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물리적 세계를 구성하는 대상들로부터 틈을 찾는 과정으로 시작한다. 예술가의 표현은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기반으로 하지만, 단순한 세계의 복제가 아닌 예술가의 눈으로 재해석된 세계를 담는다. 이러한 과정은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인식 변화를 불러일으키면서 의미를 구축한다. 예술가들이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을 통해 우리의 일상적 맥락이 새롭게 구성되는 것이다.
특히 동시대 미술 현장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의 작품은 세계의 가능성을 확장하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을 다시 바라볼 수 있게 만든다. 그 가운데 ‘2023 금호영아티스트’에 당선된 6명의 작가들은 세계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면서 익숙한 것으로부터 낯설어지는 순간을 포착한다. 선정된 6명의 작가들(김원진, 정영호, 조재, 이희준, 임노식, 현승의)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우리가 감지하기는 어렵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세계를 담아낸다. 올해로 20회를 맞은 ‘2023 금호영아티스트’는 3월 17일부터 4월 23일까지 1부 전시를, 5월 5일부터 6월 11일까지는 2부 전시를 개최하며 동시대 작가들이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을 제시하였다.
1부 전시에 소개된 조재는 손에 잡히지 않는 디지털 이미지를 우리 눈에 보이는 물질로 만들어 시각화한다. 작품은 온라인상에 유통되는 이미지들을 프린트하여 전시장에 설치된 형태로 제시된다. 히토 슈타이얼(Hito Steyerl)에 따르면, 디지털 이미지는 아날로그 이미지와 달리 태생적으로 순환하는 흐름을 안고 있다. 조재 또한 디지털 이미지가 확산과 소멸을 반복하며 재생산되는 현상을 ‘이미지 펌프질’로 명명하면서 도시 곳곳에서 발견되는 이미지들을 오프라인 전시장으로 옮겨놓는다. 작가에게 ‘포스트 인터넷(Post Internet)’은 하나의 형식으로 기능하는 것이다.
내용 측면에서 작가는 ‘미디어’에 주목한다. 특히 미디어가 폭력적인 이미지들을 재생산하며 현실을 무감각하고 무자비하게 다루는 속성을 파고든다. 작품에 나타나는 이미지들은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이나 이태원 참사, 후쿠시마 원전 사고 등 사회적 재난과 재앙을 ‘벡터화’한 것이다. 벡터화는 이미지를 디지털화 하는 여러 방식 중 하나이며, 크기와 방향을 갖는 물리량을 의미하기도 한다. 작가의 손끝에서 벡터화된 이미지들은 잠재성을 내포하고 있는 점의 상태가 되며, 순환되면 될수록 변환되지 못한 정보들이 누락되며 차차 정제된다. 매끄러운 표면으로 존재하는 조재의 작품을 통해 우리는 재난의 현실을 다시금 마주하고 디지털 세계가 정보를 누락하는 과정을 발견한다.
우리는 어떤 대상을 육안으로 직접 보기도 하지만, 스크린이라는 매개를 통해 세계를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정영호는 ‘스크린을 통한 전자적인 경험의 세계’와 ‘눈을 통한 직접적인 경험’의 세계의 간극에 주목하면서 이 둘을 ‘중첩’해 보여준다. 두 가지 사진을 옆에 배치하거나 포개서 전시함으로써 둘 사이의 관계를 드러내는 것이다.
