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이브(Archive)는 두 가지 뜻을 지닌다. 첫째, 기록을 보관해 놓은 곳, 둘째, 정보를 모아 구성하는 행위가 그것이다. 이처럼 아카이브는 기록보관소의 의미에서부터 문서나 이미지를 재배치하는 활동을 아우른다. 예술에서의 아카이브는 이미지 배치를 통해 의미를 구성하는 흐름으로 나타난다. 아카이브가 단순한 기록과 수집을 넘어 선택과 편집을 통한 창작 과정의 한 방식이 된 것이다.
동시대 가장 영향력 있는 예술가로 꼽히는 게르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는 ‘아카이브’라는 방법을 사용해 자신의 작업을 전개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1960년 중반부터 자신이 수집하거나 직접 촬영한 사진, 스케치, 인쇄물 등으로 <아틀라스(Atlas)>를 제작했다. <아틀라스>는 리히터 작업의 원천이자, 그 자체로 독립적인 작품이 되는 아카이브다.
<아틀라스>의 시작은 리히터가 동독에서 서독으로 망명했던 시기인 196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29살이었던 리히터는 동독에서도 예술가로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는 중이었는데, 사회주의 체제 안에서 자신의 예술 활동에 부과되는 제한들에 한계를 느껴 서독으로 이주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과 나치 정권에 대한 트라우마부터 가족들과 함께한 따뜻한 추억까지 자신의 <아틀라스>에 저장해왔다. 미술사학자 헬무트 프리델(Helmut Friedel)은 “<아틀라스>의 시초는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로 명명할 수 있는 보고서이자 기록”이라고 언급했다. 이처럼 리히터는 <아틀라스>를 통해 트라우마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기억으로 확장시키고, 자신의 아카이브를 애도와 치유의 공간으로 만든다.
* 전문은 경기아트센터 문화예술 매거진 <예술과만남> (2023년 8~9월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