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자신의 신체뿐만 아니라 기술적 매체를 매개로 세계를 감각해왔다. 기술이 우리의 인지방식을 바꾸고 새로운 지각경험을 촉발하는 것이다. 마셜 매클루언(Marshall McLuhan)은 이러한 기술적 매체를 ‘인간의 확장’이자 ‘감각의 확장’이라 불렀다. 매체는 우리를 변화하는 감각으로 인도하는 안내자가 된다.
자신을 ‘메타미디어 아티스트’로 소개하는 후니다 킴은 ‘매체를 만드는 매체’ 작업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그는 일상에서와 환경과 대상을 새롭게 인식하고 지각 방식의 전환을 유도하는 환경 인지 장치를 제작하고 있다. 이 장치들은 작가의 용어로 ‘아파라투스(apparatus)’라 불린다. 아파라투스는 기구, 장치의 뜻뿐만 아니라 신체 기관을 지칭할 때도 쓰이기 때문에 ‘인간의 확장’이자 ‘감각의 확장’을 가능케 하는 이 장치들의 명칭은 적확한 표현으로 다가온다.
후니다 킴의 환경 인지 장치 중에서는 먼저 《국립현대미술관 다원예술 2021: 멀티버스》 시리즈의 일환으로 선보인 <디코딩 되는 랜드스케이프>가 있다. 이 전시에서 그는 소리를 통해 공간을 인식하는 환경 인지 장치인 ‘데이터스케이프(Datascape)’를 선보였다. 이 장치에는 자율주행 차량에 들어가는 기술인 ‘라이다(LiDAR) 센서’가 삽입되어 있다. 라이다 센서는 레이저를 목표물에 비춤으로써 사물까지의 거리와 방향, 속도 등을 감지할 수 있게 하는 기술이다.
작가는 이 센서를 부착한 ‘데이터스케이프’ 장치를 통해 우리의 ‘청각’을 확장시킨다. 우리는 보통 ‘시각’을 중심으로 세계를 감각하지만, 작가의 말대로 ‘청각’은 가장 원시적이면서도 기계적인 감각이다. 우리는 눈으로 뒤에 있는 대상을 볼 수는 없어도 청각은 360도로 열려있기 때문이다. 후니다 킴은 주변 상황을 가장 빠르게 인식할 수 있는 ‘청각’에 ‘데이터스케이프’를 결합해 우리를 둘러싼 환경을 기존의 방식과 다르게 감각하게 만든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데이터스케이프’라는 기술적 매체에 우리의 신체가 일시적으로나마 ‘이식(implant)’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콘택트렌즈나 시력교정술, 치아 임플란트, 무릎 고관절 시술 등 외부의 기술들이 결합된 채로 살아간다. 이러한 보철들은 기술적 외재화를 통해 신체를 대체하거나 보충할 수 있다. 후니다 킴의 이 장치 또한 우리의 신체와 연결되는 순간부터 우리의 신체에 ‘이식’되며, 장치를 이식한 관람객들로 하여금 미술관 복도를 거닐게 함으로써 이 공간을 새롭게 느낄 수 있도록 만든다. 데이터스케이프는 신체의 내부와 외부의 경계를 약화시키고 때로는 신체에 통합되면서 끊임없이 확장된 감각을 제공한다.
후니다 킴이 지난 7월 코리아나미술관에서 선보인 <파인튜닝되는 신체 감각> 또한 ‘데이터스케이프’를 장착한 퍼포먼스다. 이전의 장치가 ‘청각’을 새롭게 감각하는 방식을 제시했다면, 이 장치는 ‘신체’ 그 자체를 탐구한다. 먼저 ‘파인튜닝(fine-tuning)’은 인공지능 모델을 학습할 때 기계와 시스템을 미세 조정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작가가 ‘파인튜닝’이라는 단어를 가지고 온 것은 우리가 스스로의 신체에 꼭 맞게 튜닝을 하고 있는지를 질문하기 위해서인 듯하다. ChatGPT 등 인공지능을 비롯한 기술 발전의 흐름 속에서 우리의 ‘신체’가 세계를 어떻게 감각할 수 있을지 묻는 것이다.
