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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이아트 Jul 30. 2024

인공지능 미술의 원류: 헤럴드 코헨과 아론

3줄 요약

뉴욕 휘트니미술관에서는 헤럴드 코헨(Harold Cohen)의 회고전 《헤럴드 코헨: 아론》 (2024.2.3. ~ 5.19.)이 열리고 있다. 

코헨은 ‘아론(AARON)’이라는 인공지능(AI)을 개발해 직접 그림을 그리게 한 인공지능 예술의 선구자다.

우리는 ‘아론’을 통해  인간과 인공지능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지 않은 채 예술적으로 협업하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헤럴드 코헨(Harold Cohen, 1928-2016)은 ‘아론(AARON)’이라는 인공지능(AI)을 개발해 직접 그림을 그리게 한 인공지능 예술의 선구자다. 뉴욕 휘트니미술관은 코헨의 회고전 《헤럴드 코헨: 아론(Harold Cohen: AARON)》을 열어 인공지능 미술의 가능성을 보여준 선구적인 사례를 추적한다. 코헨의 인공지능 예술은 산업 측면에서 인공지능이 활발히 논의되기 이전에 인공지능 미술의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의를 지닌다. 



헤럴드 코헨과 아론 


본래 코헨은 이름이 널리 알려진 추상 화가였다. 영국의 테이트(TATE)에서 전시를 열었고, 1966년에는 베니스 비엔날레의 영국관 대표 작가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러던 중 코헨은 1968년 미국 실리콘벨리로 여행을 떠난 것이 계가기 되어 인공지능 예술에 눈을 뜨게 되고,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공부해 그림을 그리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기로 결심한다. 1960년대에도 컴퓨터 아트가 존재하기는 했지만 활성화되기는 전이었다. 코헨은 추상화가였기 때문에 “이미지를 상기시키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이에 맞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시작한다. 


헤럴드 코헨 (출처: 위키피디아)


코헨은 1973년 처음으로 ‘아론’이라는 인공지능을 개발하여 공개한다. 아론이라는 이름은 성경 속 인물을 암시하는데, 작가는 예술적 창작이 신과의 소통 형태로 미화되는 방식에 의문을 제기하기 위해 이러한 이름을 붙였다고 말한다. 코헨은 아론과의 작업을 협업으로 명명했으며, 아론과 함께 인공지능의 잠재력을 탐구하는 데 평생을 바쳤다. 



1. 아론의 시작 


전시는 아론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헤럴드 코헨은 1960년대 후반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 대학교에서 아론을 고안해, 1973년부터 1975년까지 스탠포드 대학교의 인공 지능 연구소에서 이 프로그램을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주목할 대목은 아론이 처음부터 예술 제작의 본질을 표현하도록 고안되었다는 것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인공지능을 산업에 활용하기는 했어도 예술에 접목시키는 사례는 전무했기에, 코헨이 얼마나 선구적인 작업을 했는지 알 수 있는 지점이다. 


헤럴드 코헨, <Untitled [Amsterdam Suite]>, 1977. (출처: 휘트니 미술관)


초기에 개발된 아론은 동작을 시작하면 무엇을 그릴지, 그림의 구성을 어떻게 할지 스스로 모든 것을 결정하는, 당시로는 생소한 모델이었다. 물론 그때의 버전은 계속해서 업데이트되어 창작 능력이 계속해서 향상되었고, 휘트니 미술관의 이번 전시는 이러한 발전 과정을 볼 수 있도록 기획되어 있다. 


초기 아론은 추상적인 선으로 이루어진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이 시기의 아론은 ‘추상화 아론’이라고 부르는데, 이 프로그램은 종이 위에 임의로 시작점을 설정하고 알고리즘에 따라 그림을 완성한다. 추상화 아론이 완성한 그림은 어린아이의 그림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사실 뛰어난 작품이라는 느낌보다는 곡선, 직선 또는 닫힌 도형과 같은 요소를 생성할 수 있다는 점에 의의를 두어야 할 것 같다. 


헤럴드 코헨, Early work by AARON, 1974. (출처: 휘트니 미술관)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인공지능처럼, 자신이 만들어낸 창작물을 재학습하여 아론이 더욱 발전한다는 것이다. 코헨은 아론의 코드에 외부 사물에 대한 이해(예: 크기, 모양, 위치)를 심어 필요에 따라 장기 기억에 액세스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예술가의 드로잉 전략의 내적, 절차적 패러다임에 대한 지식도 프로그래밍했다. 그래서 아론은 어떤 것은 가깝게, 어떤 것은 멀리 배치하고 어느 정도 디테일을 살려 입체감을 살릴 수 있게 되었다. 


아론은 여러 단계에 걸쳐 진화했다. 처음에는 단순하고 연상적인 모양으로 시작하여 원근감을 구현하기 위해 점점 더 복잡해졌다. 아론은 단순히 도형과 구불구불한 모양을 연결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연결된 형태의 윤곽을 그리는 형태로 나아갔다. 


