착했고, 그때부터 몸이 좀 안 좋았던 건 순전히 비행으로 인한 일시적 건조함, 피곤, 짐으로 인한 근육통 정도로 치부했다. 툴루즈에서 다시 재회한 언니를 반갑게 만나 타국에서의 하루를 마무리했다.
아침이 되자 언니는 일터로 나간 지 오래였고, 유독 피곤하게 느껴졌던 나는 가까스로 호텔 조식 마감시간(오전 10시)에 딱 맞춰 호텔 레스토랑으로 내려가 약간의 민폐를 끼치며(마감 직전 손님이라니) 눈치껏 서둘러 아침식사를 했다.
타지에서 오랜만에 가지는 혼자만의 시간을 만끽하고자 다부지게 배낭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이때부터 심상치 않았다. 독일에서와 다르게 지리적으로 지중해와 가까워서인지 몰라도, 내리쬐는 햇빛이 너무 기분 좋고 얼굴에 닿는 따스함과 햇살에 행복했다.
다만 바람이 워낙 세차게 불어 배낭을 메고 있음에도 중심 잡기가 어려울 정도였고, 심지어 한 방향으로만 부는 바람이 아니라 동시다발적으로 부는 바람에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머리끈을 챙기지 못하고 나왔음이 한탄스러웠고, 이러다가는 걸어다니는 것조차 힘들겠다는 생각에 급하게 거리에 있는 아무 상점에 들어가 거금 16유로를 주고 머리핀을 구입할 정도였다.
바람이 이렇게 강하게 부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해 구글맵을 보니 역시나 근처에 강이 있었다. 액체성애자(액체로 된 — 예: 수영장, 바다, 강가, 호수 등 — 장소를 매우 사랑하는)인 나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툴루즈 유명 관광명소 방문도 고려하지 않은 채 무조건 강가를 향해 씩씩하게 걸어갔다.
가는 길에도 예쁘고 아기자기한 상점과 가게, 식당들이 줄지어 있었고, 유럽의 로망을 채워줄 만큼 아름답고 따뜻해 보였다. 강가에서 그동안 제대로 쬐지도 못했던 햇빛을 실컷 쬐며 마음속에 쌓였던 걱정과 근심, 염려를 물에 녹이듯 다 녹여내고 오랜만에 실컷 걸으니 이보다 행복할 수 없었다.
한낮의 평화가 나에게 다가온 듯 행복을 만끽했다.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강가에 이렇게 나처럼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평일 낮임에도 굉장히 많았다는 점과, 간단한 먹거리를 강가에서 즐기거나 혼자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많다는 점이었다. 1인 여행자인 나에게 안온한 위로가 되었다.
그렇게 강가에서의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같은 코스로 광장을 지나오는데, 오른쪽 눈에 갑자기 칼로 베이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너무나 당황스러운 상황에서 오히려 눈을 뜨면 그 칼에 베일 것 같은 두려움에 눈을 억지로 감으려 했고, 손으로 눈을 누른 것이 오히려 불씨를 키운 것 같았다.
그렇다고 길 한가운데서 주저앉을 수는 없는 법. 한쪽 눈이라도 떠서 낯선 이곳에서 최소한 호텔까지는 가야 했다. 그 순간이 정말 나를 가장 무력하게 느끼게 했고, 말도 통하지 않는 타국에서의 색다른 경험이었다.
너무나 당황한 나는 한쪽 눈에 의지한 채 호텔방으로 돌아왔고, 가지고 있던 인공눈물과 점안제를 넣어 최대한 세척하려 애썼으나 눈을 감을 때마다 느껴지는 베이는 듯한 통증은 변하지 않았다. 평소 이물질이 들어갔을 때의 감각과는 달랐다. 감각적으로 ‘이건 병원에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구글맵을 켜서 가장 빠르게 갈 수 있는 응급안과를 검색하고 택시를 타러 내려갔다. 다행히 오후 4시경으로 아직 병원이 닫지 않은 시간이었으나, 불어로 소통할 수 없다는 것이 가장 걱정이었다.
다행히 친절한 직원들의 도움으로 응급안과를 잘 찾을 수 있었고, 병원비나 보험 여부보다 통증이 너무 심해 당장 진료가 시급했다. 약 30~40분 정도 접수 후 진료를 보러 들어갔고, 첫 번째 의사(인턴으로 보였다)는 세극등으로 확인 후 “이미 이물질은 빠져나간 것 같고 곧 괜찮아질 것”이라 말했다.
그러나 여전히 통증이 남아 있었고, 잠시 후 다른 의사가 들어와 다시 염색용액으로 눈을 확인하더니, 불어로 뭔가 다급히 의사소통을 하더니 내게 말했다. “돌조각이 남아 있어서 지금 제거하려 합니다. 아프겠지만 조금만 참아보세요.”
역시나 돌조각이 박혀 있던 부위는 내가 계속 느끼던 통증의 지점과 정확히 일치했다. 제거 후 통증이 확연히 줄어든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타지에서 이렇게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독일에서 가입한 보험으로 프랑스 의료시설을 이용해도 비용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새로운 정보까지 얻게 되었다.
내 돌가루 소식에 놀라 업무도 다 끝내지 못한 채 병원으로 달려온 언니와 함께 병원을 나와 저녁 메뉴를 고르는데, 나는 ‘맵고 뜨거운 게 먹고 싶다’고 했고, 언니는 ‘중국음식 러버’였기에 결국 ‘미식의 나라 프랑스’에서의 마지막 저녁은 프랑스 현지식이 아닌 중국요리로 마무리했다. 뜨거운 국물을 먹으니 하루종일 느꼈던 피곤함과 통증이 가시는 듯했다.
그렇게 또 하루를 마무리하고 다음 날 정신없이 짐을 싸서 드디어 집(독일)으로 돌아가는 날. 툴루즈 공항에서 뒤셀도르프로 오는 비행기에서도 몸이 계속 안 좋았고, 비행기 내에서도 계속해서 기침과 재채기를 하는 승객들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해 마스크를 쓴 채 무사히 독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도 몸 상태가 너무 안 좋았고, 추가로 돌조각을 제거한 오른쪽 눈에도 다시 베이는 듯한 통증이 느껴져 독일에 도착하자마자 대학병원 응급안과에서 다시 진료를 받았다. 혹시 몰라 코로나 검사를 해보니 양성 판정.
그렇다. 이렇듯 다사다난했던 툴루즈 행은 나에게 돌가루와 (코)로나를 남겼지만, 그래도 툴루즈에서의 짧지만 아름다운 순간들, 햇살, 그리고 친족과의 우애와 시간은 다시 그 상황이 돌아온다 해도 바꾸지 않을 것이다.
인생에서 100%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순간은 쉽게 찾아오지 않지만, 그럼에도 내가 양보할 수 있는 한 이번 돌가루와 로나와 함께했던 우여곡절의 툴루즈는 여전히 나에게 장밋빛으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