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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희로운 Mar 23. 2024

서른 해오름달 사흘째의 쪽지로부터

마침내 겨울을 건너 봄의 초입에서야,

어느덧 3월이고,
커피 모임에 나간 지 10개월, 1년이 다 되어간다.

이직한 지도 벌써 10개월이 되었다.


최근 불특정 다수와 나누는 이야기가 잦아졌다.


일의 특성이기도 하지만 나의 특성이기도 하여,

모르는 사람들과 또 다른 세계에 대한 얘길 하는 것이 퍽 즐거워졌다.


주제가 있는 커피 챗이라는 게 혹시 이런 걸까?

위계와 R&R이 명확하던

전 직장사람들과의 관계만에서는 생각도 못할 교류였다.


모르는 사람과 얘기하는 게 가장 효율적이지 않다는 말을 달고 살았는데

어쩌면 얕고 넓은 관계야 말로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돌아보니,

사실 나는 지친 게 아닐까?

사실 나는 의미 없는 호구조사에, 재미없는 증명에 질려버리고

혹은 또 누군가를 곁에 두는 것을 두려워하던 게 아닐까?


서른 해오름달 사흘째,

'20대에는 몰랐으나 30대에는 변하는 것들'이라는 영상을 봤다.

그때 얼핏 생각하던 것이 3월이 돼서야 문득 정의되는 듯했다.


'내가 생각하는 안정은, 내가 추구하던 안전은 어쩌면 고립일 수도 있겠구나.'



마침 그 영상을 볼 때에 나와 가장 가까웠던 그녀와

약속을 잡으면서 무척이나 인상 깊었던 일이 있다.


나의 경우에는, 안전한 사람과의 안정된 관계가 매우 중요하여

헤르미온느 못지않은 일정 속에서도 

내 사람들을 위한 시간은 항상 제일 상단에 남아 있었다.

내 친구가 보자고 하거나 소중한 사람이 갑작스레 불러내어도

내 개인적인 재 정비 시간을 제쳐두고도 나갈 정도로 우선순위를 두었다.


그러나 그녀의 경우, I이면서도 워낙 인맥이 넓어서

모든 사람들과의 커넥션을 유지하고 있었고

시간을 30분 단위로 쪼개씀에도 불구하고 매일 시간이 없다고 했다.


점심시간에 잠시 근처에 온 나를 볼 시간은 없어도

누군가 요청한 커피챗은 챙겨서 했었다.


업계가 업계인 지라 그럴 수도 있지만,

가장 개인적인 사람이던 나는 그게 못내 아쉬웠고

동시에 주변 사람들 중 가장 바쁜 사람 중 1인으로서도 이해가 안 갔다.


어쩌다 우리의 시간이 나면, '00 이도 부를까?' 하는 게

나한테는 별로 집중하지 못해서인지

어색해서 다른 사람을 끼는 건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아무래도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사실 그는 커뮤니티 그 자체였던 것이 아닐까.


내가 개인적인 시간을 차치하고 달려 나가던 모임들이

어쩌면 안정이라는 이름하에 안주하는 것이진 않았는지,

혼자 정리하고 반성할 시간이 아닌 달콤한 안전이지 않았는지.

동시에, 남는 건 사람이고 인맥뿐이라는데

내가 집중한 이 안정적인 관계라는 게 사실은 혹시 고립이지 않았을지.


개인적인 아쉬움과 호감 여부는 제쳐두더라도

그가 커뮤니티 내에서 좋은 팀원이자 리더, 동료임에는 분명한 사실이다.

그 부분은 분명히 배워야 할 점이다.


그 사람은 사실 나에게 커뮤니티를 알려주고 싶었던 건 아닐까?


인맥이 곧 힘인 세상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친해지고 교류하는 법,

근데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 약점이 될 만한 건 공유하지 않는 법,

하루를 복기하며 혼자 반성하는 나의 시간을 갖는 법.

단단한 어른으로 성장하는 법.


나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을 

찾아 나서야 하는 허리급의 지금 시점에

만나던 사람만 만나는 건 

성장에 도움을 주기보단 마음의 안정에 가깝긴 하다.


사실 내 사람들에게라도 좋은 사람이라는 평을 듣고 싶었다.

그게 나의 기쁨이었고, 천천히 그렇게 나의 바운더리를 넓히는 것이

진짜 나만의 진정성이라고 생각했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될 수 없다는 말만큼이나

어차피 안 되는 거라면 있는 사람이라도 잘 챙기자라고 생각했으나,

사실 단순히 '시작이 반이다', '가만히 있으면 반이나 간다'의 합성으로

'시작해 놓고 가만히 있으면 된다' 식의 사고이진 않았나?


좁은 한국바닥에서 교류하면서 지내면서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될 수는 없으니 오히려

누구에게도 나쁜 사람이 되면 안 되는 거였다.


언제 누구의 머츄얼로 누가 나타날지 모르며

어떤 사람이 내가 여태 쌓아둔걸 한순간에 어떻게 망가트릴지 모른다.

(또한, 나 또한 기꺼이 누군가에게 그럴 예정이기에 더더욱. )


좋은 사람과 두텁고 좋은 관계를 만들면 좋겠지만, 널리 나의 PR로서

내가 필요한 걸 갖고 있는 사람과 더 교류할 기회를 주는 것도 좋지 않을까.

널리 괜찮은 사람이라는 얘길 듣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같은데.


더욱이 나아가 안전한 안식처에 숨기보다

남에게 나를 드러내는 위험한 짓에 용감하리만큼 도전하는

누가 봐도 단단하고 좋은, 용기 있는 사람이 필요가 이제는 있지 않을까.


사실 나는 자주보면 좋아지는 사람이라

또 누군가에게 정을 주고 무턱대고 좋아했다가

기대한 만큼이 아니라며 울고 돌아오는 그런 경험을 더이상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두려움이 나를 정체된 고립으로 이끈 것은 아닌지.


그러나 이제는 역설적으로 혼자 있어도 괜찮아서 

다수의 모르는 자리에도 괜찮게 지내는 사람이

이제는 될 필요가 있지 않을까.


남에게 기대기보단 혼자라도 좀 더 단단하게 설 수 있는 사람이 될 필요가

이제는 있지 않을까?


또 모르지, 그렇게 교류하는 사람들이 이제 또 나의 바운더리로 들어올지.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 속에서 나의 지평이 조금 더 넓어질지.


작은 커피와 와인 한 잔,

나누는 오늘의 대화들이

이젠 더 이상 두려워지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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