휘트니 미술관은 코헨의 초기 드로잉 머신을 현대적으로 재창조한 ‘플로터’라는 기계를 선보이고 있다. 이번 전시를 위해 특별히 제작된 ‘플로터’는 아론 소프트웨어의 여러 시기의 그림을 그린다. 로터 펜의 용지 크기와 선 폭은 코헨이 원래 사용했던 것과 일치한다. 전시 기간 동안 제작된 드로잉 중 엄선된 작품은 정기적으로 벽에 전시되고 있다. 



2. 추상화 단계


두 번째 전시 섹션에서는 식물이나 꽃과 함께 형상에 초점을 맞춘 아론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 중심에는 2001년 코헨이 컴퓨터 과학자 레이먼드 커즈와일(Raymond Kurzweil)과 함께 제작하여 발표한 AARON KCAT 소프트웨어가 있다. 누구나 한 번쯤은 컴퓨터의 화면 보호기에서 아론의 작품을 보았을 것이다. KCAT는 아론의 대표적인 결과물로, 화면 보호기 버전으로 출시하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저렴한 가격으로 오리지널 아트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려는 코헨의 노력이 반영된 결과물이다. 


헤럴드 코헨, <AARON KCAT>, 2001. (출처: 휘트니 미술관)


아론의 뛰어난 점은 이 프로그램이 현재 그림 그리는 인공지능으로 잘 알려진 DALL-E, 미드저니, Stable Diffusion 등의 이미지 생성 방식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아론은 작업 완료 지침과 ‘IF-THEN 알고리즘’을 통해 지식을 처리함으로써 인간의 의사 결정을 모방한다. ‘IF-THEN 알고리즘’은 ‘만약 그렇다면 규칙’을 통해 어떤 상황에서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 구체화한다. 코헨은 이처럼 추상화가의 인지 과정을 모방하여 선과 형태의 관계를 이해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고자 했다. 


헤럴드 코헨, <Susan with Plant>, 1991. (출처: 휘트니 미술관)


가령 <Susan with Plant>라는 작품을 보면 아론의 복잡한 규칙이 어떻게 작동하여 추상적인 요소와 세밀한 디테일이 있는 이미지를 생성하는지 보여준다. 아론의 진화 단계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며, 선과 색면으로 캔버스 표면의 영역을 묘사하고 벽 앞 전경에 인물을 배치한 모습을 볼 수 있다. 공간과 해부학적 구조, 사람의 자세와 피부색의 변화에 대한 아론의 이해가 담긴 작품이다. 눈, 코, 입의 위치는 대칭이 아닌 축으로 배열되어 있어 회화적 표현을 위한 코헨만의 독특한 규칙을 보여준다. 코헨은 아론의 구상 작품을 추상적인 형태의 자화상으로 보고, 자신과 시청자가 이미지를 이해하는 방식을 체계화하려는 시도를 했다.



3. 식물과 구상 


아론은 완전한 입체 형상을 구현하기 전인 1989년경부터 바위와 식물에 인간을 닮은 추상적인 형상을 합성할 수 있게 됐다. 이 시기 작품들은 추상이라기보다는 구상에 가까워 보이는데, 기술적, 개념적으로 좀더 진화한 모습이라는 게 인공지능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환경 속에서 알아볼 수 있는 형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소프트웨어가 세상에 대한 보다 구체적이고 다른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1980년대 작품들은 정글 같은 환경의 겹겹이 쌓인 나뭇잎을 그린 것으로, 초기 작품에 비하면 상당히 발전된 모습을 볼 수 있다. 


헤럴드 코헨, <AARON Gijon>, 2007. (출처: 휘트니 미술관)


폴 세잔이라는 유명한 화가의 전략을 채택한 코헨은 아론이 나무와 사람의 피부를 색채적으로 조화시키면서 표현에 필수적인 구조를 만들도록 설계했다. 초기 작품의 겹쳐진 나뭇잎은 2007년부터 투영된 소프트웨어에서 보이는 복잡한 식물의 구성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론이 생성해내는 식물은 실제 존재하는 식물은 아니지만, 크기, 가지, 잎의 형성 패턴에 대한 규칙을 통해 자신만의 식물 형태를 만들어나간다. 


인공지능이 직접 채색을 할 수 있기 위해서는 색에 대한 지식을 갖춰야한다. 실제 세계에서 그 물체가 지닌 색을 알려면 해당 사물이 특정 생이 ‘아니라는 것’까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론이 그린 그림을 보면 색채가 조화롭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데, 이는 근접한 색 사이의 조화나 의미를 어느 정도 학습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점은 코헨은 그림을 그리기 위한 계획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작가는 프로그램을 개발한 주체이지만, 직접 그림을 그리지는 않는다는 것인데, 이는 아론이 스스로 그림의 내용을 구성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지점에서 현재도 계속해서 논의가 되고 있는 인공지능이 과연 예술성을 가질 수 있느냐의 문제를 생각해볼 수 있다. 어느 쪽이든 인공지능은 급속도로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만큼 우리의 삶뿐만 아니라 예술에도 어떤 형태로는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인간과 인공지능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지 않고 연합해 작품을 만드는 과정으로 이해하는 것이 새로운 상황을 받아들이는 열쇠가 될 것이다. 




본 글은 '프럼에이'에 발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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