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이 변태해가는 우리 모든 존재들을 위하여
자의든 타의든, ‘시간’이라는 물리력에 노출된 모든 존재들은 변화를 요구받기도 하고, 스스로 변화를 선택하기도 한다. 흔히 말하는 세월의 풍파라기보다, 생물학적 관점에서 보면 이는 ‘나’라는 종 혹은 존재가 생존에 유리한 방향으로 스스로를 변태시키는 과정일 수도 있다. 혹은 세월이 흐르며 보고 듣는 것들, 세상의 변화에 맞춰 자연스럽게 달라지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 ‘변화’에는 감정도 따라붙는다. 기분 좋은 변화, 설레는 변화, 파격적인 변화, 그리고 가슴이 문드러질 정도로 아픈 변화까지. 특히 늘 곁에 있던 소중한 존재가 갑자기 사라지는 부재의 변화는 누구에게나 버겁다.
이 피할 수 없는 삶의 명제 앞에서 우리가 살아남는 조건은 결국 ‘유연성’이 아닐까. 단단한 나뭇조각처럼 세상과 맞붙어 부러지는 것보다, 불에 달구어진 철처럼 탄성과 유연함을 지녀야만 변화의 물살을 헤엄쳐 나갈 수 있다는 걸 점점 깨닫고 있다. 특히 익숙한 환경에서 벗어나 타지에서 살아갈수록 내 기준과 상식이 통하지 않는 상황, “설마 이것까지?” 싶었던 변수들이 끊임없이 등장한다. 하지만 그만큼 성장의 레벨업이 이루어지는 재미도 있다.
우리가 겪는 변화는 정말 다양하다. 세상 내향형(I)이던 사람이 놀라울 만큼 외향적으로 변하기도 하고, 절대 먹지 않을 거라던 음식을 사랑하게 될 수도 있다. 아이를 원하지 않았던 사람이 아이로 인해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행복을 느끼기도 하고, 영원할 것 같던 일자리가 한순간에 사라질 수도 있다. 언제나 곁에 있을 것 같던 사람이 보이지 않게 되는 일도 생긴다.
이런 갑작스러운 변화들 앞에서 나는 늘 응원이 필요했다. 그때 현실적으로 내게 가장 도움이 되었던 것은 독서 + 글쓰기, 그리고 국물요리였다.(두 가지가 함께하면 더 좋고, 여기에 약간의 알코올이 곁들여지면 말할 것도 없다. 다만 과음은 금물이다!)
독서의 좋은 점은 ‘이미’ 누군가가 나와 같은 고민을 겪고, 그 경험을 글로 남겨두었다는 사실이다. 그들의 피와 살 같은 기록을 읽으며 동질감, 위안, 격려를 얻는다. 가까운 사람과의 대화도 좋지만, 의외로 가까운 사람들은 우리의 생각과 다를 때가 많다.
글쓰기 역시 손이 움직이고 머리가 그 뒤를 따라오며 두 번 생각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내 진짜 마음을 투명하게 들여다보게 되고, 그 시차의 틈에서 마음의 너덜한 부분이 봉합되기도 한다.
하지만 오늘의 주인공은 사실 ‘국물요리’다.
나는 국물 없이는 밥을 먹지 못하는 국물의 민족이다. 독일에서 길가에서 물 없이 빵을 먹는 사람들을 보며 충격을 받았을 정도다. 그래서 타지에서 내가 살아남기 위한 맞춤화 과정에서 가장 큰 구원은 육수 코인과 컵누들이었다. 육수 코인은 정말 상을 받아야 한다. 하나만 넣으면 오랜 시간 끓이지 않아도 깊은 맛이 나고, 각자의 재료 사정에 따라 다른 요리로 확장된다. 파우더형도 나와 더욱 간편해졌다.
오늘 이야기의 중심은 ‘컵누들’이다. 면 마니아인 나에게 컵누들은 양은 적어도 존재감만큼은 크다. 기름에 튀긴 면이 아니라는 보상감, 칼로리 부담이 적다는 위안, 먹기 편하다는 장점까지. 그래서 항상 쟁여둔다. 쌀쌀해진 요즘, 그리고 앞으로 진행해야 할 여러 프로젝트들. 예년과 다르게 대비해야 하는 경제적 문제들, 나를 둘러싼 주변의 변화들, 그리고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일들이 한꺼번에 겹쳐 오던 요즘 나는 자주 마음이 무거웠다. 개인 브랜딩, 예술가로서의 독립 준비, 여러 시도와 그에 따른 거절들, 그리고 그 사이 스며드는 불안과 의심까지.
그럴 때마다 나는 늘 그랬듯, “일단 따뜻한 국물부터 마시고 생각해보자”라고 생각한다. 나는 나에게 꽤 따뜻한 사람이다. 며칠 전, 배달로 쟁여둔 컵누들 마라탕맛을 뜯는데…
컵 밑면에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보통은 제조연월이나 품질 책임자 이름이 적혀 있을 자리인데, 마치 내가 이 문장을 확인하기를 기다렸다는 듯, 나를 응원하기 위해 숨막힐 정도로 타이트한 비닐 포장을 뚫고 여기까지 온 라면처럼 느껴졌다.
‘누구든’이 아니라 ‘너라면’.
그 말이 이상하게 나를 잘 아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라면이 뭔데, 이렇게 날 위로하나?
끓인 건 전기 포트 속 물밖에 없는데, 얼굴이 붉어져왔던건 수증기 때문이었을까.
11월은 아직 연말이라고 하기엔 이르지만, 라면을 생각하다 보니 '11'이 이젠 젓가락처럼 보인다. 어떤 고민이라도 라면처럼 후루룩 말아 넘길 수 있기를 바라며, 여러 변화와 질풍노도가 이어질 앞으로의 시간 속에서도, 나는 오늘만큼은 뜨거운 물속에서 젓가락을 피해 요리조리 헤엄치는 라면 면발처럼, 나 또한 라면을 닮아 여유롭게 유영하며 한 걸음 나아가 보려 한다.
라면이 부릅니다.
“너’라면’ 할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