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그러니까 20대 때 이 영화를 봤다. 와인 영화라 챙겨본 거지만 사실 그땐 큰 감흥이 없었다. 동화 같은 스토리를 좋아하던 20대의 나의 감성에 이 영화는 그저 '저 아저씨들 이상해' 혹은 '저렇게 살지 말아야겠다'로 요약되었던 영화다. 그런데 웬일. 시간이 흐르고 영화를 다시 보니 예전에 그 이상했던 아저씨들을 조금은, 아니 어느 부분은 완전히 공감하게 되었다. 살다 보니 그렇게 되더라.
인생의 새로운 단계, 결혼을 앞두고 심란해하는 잭. 지금까지 살아왔던 생활양식을 일정 부분 포기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는 점에서 결혼을 앞둔 남녀가 원래 그런 거라지만, 그가 불안을 해결하려는 방식은 남다르다. 결혼식을 일주일 앞두고 떠난 친구와의 여행에서 그는 끝을 알고도 덤비는 불나방처럼 철저히 본능에 따른다. 현실도피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겠지만, 인생의 옆길로 빠져 또 다른 인연과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그 순간만큼은 진심이다. 그리고 모든 일이 꼬여 예비 신부에게 줄 결혼반지를 잃어버린 그는 "그녀가 없으면 난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울부짖으며 현실로 돌아온다.
그리고 마일스. 떠나간 사랑엔 미련이 남아 질척거리고, 3년을 준비한 소설은 출판사를 찾지 못해 공중에 떠버린 남자. 일도 사랑도 뜻대로 되지 않아 냉소꾼이 된 그는 스스로도 주체하지 못하는 예민한 성격에 힘들어한다. 마치 방황하는 10대 청소년이나 혼란 속의 20대 청춘처럼. 어떤 인생은 이렇게 청춘이 오래 지속되나 보다. 청춘의 불안정함과 미숙함은 그대로 가진채 몸만 늙어간다. 내 눈에 비친 그는 Late Bloomer이다.
모든 청춘은 그 나름의 힘듦이 있지만 내면이 청춘인 상태로 몸만 늙는 건 더 힘들다. 그런데 어쩌리. 그 미숙함의 연속 구간을 지나오지 않고 저절로 성숙할 수 있는 길은 없다. 늦게 성숙하는 어떤 인생은 미완성인 이 상태를, 웃픈 코미디 같은 이 상태를, 포장하려 해도 감출 수 없는 이 지질한 상태를 좀 더 오래 감내해야 한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다면, 스스로에 대해 인내하고 애정을 쏟아 이 구간을 한걸음 한걸음 헤쳐간다면 언젠가 완전한 성숙의 단계에 다다를 것이다. 또 한 명의 Late Bloomer인 나는 그렇게 믿는다. 리쉬부르까지는 아니어도 언젠가 평범한 생산자가 정도껏 만든 피노 누아는 될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