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말 할 때는 그 누구나 다 아는 것이기에 굳이 말할 필요도 없는 사실이었다. 한 두 개의 단어로 인해 전달하고픈 말에 천지차이가 생긴다는 것.
하지만, 영어를 할 때는 이 엄청난 사실을 깨닫는 게 매우 어렵다. 몇 개 안 되는 영단어로 나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기에는 한계가 있고, 알고 있는 단어라고 하더라도 수박 겉핥기식 의미만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영문법에 100프로 맞는 표현만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머리와 입을 얼어붙게 만든다.
그래서 요즘에 새로운 영어공부방법을 만들어 가고 있다. 영어를 듣거나 읽을 때 내 눈에 띄는 표현이 있는 문장을 가지고 공부하는 것이다. 영어원어민은 이렇게 썼는데, 영어를 배우는 나 같은 사람들은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영어로 표현할지 생각해 보는 것.
주인공은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다. 어느 날 그녀는 실수로 다리 아래로 밀쳐낸 여자를 환자로 받게 된다. 간호사는 이 사람이 살면 자신의 범죄가 탄로 나게 된다는 생각에 다른 환자의 인슐린 주사를 이 환자에게 투여하고 결국 환자는 죽게 된다. 병원에는 사실대로 자신이 '실수'로 다른 환자의 인슐린 주사를 죽은 환자에게 투여했다고 진술한다. 이 날 병원에서 집으로 가는 길에 휴대폰에 있는 부재중 통화와 음성메시지를 발견한다.
I can’t bring myself to listen to the voice mail.
이 대목을 들으면서 난 갑자기 궁금했졌다.
I can’t listen to the voice mail.
[음성 메시지를 들을 수 없었다]
라고 해도 될 것 같은데 굳이 "can't bring myself to"라는 거추장스러운 단어를 더 단 이유가 뭘까?
의미가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난 왜 영어식으로 사고를 못하는 걸까?'라고 자신의 한국식 뇌를 저주하거나 영어권 국가에서 태어나지 못한 자신의 운명을 한탄한다. 이런 자기 저주는 결코 영어공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자아를 위축시켜 영어공부와 담을 쌓게 도와줄 뿐이다.
내가 생각하지도 못한 표현을 누가 쓰거나 말할 때, 가장 건강하고 올바른 태도는 다음과 같다.
"나는 이렇게 말할 것 같은데, 저 사람은 저렇게 말하네. 내가 생각한 표현과 저 사람이 쓴 표현 차이는 뭘까?"
이런 질문과 궁금증은 진정한 영어공부로 이어질 수 있다.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표현도 더 정확하게 알 수 있고, 새로운 표현 방식도 배울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먼저 I can't listen to the voice mail.
can의 어원을 먼저 파악해 보자.
- 어떤 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이나 지식이 있다.
- 어떤 행동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노하우'가 있다.
-뭔가를 배워서 무언가를 해낼 수 있는 정신적, 육체적 능력이 있다.
can't listen to 하면 listen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주위 시끄러운 소음이나 통화질이 나빠서 음성메시지를 들을 수 없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아니면 어떤 두려움의 감정으로 인해 손가락으로 음성메시지 버튼을 누를 수 없는 상황일 수도 있다. 이렇듯, can자체에 다양한 의미가 들어가 있어서 이 문장은 딱히 어떤 상황인지 구체적으로 말해주지 못한다. 이야기의 문맥에 따라 결정되는 애매모호한 문장이 되는 것이다.
반면 I can't bring myself to listen to the voice mail.
bring의 어원을 보자
가지고 가다
운반하다
어떤 것이 따라서 오다.
만들어내다
제공하다
bring은 보통 '가져오다, 야기하다'라는 의미로 알고 있는데, 이제부터는 bring의 어원에 해당하는 단어를 다 하나로 싸잡아 bring의 의미를 이해해야 한다.
can't bring myself 자기 자신을 잡고 질질 따라오게 할 능력이 없다는 의미다. 즉, 주어는 음성 메시지를 들을 수 있는 능력과 상황이 충분히 되지만 내적 심경으로 인해 듣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단순히 can't listen만 쓴 문장에 비해서 주어의 감정을 훨씬 더 강하게 표현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위 두 문장의 문법구조를 살펴보자.
I can't listen to the voice mail.
이 문장은 주어와 동사가 핵심인 1 형식 문장이다. 1 형식 문장은 단어가 무엇이든지 상관없이 전부 '주어가 스스로 동사행동을 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이 문장은 '나는 스스로 들을 수 없다.'라는 기본 의미가 깔려있다.
I can't bring myself to listen to the voice mail.
이 문장은 주어+동사+목적어가 핵심인 3 형식 문장이다. 3 형식 문장은 '주어가 목적어를 가지고 동사행동을 한다'라는 의미가 있다. 즉, '나는 나 자신을 데려올 수 없다.' 다른 말로 하면 '도저히 할 수 없다'
내가 자주 쓰는 영어표현을 잘 살펴보자. 혹시 1 형식 문장 구조만 너무 많이 쓰는 건 아닌지, 아니면 3 형식 문장구조만 쓰는지 잘 보고 같은 뜻이라도 다른 문장 형식으로 표현해 볼 수 있는 방법도 생각해 보고 써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