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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배 Nov 29. 2023

내일은 아기가 나올까?

진통을 기다리는 마음

“제왕 절개를 생각해보는 건 어때?”


낮에 맛있게 만들어 먹은 고구마 치즈 또띠아를 만들어놓고 상을 차려 두었는데 식탁에 막 앉은 남편이 말했다. 아마 지난 주말 남산에 갔다가 세 시간은 울던 내가 마음에 걸렸나 보다. 남편에게 서운하다는 이유로 울었는데 서운함이나 말다툼 때문에 운 것 치고는 너무 많이 울어버렸던 날이었다.


38주 차 끝무렵에 산부인과에 가서 초음파를 봤는데 의사 선생님이 깜짝 놀랐다. 아기가 2주 사이에 700g 이상이 커서 3.7kg이 넘은 것이었다. 초음파 담당 선생님은 다시 한 번 재보자고 했고, 확인해보니 이번에는 조금 더 큰 3.77kg이 나왔다. 초음파 선생님은 이대로 가면 예정일에 4kg은 쉽게 넘어버린다고 했고, 원장 선생님은 실제로 낳으면 더 작게 나올 수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나를 안심시켰다.


어쩐지 여태 안 트던 살이 38주 차에 갑자기 터져 버렸다며 웃으면서 진료를 보고 나왔는데, 조산사 선생님의 표정은 심각했다. 식단에 대해 다시 이야기해보자 하긴 했지만, 평균보다 훨씬 적게 오른 내 체중 증가량을 본 뒤 별다른 말은 없으셨다. 최근에 과일을 좀 먹었다면, 그 정도는 줄여보자고 했다. 특히 겨울철엔 귤을 조심해야 한다고 말이다. 과일을 좋아하긴 하지만, 전날 에어팟 케이스 만한 조생귤 4개 먹은 게 이렇게 아기를 키웠을까 싶으면서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임신 후기로 들어오면서 운동량도 더 늘려서 하던 아쉬탕가 요가도 주 3회는 하는 데에다, 주말에는 남편과 산전 부부 요가에 가고, 스트레칭이 필요하면 임산부 요가도 30분씩 했다. 요즘에는 그것도 부족한 듯해서 아침에 남편이 출근하는 길을 따라 나가 한 시간은 걷고 오는데 조생귤 4개 먹어서 아기가 큰 것처럼, 아니면 내 운동량이 부족해서 아기가 커버린 것처럼 되어버려 억울하기도 하고, 참 아기는 정말 뱃속에서부터 마음대로 안 되는구나 싶었다.


무통 주사나 촉진제를 사용하지 않고, 아기가 나올 시기를 기다렸다가 자연적으로 아기를 낳는 자연주의 출산이 로망이어서 그거 하나 보고 임신 기간 열심히 지냈는데, 아기가 크다니 무서워졌다. 뭐든 평균인 내 몸에서 평균 이상 크기의 아기가 무사히 나올 수는 있는 걸까 싶었던 것이다. 게다가 나보다 3일 먼저 임신한 친구는 이미 아기가 3.1kg으로 태어난 지 6일 차에, 친구가 적은 생생한 출산 후기를 읽고 보니 아기를 만날 날에 대한 기대감이 어느새 공포감으로 바뀌어 버렸다.


아기가 크다는 이야기를 들은 조산사 선생님은 주말에 남산에 가서 계단을 타고 오라고 미션을 내렸고, 남편과 나는 바로 다음날 남산으로 출발했다. 오랜만에 계단을 많이 올라서인지 종아리에 근육통이 생기긴 했지만, 그날도 별일은 없었다. 다만, ‘남산을 가네, 남한산성을 가네’로 다투다가 너무 많이 운 게 문제기는 했다. 남산을 가라는데 남한산성을 가자는 남편한테 서운해서 울었다.


다음날 집에서 같이 요가 매트 펴놓고 운동하면서 미주알고주알 왜 서운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나니 풀리긴 했다. 역시 운동은 정신 건강에 좋고, 부부가 같이 운동을 하면 부부 관계에도 좋다. 사실 지난 검진에서 아기 몸무게를 듣고  출산이 무서워졌는데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 그 두려움이 사라질 것 같았다. 그런데 남편은 그 마음도 모르고 고작 50분짜리 코스인 남한산성에 가자고 하면 나한테는 운동도 안 되고, 괜히 시키는 대로 안 했다는 것 때문에 마음도 불안하기만 할 거라고 했다. 겁이 많은 나는 해야 할 일을 무사히 수행해야 두려움이 사라지는데 말이다.