정영호의 작품은 신체(시각)를 통해 감각할 수 있는 정보와 신체의 확장인 기계 장치를 통해 감각할 수 있는 정보를 대비시킴으로써 두 사이의 관계와 균형을 일깨운다. 작가는 스크린의 세계는 컬러 사진으로, 육안으로 본 세계는 흑백 필름 사진으로 구현했다. 하지만 그의 컬러 사진과 흑백 필름 사진은 단지 스크린과 육안의 세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컬러 사진에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의 모습이 담겨 있고, 흑백 필름 사진에는 작가의 사적인 순간들이 포착돼 있기 때문이다. 가령 이태원 참사 등 사회적 사건이 보도된 이미지는 스마트폰 스크린에 띄워놓고 근접 촬영한 컬러 사진으로 표현되었고, 작가의 시선에서 촬영된 사진들은 흑백 필름에 담겨 있다. 두 가지 층위가 담긴 작업은 하나의 사건을 감각하는 두 세계의 격차를 드러내며, 동시대의 기계 장치가 우리의 감각 방식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한다.
김원진의 작업을 관통하는 주제는 ‘시간’과 ‘기억’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기억이 망각되고 변화하는 경험을 하게 되는데, 작가는 현재라는 순간에 과거가 중첩되어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는 순간들을 포착한다. 김원진이 시간과 기억을 다루기 위해 선택한 소재는 ‘기록물’이다. 책, 편지, 일기와 같이 지나간 시간의 이야기를 담은 문서들을 작품에 도입한 것이다. 이러한 기록물을 태워 ‘재’로 만듦으로써 상실되는 기억을 표현한다.
그런데 아무리 내가 쓴 일기를 태우고, 자르고, 다시 오려 붙인다 한들 그 기억은 완벽하게 사라지지 않는다. 인간의 뇌는 컴퓨터나 스마트폰 같은 기계 장치와는 다른 방식으로 기억을 저장하기 때문에 아무리 명확한 사실관계를 바탕으로 한 일일지라도 기억은 선택적으로 작동한다. 김원진은 기억의 불완전한 속성에 관심을 두고 이를 회화, 드로잉, 설치의 형태로 시각화한다.
김원진의 신작 <Dancing in the Thin Air>는 멀리서 보면 추상회화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1㎜ 두께의 종이를 이어 붙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종이에 안료로 그림을 그리면 뒷면까지 물감이 배는데, 종이를 1㎜ 두께로 길게 잘라낸 뒤 앞뒷면을 번갈아 붙여가며 화면을 만든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화면은 글리치(Glitch)를 형성하면서 원본 그림과는 다른 새로운 형상을 만들어 낸다. 새롭게 나타난 형상은 기억에서 포착된 순간과 숨겨진 순간을 동시에 드러내면서 선택되지 못하고 누락된 순간까지 한데 불러들인다. 김원진은 이를 통해 과거의 기억을 재구성하며, 새롭게 생성된 흐름을 통해 시간을 가시화한다. 앞과 뒤를 교차해 오려 붙인 작업과 시간 속에서 반복 운동하고 있는 공간이 어우러져 끊임없이 재편집되는 우리의 기억을 은유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2부 전시에 소개된 이희준은 도시의 풍경을 추상 회화로 담아내는 작업을 주로 하고 있다. 그는 도시의 거리를 걸으며 수집한 풍경들을 자신만의 시공간으로 새롭게 창조해낸다. 도시의 복잡한 풍경 안에서 자신만의 비례와 균형, 색채를 찾아내고, 그것으로부터 얻는 경험을 새롭게 탐구하는 것이다.
이희준의 작품은 ‘포토콜라주’ 기법으로 제작된다. 포토콜라주는 여러 장의 사진을 자르고 결합해 새로운 이미지를 만드는 방식으로, 이희준은 인터넷에서 수집하거나 자신이 직접 찍은 사진을 A4 용지 위에 잉크젯으로 인쇄한 뒤, 인쇄물을 화면 위에 꼼꼼하게 접착하고, 그 위에 아크릴 물감으로 사진에 어울리는 그림을 그린다. 2020년부터 도입한 이러한 포토콜라주 방식은 디지털 이미지가 우리의 감각을 점유하고 있는 모습을 포착한다. 사진 위에 그려진 기하학적 추상 이미지를 통해 사진과 실제 경험 사이에서 기억을 떠올리고, 이러한 지각을 통해 새로운 경험의 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번 전시의 제목 ‘비계(Scaffolding)’는 건축 공사 때 높은 곳에서 일할 수 있도록 설치하는 임시 구조물을 뜻한다. 이전의 작품들은 주로 완성된 건축물을 소재로 가져왔다면, 이번 전시에서는 건축이 완성되기까지의 가변적 환경에 관심을 두고 건축이 가지는 임시적 속성과 변화 가능성에 주목한다. 이를 통해 작가는 공간의 다각적 경험과 인식의 확장을 유도하면서 표면에 드러나지 않는 도시의 일상에 새로운 의미들을 발견하도록 만든다.
