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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이 Aug 10. 2022

아버지, 저는 정신병자입니다.

오고 가는 고성 속에서 나는 어쩔 줄 몰랐다. 귀를 막으면 손과 귀 사이를 비집고 고함이 파고들었다. 흘러내리는 눈물이 신경 쓰이지 않았다. 어서 빨리 싸움이 끝나기를. 오늘은 편하게 잠들 수 있기를.




아버지는 어머니를 매번 창녀라고 소리 질렀다. 거친 욕설은 덤이다. 그래도 분이 안 풀린다 싶으면 주변의 물건을 집어던졌다. 많은 것들을 던져댔지만 가장 많이 던진 것은 유리잔이나 소주병이다. 그들이 싸움을 마치고 나서 잠이 들면 나는 화장실을 가거나 물을 먹기 위해서 유리가 산산 조각난 난장판을 걸어야 했다. 발이 다칠까 봐 큰 걱정이 들지는 않았다. 내가 걱정했던 것은 아버지가 내 발소리에 잠이 깨는 것이었다. 한발 한발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까치발을 들고 걷다가 유리에 찔리기도 했다. 그는 잠을 자면서도 욕을 해댔다. 무엇이 그렇게 그를 화나게 했을까. 무엇 때문에 그렇게도 소리를 지르는 것일까. 


내가 대여섯 살 때 즈음 아빠가 엄마를 때렸던 기억을 시작으로 그들은 자주 싸워대기 시작했다. 엄마는 맞으면서 억울함에 울고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울고 비참함에 울었다. 그녀가 울기 시작하면 나와 동생도 울었다. 아버지는 좀 조용하다 싶었지만 그것도 잠시뿐, 계속 비워대는 술병은 고요함 속에서 흐느끼는 슬픈 울음조차 쉽게 내 벼려두지 않았다. 더 크고 난폭한 말로 우리를 겁먹였다.


싸움은 거의 매일 이어졌다. 아버지가 회사에서 퇴근할 때 즈음이 되면 점점 불안해졌다. 저 멀리서 자동차 문을 잠그는 삑 소리가 나고 아래층 현관에서부터 울려 퍼지는 그의 주취가 건물을 흔든다. 나의 심장은 뛰어댄다. 머릿속은 하얘지고 겁이 난다. 너무나 무섭다. 오늘은 어떻게 이 고통을 견뎌야 할지 모르겠다. 강아지는 짖기 시작한다. 문을 부수는 듯한 소리가 들린다. 그는 이미 문고리에 열쇠를 끼워 넣지 못할 정도로 만취해있는 상태이므로 내가 문을 열어야만 한다. 그가 모습을 보이자 나는 다녀오셨어요 인사를 한다. 그는 저놈의 개새끼 짖지 못하게 하라며 소리를 지른다. 나는 개를 안고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는다. 똑같은 레퍼토리가 시작된다. 그는 어머니를 향해 거친 욕을 퍼붓고 누구와 바람을 폈는지 불라며 탁자를 치고 소주병을 부시고 문을 발로 찬다.


어머니는 얼마간 그의 주취에 순응하는 듯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같이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아버지를 향한 분노에, 답이 없다는 막막함에, 그리고 간절함이 절망으로 바뀐 그때에 그녀도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녀가 술을 마시고 소리를 지른다. 아버지를 따라 물건을 부수고 문을 쳐댄다.


더 이상 눈물이 흐르지 않는 순간이 찾아왔다. 슬픔에 대한 내성이 생겼다. 그들이 싸우는 일은 더 이상 슬픈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내는 부수고 때리는 소리는 나의 가슴을 쾅쾅 쳐댄다. 고요한 정적 속에서 갑자기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라던가 꽈광거리는 소리가 날 때면 나는 소스라치게 놀란다. 밤마다 쉴 새 없이 듣게 되는 욕설과 비난은 내 귀에 가슴에 차곡차곡 쌓여간다.


그런 것들에 노출된 것이 15년 가까이 거의 매일 지속되었다. 학교에서 누군가가 나를 놀라게 하려고 소리를 지르면 나는 심장이 멎을 정도로 놀란다. 어디에서건 누군가가 문을 쾅 닫는 소리를 내기라도 하면 나는 그 자리에서 몸을 움츠려 들고 한동안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소리에 대한 예민함이 극에 달하고 어느새 작은 볼펜 까딱이는 소리에도 놀라거나 신경이 쓰인다. 적막 속에서 울리는 작은 소리를 따라가기 시작한다. 시계 초침이 내는 째깍째깍 소리, 쩝쩝거리는 소리, 코를 훌쩍 거리는 소리 , 지속적인 한숨소리 등등 소리를 따라가기 시작하면 일전에 하고 있던 공부에 집중을 못하게 된다. 시험을 망치는 일이 부지기수였고 중요한 시합날이나 경시대회에선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때는 그것이 정신병적 증세임을 알지 못했다. 그저 내가 받아들여야 할 운명 같은 성격이었고 그런 예민한 나의 성격을 못마땅해하는 정도였다.

