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카이 Aug 06. 2022

관계사고에 발목이 잡히다.

1N 년 차 우울증 환자가 밝히는 관계사고 증상

현재 겪고 있는 증상 또는 병: PTSD , 우울증, 관계사고, 청각과민증


생각보다 심각한 수준이었다.

다 나았을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호전을 보인 우울증. 근데 그 우울증이 조금 나아지기 시작하자 내가 미쳐 알아차리지 못했던 관계사고, 관계망상이 다시 의식의 수면 위로 올라왔다. 망상장애라고 하기엔 나의 병식(자신의 병의 상태를 알아차리고 있는 상태)은 뚜렷했으므로 관계사고가 더 맞는 말 일 것이다.


어쨌거나 그동안 알게 모르게 다른 사람들을 지나치게 의식한 나머지 그들의 악의 없는 행동들에 가해자의 이름표를 붙여가며 혼자 끙끙 앓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나는 이미 알아차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알아차리더라도 우울증의 작은 일부분 정도일 것이다라고 생각을 했지 이 자체가 사회생활을 못할 정도의 큰 악영향을 미치고 있으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그 증상은 이렇다. 카페에서 다리를 떨고 있는 사람을 보면 나는 그 사람이 나의 정신을 흩트려놓기 위해서 일부러 다리를 떠는 것이다라고 여긴다. 쩝쩝 소리를 내며 음식을 먹거나 볼펜을 까딱이는 것 역시 나에게 피해를 주기 위해 일부러 한 행동이라 여긴다. 또한 내가 일터에서 업무를 볼 때 벌어지는 일 역시 마찬가지다. 직장 동료가 물건을 쿵 하고 올려놓는 소리라던가 타자를 치는 소리에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을 한다. 쿵 소리가 우연히 더 커지기라도 하면 그것은 나를 향한 공격이라거나 비난의 뜻으로 받아들인다. 물론 실제로 나를 향한 적대감으로 그런 소리를 낼 수도 있다지만 나의 경우는 그 빈도수나 인과관계에 있어 지나치게 비상식적이다라고 할 수 있다. 알고 보면 안 그런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이다.


의사 선생님께 이 부분에 대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씀을 드렸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내가 조현병은 아니지만 관계사고보다는 더 심각한 그 둘 사이의 어떤 교집합 지점에 있을 것이라고. 그래서 차라리 조현병의 관점에서 나를 치료하면 어떻겠는가 하고 말씀을 드렸다. 선생님께서 어떻게 받아들이셨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아빌리파이를 증량해서 처방을 받았다. 10mg이다. 이 정도 양이면 조현병 치료를 위해 시작하는 용량 정도라고 할 수 있다. 그 사이에도 여러 대화가 오갔지만 결국은 나의 관계사고를 고치는 데에 약의 증량이 맞다고 의사 선생님께서 판단하신 것 같다.

약을 먹으면 신기하게도 앞서 말했던 증상들은 거의 사라진다. 약간의 의식만 할 뿐 깊게 예민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여기기도  하고 예민하게 구는 것이 귀찮아진다. 약의 효과가 제대로 발현이 되는 것이다.


다만 의식의 또렷함이 이전보다는 조금 떨어진 것 같다. 물론 나의 지나친 반응 일 수도 있고 우연의 상황에서 판단을 한 것일 수도 있다. 부프로피온과 아빌리파이까지 먹었는데 각성에 문제가 있다면 이건 말이 안 된다는 개인적인 생각이다.


다시 한 달이 지나면 선생님께 그간의 일을 보고해야 하는데 무난한 생활을 보고 드릴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작가의 이전글 정신과 약으로 성격을 디자인할 수 있다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