일상의 공간은 의식주를 구성하는 대상들이 집합해 있는 장소이자, 반복되는 순간들이 계속해서 펼쳐지는 영역이다. 그렇기에 미술가들은 오랜 기간 동안 ‘일상’을 소재로 삼아 작품을 제작해왔다. 임노식 또한 자신의 고향이기도 한 경기도 여주를 작업의 주요 소재로 삼아 일상의 풍경과 사물을 담아낸다.
작가는 여주의 모래산과 돌, 나무 등과 같은 풍경을 관찰하고, 작업실로 이동해 이러한 풍경을 캔버스에 옮기는 과정을 반복한다. 이 과정에서 자신이 직접 관찰한 풍경과 아버지와의 통화를 통해 전달받은 풍경의 묘사가 중첩된다. 자신이 관찰한 풍경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심리적인 풍경을 더하는 것이다. 이렇게 뒤섞인 풍경들은 시공간을 가로지르며 여러 이미지들이 교차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작가가 동판화의 형식을 차용해 만들어낸 ‘깊은 선’은 화면 위에서 공간을 점유하면서 보이지 않는 풍경을 상상하게 만든다. 다양한 경로를 통해 수집된 불확실한 이미지들이 서로 교차하면서 화면 안에 확실한 ‘선’으로 구축된다.
제주 출신의 현승의는 제주의 이미지에 감춰진 이면에 주목하면서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다루고, 관광 자본의 어두운 측면을 드러낸다. 가상의 인물인 아무개씨가 제주 휴가를 떠난 것으로 가정하여 제주에 담긴 다양한 이야기들을 들춰내는 방식이다. 제주는 우리 모두가 들르고 싶은 관광지로 각광받지만, 관광 자본에 의한 무분별한 개발과 환경 파괴, 4·3 사건과 같은 역사적 아픔이 함께 존재하는 곳이기도 하다. 작가는 “관광 산업에 의해 촉발되는 비대화된 낭만과 그로 인해 가려지는 것들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했다”라고 말한다.
현승의는 장지 위에 먹과 함께 목탄, 파스텔 같은 건식재료를 사용해 주제를 보다 선명하게 드러낸다. <평범한 ■씨의 휴가> 연작을 보면, 원 안에는 안락하고 낭만적인 제주 호텔의 모습이, 원 밖에는 제주를 둘러싼 여러 문제들을 상징하는 이미지들이 배치돼 있다. 상반되는 두 가지 내용을 동시에 그려 넣음으로써 작가는 우리가 평범하게 누리는 제주 관광의 이면을 들춰내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6인의 동시대 작가들이 각기 다른 방식을 통해 보여준 표상들은 세계를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이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보편적인 시선이 아닌 개별적인 시선을 통해 재구성된 세계는 실재를 닮고 있으면서도 실재와는 다른 존재론적 공간을 만들어낸다. 우리가 맨눈으로 보지 못하는 잠재의 세계를 눈앞에 꺼내놓음으로써 세계와의 관계를 확립하고 삶의 의미를 새롭게 소환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예술과 실제 세계의 틈에서 새로운 가능성의 공간을 경험할 수 있게 된다.
본 글은 '인터랩(INTERLAB)'에 발행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