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영어를 읽으며 날 깜짝 놀라게 만드는 문장을 만나곤 한다.
"이런 식으로도 글을 쓸 수 있다고?"
토종 한국인 사고방식으로는 전혀 나올 수 없을 법한 영어 표현이다. 순간의 어리벙벙함을 애써 달랜 후 문장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영어는 사람이나 어떤 물건이 중요하기보다는 말하고자 하는 상황의 '원인'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원인을 주어로 삼고 문장을 만들어 간다.
(1) The rustle of the sheet makes my gaze whip to her face.
이 문장은 단순하게 말하자면 "내가 갑자기 그녀의 얼굴을 쳐다봤다"라는 의미이다. 하지만, 이 문장을 쓴 사람은 '내가 그녀의 얼굴을 쳐다본'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그 원인을 문장의 주어로 시작해서 상황의 맥락까지 한숨에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The rustle of the sheet
'이불이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이것을 문장의 주어로 하게 되면 굳이 상황을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가 없게 된다. ( 난 이불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들었어. 그래서 소리 나는 곳으로 내 시선을 홱하고 움직였지. 그녀의 얼굴이 보였어. 구구절절...)
바스락거리는 이불 소리 때문에 얼굴을 홱 돌려 그녀의 얼굴을 보게 된 상황을 영어는 '상황의 원인'을 주어로 삼아 매우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효과적으로 표현한다는 의미는 문장에서 쓰이는 주어와 동사의 쌍이 1개라는 것이다. 구구절절하게 설명하게 되면 주어와 동사가 2개 이상으로 훌쩍 넘는 것은 시간문제고, 영어는 이런 식의 문장을 지저분하다고 생각한다.
The rustle of the sheet (주어)
'이불이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makes (동사)
'만들다' (우리말로 더 자연스럽게 번역하면, "소리 때문에 ~하게 되다")
my gaze whip to her face (이 단어구는 문장이 아니다. 동사 (make)가 my gaze (내 시선)을 가지고 my gaze가 whip (홱 잡아채다)을 하게 만든 것이다.)
'내 시선을 그녀의 얼굴로 홱 돌리다'
이런 식의 또 다른 문장을 살펴보자.
A glance at the kitchen clock has me moving.
이 문장의 의미는 부엌에 걸린 시계를 잠깐 쳐다본 후, 시간이 많이 늦었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래서 몸을 부산하게 움직였다는 것이다. 영어는 이 모든 상황을 주어와 동사 1쌍으로 단칼에 무 썰듯 깨끗하게 해결했다.
'나는 부엌 시계를 잠깐 쳐다봤어'라는 문장을 영어는 명사 무리로 바꾼다.
A glance at the kitchen clock (주어)
'부엌 시계를 흘끗 보니'
이렇게 해 놓고 보니, 영어가 주어로 사용하는 표현은 우리말로 볼 때 부사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부사는 6하 원칙에서 '누가', '무엇을' '하다'를 뺀 나머지 모든 내용을 가리키는 것이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왜)
has (동사)
make와 비슷하게 무엇인가를 강제로 어떤 행동을 하게 만드는 의미를 가진다. 하지만 make가 has에 비해 강제성이 더 강하고 has는 뭔가 더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상황을 의미한다. 문법적으로도 그래서 make 뒤에 오는 동사는 동사원형이 올 수밖에 없다. make가 힘센 깡패라고 생각해라. 그러면 그 뒤에 오는 동사들은 전부 얼어버려서 형태가 변할 수 없게 되는 것!
하지만 has뒤에는 ing를 붙인 '형용사'가 올 수 있다.
has me moving
한국어로 말할때 주어라고 해서 그것을 그대로 영어문장의 주어로 쓰게 되면 뭔가 어색해지는 경우가 많아진다. 일대일 대응만 하는 일차함수적 사고에서 벗어나 한국어 주어를 영어로 쓸때는 부사로 쓰거나 동사로 쓰거나 다양하게 바꿔서 표현해는 유연한 사고를 해보자.
사고의 유연성을 기르는 것이 영어를 공부하는 가장 큰 이유가 되어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뽐내거나, 여행할때 편하게 쓸 수 있다거나,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것 등등의 이유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것들은 모두 부차적인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