실제로 인간의 신체 감각은 기술적 매체와의 관련 안에서 계속해서 변화한다. 새로운 매체가 등장할 때마다 신체 스스로도 감각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게 되는 것이다. 가령 외부의 소음을 차단하는 기술인 노이즈 캔슬링(Noise Cancelling)에 익숙해지면 우리의 신체는 평형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다른 신체적 감각들을 활성화시킨다. 청각을 무디게 하는 대신 시각이나 촉각을 활발히 재편하는 식이다. 매클루언은 이를 ‘감각 비율(sense ratio)’이라는 용어로 설명한 바 있다. 만약 어떤 기술이 도입되어 우리의 오감 가운데 어떤 하나의 감각을 강조해 그것이 전체 감각 중 차지하는 비율을 상승시키게 되면 오감 간의 지배 비율이 바뀌게 된다는 것이다. 즉, 감각 비율은 새로운 기술적 매체가 등장할 때마다 특정 감각이 다른 감각보다 우세해지거나 열세해지는 등 감각이 조정되는 정도를 뜻한다.
후니다 킴의 <파인튜닝되는 신체 감각>은 이러한 감각 비율의 재편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이 퍼포먼스는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뉘어 진행되는데, 먼저 전반부에서는 기술적 매체와 결합되지 않은 인간의 신체 감각을 표현한다. 퍼포머는 전시장에 놓인 여러 설치물들을 신체라는 도구로 감각하며, 기술과 접합되지 않은 신체는 감각 정보 각각에 의지한다. 기술적 매체가 감각 간의 상호교환을 촉발하며 공감각으로서의 확장성을 지니는 데 반해, 인간의 신체는 단일 감각에 집중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물론 인간의 신체가 장치를 만나는 순간은 감각이 조정되는 계기로 작용한다. 후반부 퍼포먼스에서는 퍼포머가 ‘데이터스케이프’를 이식한 채 전시장의 설치물들에서 데이터를 읽어내는 과정을 거친다. 새로운 장치를 이식한 신체는 정보를 더 많이, 더 빨리 읽어 내면서 환경에 적응한다. 단일한 감각적 경험을 넘어 공감각적 환경을 구축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공감각은 입체적이고 다면적인 복합 감각의 수용 과정에서 단일한 감각을 다른 감각과 혼합하여 판단하게 되는 인지체계를 뜻한다. 매클루언은 이처럼 특정 감각이 지배적이지 않은, 다섯 개의 감각들이 상호작용을 이루는 열린 감각체계를 추구했다. 후니다 킴 또한 주변으로 밀려난 다른 감각들을 활성화시킴으로써 다양한 층위의 감각들을 체험하게 만든다. 신체에 입력된 정보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공감각적 환경에서 혼합된 인지 과정을 거친 반응도 포함하게 되는 것이다.
이 퍼포먼스에서는 퍼포머가 장치를 통해 바라보는 화면이 관람객에도 동일하게 전송되기 때문에 화면을 바라보는 관람객은 퍼포머와 장치가 상호작용하는 모습을 통해 실시간으로 파인튜닝되는 데이터를 인식하게 된다. 후니다 킴의 작업들은 전시나 공연의 형태임에도 관람객의 참여를 중요시하는데, 이는 상호작용의 의미라기보다는 감각의 전이 과정으로 봐야 한다. 기술적 경험을 기반으로 하는 유동적인 신체적 감각을 새로운 지각으로 전환시키기 위한 하나의 제안으로 읽힌다.
그렇다면 후니다 킴은 인간 신체와 기술적 매체와의 필연적 결합을 보여줌으로써 기술 유토피아의 세계를 그려내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그동안 작가는 인간 생태계에 깊게 침투한 기술과 그 기술이 촉발하는 생태계의 변화에 주목해왔다. 그는 인간 신체와 기술적 매체와의 필연적 결합을 다루면서 기술에 따른 문화의 변화에 관심을 둔다. 신체의 확장으로서의 매체를 통해 인간의 인지와 감각 경험, 더 나아가 사회와 문화의 구조를 짚는 것이다. 인간은 필연적으로 자신의 신체를 통해 신체와 접촉하는데,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이러한 신체의 감각 비율이 변화했다. 작가는 인간의 신체 감각을 다시 한 번 ‘파인튜닝’하면서 우리의 신체가 주체적으로 세계를 감각할 수 있는 패턴과 경향을 짚는다. 특정 기술에 대해 가치 판단을 내리기보다 기계 장치를 이식함으로써 우리가 보편적으로 감각을 지각하는 방식을 전환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후니다 킴의 환경 인지 장치는 우리의 감각을 다른 비율로 재편한다. 변화한 비율과 감각은 또 다시 인간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인간은 이제 기술적 매체가 구현한 공간에서 새롭게 소통하는 경험을 하며 확장된 감각을 가지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서로 다른 감각 사이의 결합을 보여주는 후니다 킴의 퍼포먼스를 통해 우리는 다양하게 결합된 공감각을 통해 세계를 다면적으로 인식하게 된다.
본 글은 '인터랩(INTERLAB)'에 발행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