남편도 남편의 고충이 있었다. 아기가 태어나기 전 마지막 주말일 수도 있는 그 주말에 집 소독도 해야 하고, 춥진 않은지 방한도 다시 한 번 챙겨야 하고, 나사처럼 더 박을 게 없는지 확인해야 해서 몸도 마음도 바빴다고 말이다. 최근에는 마무리해 두어야 할 회사 일도 많았다. 요가 스탠딩 자세를 하면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둘 다 잘하고 싶은 마음에서 다퉜던 거구나 싶었다. 잘하고 있는 부분을 서로 더 알아주고 칭찬해줄걸. 다퉈봐야 아기에게도 좋을 게 없는데 말이다.


다음날, 조산사 선생님은 자연스럽게 아기가 빨리 나올 수 있는 방법으로 가슴 마사지를 하거나, 파인애플을 먹거나, 과학적 근거는 없지만 매운 음식을 먹어보는 것도 방법이라며 메시지를 주셨다. 파인애플을 주문해놓고, 임신 기간 동안 유독 맵찔이가 돼서 손도 못 댔던 마라탕을 일부러 먹고, 열심히 마사지도 하고, 짐볼도 탔다. 그래도 여전히 아기는 감감무소식이었다.


이러다 진통은 진통대로 겪다가 응급 제왕을 하게 되면 어쩌지. 남편 출근길 곁에 졸래졸래 따라 걸으면서 한숨을 쉬었다. 자연주의 출산을 하면 대체로 조리원에 안 가고 집에서 쉬면서 모유 수유를 하는데, 나도 그 생각으로 조리원은 알아봐 두지도 않았다. 그런데 수술을 하게 된다면, 아무래도 조리원에 가야 할 것 같은데 자리는 남아 있을지, 있어도 엄청 허름하고 소문이 안 좋은 곳은 아닐지 마음이 복잡했다.


사실 이런 고민을 할 때 주변에 희망적인 이야기를 해준 지인이 한 명 있다. 바로 문화센터 요가 선생님이다. 남편과 나는 문화센터 부부요가를 13주 차 때부터 갔는데, 마침 요가 선생님이 자연주의 출산을 하신 분이었다. 도움이 되는 다큐멘터리나 도서 목록을 공유해주시기도 하고, 조산사 선생님한테 배웠던 호흡법이나 이완법을 실제로 연습해 볼 수 있게 도움을 많이 주셨다.


선생님도 나처럼 체구가 작은 편인데, 남편이 한 덩치 해서 아기가 큰 편이었다고 한다. 거기에 아기는 41주 5일 차까지 안 나와서 아기를 기다리는 동안 지금 우리처럼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했다고. 우리에게 여행 많이 다니면서 편안하게 지내라고 했다. 나는 이 시기를 놓치면 먹을 수 없는 맛있는 조생귤이 진열된 부엌을 보면서 억울해했는데, 선생님은 이 기간에 과일이나 단 걸 줄이고 밥은 절밥처럼 먹었다며, 거기에 당시 허벅지가 흑인 언니처럼 두툼해질 정도로 근육을 길렀다며 껄껄 웃었다. 이 과정이 결국 모두 엄마에게 도움이 되는 거라며 아기 낳은 뒤 엄마 피부부터 다르다고 긍정적으로 응원했다.


아기가 크면 천천히 진통하면서 오래 기다리면 누구나 충분히 할 수 있다고도 했다. 나보다 체구가 작은 선생님이 활기차게 하는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그래, 나도 할 수 있다!” 용기가 솟았다. 내가 선생님보다 허벅지 근육은 적지만 내가 선생님보다는 덩치도 큰 편이고, 아직 39주 차니까 말이다. 나도 그동안 운동 많이 했으니까 천천히 조급해하지 말고 할 수 있는 걸 하면서 기다리자 다짐했다. 일주일만 참으면, 좋아하는 과일도 실컷 먹을 수 있다.


이렇게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퇴근한 남편이 식탁에 앉아 제왕절개 이야기를 꺼낸 것이었다. 진통을 겪을 만큼 겪고 응급 제왕을 하는 게 가장 힘든 상황일 수 있으니까 그걸 피해보는 것도 방법이라고 했다. 유튜브 영상을 보다가 서양에서는 아기가 클 때 머리도 머리지만, 어깨가 나올 때 힘든 걸 고민한다고 하니까 남편은 자기 어깨를 둘러보면서 걱정을 했다. 2.7kg으로 태어난 나와 3.6kg으로 태어난 남편. 남편은 아기가 큰 거에 나보다 책임감을 많이 느끼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이렇게 무섭긴 하지만, 나는 할 수 있다. 못 하면 그때 수술을 결정해도 괜찮다. 어차피 며칠 안 남은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야지 싶다. 남은 며칠 동안 식단도 조금 더 타이트하게 관리해서 밀가루도 줄이고, 단 것도 덜 먹고, 야채 많이 먹으면서 운동 많이 하면서 지내다가 그때도 잘 안 되면 그건 어쩔 수 없는 거니까.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고, 그때 결과가 안 좋으면 맘 편하게 포기하면 된다.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써는 멋진 여자가 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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