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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지 Jul 09. 2023

27살, 커리어에 마침표를 찍는 것만 같았습니다.

인턴만 1년 10개월. 그때 떠오른 전 회사 팀장님의 이야기

얼마 전 5개월간의 인턴 생활을 끝내며 나의 짧지만 다사다난했던 커리어에도 마침표를 찍는 느낌이 들었다.


단순히 회사를 경험해 보고 싶었던 첫 번째 인턴을 시작으로, 제대로 된 회사에서 취업을 해보자 들어갔던 회사에서 계약직-인턴 생활을 거친 후,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나름의 커리어 플랜을 세워 도전한 세 번째 회사였다.


어떻게 5개월이 흘러갔는지, 마치 오랜 꿈을 꾸고 일어난 듯 그 회사 인턴으로서의 내 모습이 신기루처럼 사라져 가는 것 같았다.


인턴만 1년 10개월. 대학생 때 딱히 취업 계획은 세우지 않았지만 인턴을 이렇게 다양한 회사에서 8개월, 9개월, 5개월씩이나 해볼 생각 역시 없었다. 그러다 보니 대기업 빼고 다 경험해 본 것 같아 앞으로 쌓아갈 커리어나 회사 생활이 전혀 기대되지 않았다. 일찍이 프리랜서로 전향해 내 삶에 더욱 몰입한 삶을 살까도 고려해 보았다. 하지만 힘차게 노를 저을 만큼 아직 물이 들어오진 않는다.


그렇지만 30대 중반의 나는 멋진 커리어 우먼이었으면 좋겠다. 워커홀릭은 아니지만 적당한 회사에 다니며, 나이에 걸맞은 경력을 가진, 백화점에서 나를 위한 가방 정도는 살 수 있는 그런 직장인 말이다. 그리고 가끔 연차를 길게 내어 해외여행을 가고, 서울 경기도 부근에 작은 원룸이라도 내 자가인 곳도 소유하고 있는.


그런 직장인이 되려면 ‘하고 싶은 일을 한다‘를 넘어서는 더 강력한 동기 부여가 필요한가 싶었다. ‘광교호수공원 호숫가에 있는 주상복합단지에 거주한다’ 같은 구체적인 목표 설정 같은 것 말이다.


그렇게 머릿속이 ‘내 미래’로 가득 찬 채 샤워를 하고 선풍기 바람에 머리를 말리는데, 문득 전 회사 팀장님이 떠올랐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호주에 갔다가 좋은 기회로 취업이 되어, 관련 경력을 살려 팀원보다 적은 경력으로 팀장직을 맡고 계시던 그분. 나보다 먼저 전 회사를 퇴사하며 더 좋은 조건으로 이직을 하시기도 했다.


다만 여기서 포인트는 워킹홀리데이는 아니다. 결국 어떻게 20대를 보내든 자신의 꾸준한 도전과 끊임없는 노력이 있으면 내가 원하는 30대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게 대한민국 사회에서의 암묵적인 성공 루트가 아니더라도 말이다.


나의 경우 편입해서 남들보다 조금 늦게 전공 공부를 시작했고, 하고 싶은 일이 뭔지 몰라 세 개의 회사에서 1년 10개월이나 인턴을 했다. 나만의 속도로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면서도, 곧 다가올 30대가 두려워 하루빨리 내 요구조건을 충족하는 괜찮은 회사에서 안정적인 소속감을 느끼고 싶었다. 하지만 동시에 하고 싶은 것을 하며 흥청망청 20대라는 시간을 쓰고 싶었다. 나는 두 옵션이 양립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전자는 두둑한 주머니를 달아줄 테지만 미래가 기대되지 않았다. 후자는 도박을 하는 느낌이었다.


나는 아직 나의 넥스트 스텝을 확실하게 정하진 못했다.


다만 지금은 연락도 하지 않는 전 회사 팀장님의 이야기가 떠올라 나의 마음을 조금 가볍게 해 주었다. 수많은 선택지 사이에 발버둥 치며 어두운 미래만 상상하다, 예상치 못한 빛이 보이니 앞으로 내릴 결정이 덜 부담스러워졌다.



훠궈, 떡볶이, 타코, 스테이크, 탕후루 등 먹고 싶었던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 미술관에 가서 라울 뒤피의 아름다운 작품을 감상하며 생각을 나눈다. 가보지 않았던 새로운 지역에서 에어비앤비를 빌리고 동네 주민이 된 것처럼 근처 호숫가에서 산책을 한다.


그렇게 일상을 여행처럼 보낸다. 알 수 없는 미래를 향해 걸으며 하루하루 좋은 경험들로 채워나간다. 그렇게 현재들이 쌓여 원하는 미래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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