부모에게서 고통받고 있다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아, 주변 친구들에게 부자연스럽고 과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웃음소리가 반에서 유난히도 컸고 이상했다. 어떤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말을 지어내기도 했다. 나의 치부가 드러날 때 즈음이면 나의 방어기제는 그것을 가리기에 바빴고 그것은 미성숙하기 그지없었다. 그런 나를 의식할 때 즈음 나는 스스로를 증오했고 자해를 하기도 했다.


언제 그랬냐는 듯 술을 마신 다음날 멀쩡해진 아버지에게 웃으며 인사를 하고 농담을 건네고 행복이라는 것에 걸맞은 모든 것들을 떼어다가 덕지덕지 붙여대기 일수였다. 실낱같은 희망을 바란 것일까. 아직은 우리 가족이 행복해질 수 있다고 그럴 가능성이 남아있다고 스스로를 속인 것이었을까. 나는 점점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고 괴상하기 그지없었다.


섭식 장애가 시작된 것도 부모님과 싸우는 시점과 맞물린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쉬지 않고 먹는 것이 습관이 생겼고, 먹고나면 자책감에 몸에 남아있는 모든 음식을 게워냈다. 부모님이 술주정한 다음 날에는 증상이 더욱 심했고 먹는 양도 더 많았다. 스스로도 주체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일찍 치료했으면 나았으려나 싶지만 그때는 치료라는 것 자체가 수치스러운 일이었고 병식 자체도 몇 년이나 훌쩍 뛰어넘은 시점에서였다. 그 시간 동안 많은 것을 고민했고 많은 좌절을 경험했으며 극단 적인 우울이 몇 번이고 찾아왔었다. 어떻게 그 거친 시간을 견뎌냈는지 모르겠지만 흔히 생각하는 보통의 인간은 아니었다고 확실히 해두고 싶다.


치료를 시작한 것은 딱 이십 대의 중반을 넘어서는 시점이었다. 결국 가야만 하는 시점이었고 그러지 않고는 못 견디게 고통스러운 시점이었으며 모든 것을 포기해야겠다고 마음먹고 그것을 준비하려는 시점이었다. 처음 병원에 갔던 날 의사 선생님 앞에서 많은 눈물을 흘렸다. 어떻게 그렇게도 서러웠을까 싶을 정도로 처절한 울음이 흘러내렸다. 울음은 슬프다는 증거지만 힘들었던 것이 어느 정도 해소된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젠 좋아지겠다고 마음 저 깊은 곳에서 아주 작은 선언을 시작했다는 것과도 같다.      


그 실낱같은 희망의 실을 붙잡고 나는 차츰차츰 조금씩 그 어두운 우울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폭식은 점점 횟수가 줄었고, 집에서 잠만 자던 몸은 카페에 나가 그림을 그린다던가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그리고 십여 년이 지난 지금 까지도 치료는 계속되고 있으며 평범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도리를 다하며 그렇게 살아내고 있다.


아버지를 절대로 용서하지 못했던 때가 있었다. 그의 귀에 대고 소리 지르고 싶었고 그동안 들었던 욕을 잔뜩 하고 싶었다. 용서할 수 없었다. 이런 삶을 살게 한 아버지. 사람들과 제대로 소통하기 힘들어 절절매는, 작은 소리에도 소스라치게 놀라 어쩔 줄을 몰라하는, 세상을 증오와 분노의 창으로 보게 했던 이런 삶을 살게 한 나의 아버지. 그를 절대로 용서하기 싫었다. 그가 밉다. 미치도록 밉다. 가끔씩 올라오는 과거의 힘든 기억은 아버지에 대한 나의 마음을 더욱 멀어지게만 했다.


연락을 끊고 지내던 아버지에게서 연락이 왔다. 대동맥 수술을 하고 차츰 회복하고 있다는 연락이었다. 아무리 힘을 주어도 부러지지 않을 것 같은 장대 같던 그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술을 마시고 나에게 소리를 질러댈 것 같던 그가, 이제는 의술에 힘을 빌리지 않으면 안 되는 노인이 되어 누워있단다. 아버지를 외면했던 시간이 많이도 흘러 있었다. 그 사이 그는 많이 야위었고 약해져 있었다.


그를 용서했다는 말을 하고 싶어 이 글을 적는 것은 아니다. 나는 아직 아버지를 찾아뵙지 못했고 그를 완전히 용서하지 못했다. 그를 안 본 오랜 세월 동안 그는 점점 남이 되어 나의 기억에서 잊혀 가던 참이었다. 삶을 살아내야만 하면서 남긴 그동안의 거친 궤적에, 그가 남겼던 자리는 그저 퇴색되어 가고 있는 희미한 무언가 일 뿐이었다. 그를 볼 용기가 나지 않는다. 그를 봐야만 한다. 그러나 그럴 수 없을 것 같다.


나와 같이 고민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이미 고민을 마치고 부모님을 찾아간 사람도 있을 테고 평생 용서하지 않을 마음으로 빗장을 걸어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나와 같은 상태에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그들 모두를 응원한다. 힘든 시간을 버티고 인내하며 삶을 살아낸 당신이다. 당신은 선택할 자격이 있고 용서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당신의 선택이 어디를 향하건 그 선택이 설령 그 자리를 머무는 것일지라도 나는 힘을 다해 애써 당신을 위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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