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7 자본주의’가 현실화되고 있다. 24/7은 인공지능과 로봇이 24시간, 주 7일 노동하는 공백 없는 자본주의 상황을 말한다. 이제 일과 시간의 관계는 24/7 내내 돌아갈 수 있는 이윤창출로 재정의된다. 시간은 그 자체로 화폐화되고, 개개인은 경제적 행위자로 규정되는 것이다. 『24/7 잠의 종말』을 쓴 조너선 크래리(Jonathan Crary)는 24/7 자본주의가 우리의 잠과 꿈을 파괴한다고 지적한다. 여기서 잠과 꿈은 더 나은 사회 구성체를 의미한다. 24/7과 같은 무차별의 시간 속에서 인간은 소외되고 경제적으로 불안정해진다.
물론 제4차 산업혁명은 노동으로부터의 인간 해방이라는 유토피아를 앞당기고 있다. 인공지능과 로봇이 노동을 대신하고, 알고리즘을 통한 자동화가 가능해진 것이다. 그러나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을 수 있다는 불안과 양극화에 대한 위기의식은 계속해서 우리를 압박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욕망의 대상은 계산 가능한 것이 되어 버리고, 일상생활은 표준과 계산에 종속된다.
대안공간 루프에서 열리고 있는 정찬민의 개인전 《행동부피(Mass Action)》 (2023.6. 16. ~ 7. 16.)는 자본주의가 수익을 위해 리비도를 유도하고 가공하는 모습을 담아내면서 노에시스적 삶을 향한 행동부피를 표현한다. 노에시스적 삶이란 욕망하고 사랑하며, 이상화하는 영혼의 삶을 뜻한다. 리비도 경제가 노에시스적 삶을 가능하게 만든다고 본 베르나르 스티글러(Bernard Stiegler)는 자동화로 인해 확보된 여유 시간을 재사유와 발명의 시간으로 써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정찬민이 전시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노동의 재사유와 맥을 같이 한다.
전시의 중심이 되는 정찬민의 작품 <행동부피>는 천으로 된 8개의 대형 풍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각의 풍선에는 선풍기와 모터가 달려 있고, 풍선은 팽창하거나 수축된다. 풍선의 크기를 결정짓는 것은 64명의 개인별 루틴이다. 작가는 대중(Mass)의 행동(Action)을 무작위로 수집해 8개의 풍선 아래 바닥에 각각 8명의 루틴을 적었다. 커피마시기 10분, 마트 다니기 40분, 운동하기 40분, 블로그 글 작성하기 50분, 일기쓰기 10분과 같은 식이다. 오랜 시간을 소비한 행동일수록 풍선의 크기가 커지고 시간도 오래 지속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수집된 일상적 행동들이 경제적 가치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물화(物化)되는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일상적 시간까지도 경제적 가치에 따라 점수가 매겨진다. 하지만 정찬민은 자본주의에서 벗어난 시간들을 개인의 가치로 환산함으로써 존재를 회복시키고자 한다. 목표 달성을 위한 효율을 고려하지 않은 채 그저 행동한다는 사실 자체에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이는 노에시스적 차원을 포함하는 간헐성을 그리면서 지적인 삶을 향해 나아가려는 시도이다. 스티글러 또한 간헐성을 통해 창조적 에너지를 찾아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자동화 사회 속에서 통제를 피할 것만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활용해 다른 잠재성을 찾아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인간의 주체적이고 창조적인 참여”다.
자본주의가 권장하는 효율이 아닌, ‘또 다른 무언가’를 욕망하는 새로운 주체성이야말로 현재의 상황을 극복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정찬민은 <들은 모양>에서 자신이 이동하는 발걸음 소리를 수집해 데이터로 변환한 뒤 3D 프린팅으로 형상을 제작했다. 각 오브제 아래에는 작가가 거닌 장소의 주소와 날짜, 시간이 적혀 있다. 이러한 시도는 자본주의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신체적 감각이 어떤 변화를 겪고 있는지 다루면서 이에 관한 대안을 마련해주는 예술적 실천으로 읽힌다.
정찬민의 <행동 부피를 위한 탑> 또한 고도화되어 가는 자본주의 환경 속에서 미학적 실천을 제시한다. 이 영상 작품은 작가가 전시를 준비하는 동안 실제로 받은 택배 상자를 3D로 촬영해 제작한 것이다. 플랫폼 노동의 발달과 비대면 경제는 택배 시스템을 과중시킨 측면이 있다. 정찬민은 쌓여가는 택배 상자를 수직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자동화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담아낸다. 자동화 사회는 원격 조정망, 빅데이터, 개인정보 경제 등에 기반한 자동장치를 통해 리비도를 통제한다. 알고리즘을 통해 리비도를 특정한 방향으로 유도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소비자 시장은 개인 맞춤식으로 통제되며, 개인의 일상은 계산 가능한 것이 된다. 정찬민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일상의 기록물이 되는 택배 상자를 보여주면서 자본의 축적 과정에서 발생하는 소외에 주목한다.
정찬민은 그동안 자본주의와 기술의 발전 과정에서 물리적인 세계가 누락되는 지점에 주목하여 신체적 경험이나 감각과 같은 비가시적 요소에 관심을 가져왔다. 디지털 공간과 물리적 공간의 경계에 선 ‘몸’을 성찰하거나, 기술발전과 자본주의 질서에서 소외된 개인의 내적 경험을 표현한 것이다. 특히 이번 신작을 통해서는 전지구적인 통제와 자동화가 가능해진 현재의 고도화된 자본주의 상황 속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에 주목함으로써 비판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틈을 마련했다.
자본주의의 총체적 자동화는 스티글러의 표현처럼 “망연자실의 전면화” 상태를 가져온다. 망연자실은 우리 시대의 전형적인 양상으로, 우리는 누구나 이 상태에 순응 혹은 적응하는 무력한 모습을 보인다. 인간의 고유 감각과 신체성은 기술의 발전에 따라 점점 둔화되고, 무엇보다도 경제적 가치가 없는 노동은 무력한 시간으로 휩쓸리는 것이다. 하지만 정찬민은 이러한 요구에 연루된 주체들의 잉여성과 무력함을 다시 한 번 짚어냄으로써 경제적 가치로부터 구출된 시간을 선포한다. 욕망의 대상을 이상화하고, 사회적 관계를 맺으며, 비판적 대안을 마련하면서 노에시스적 삶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본 글은 '인터랩(INTERLAB)'에 발행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