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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봄

또 봄이다.


길을 걷다 문득 문장 하나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한 해의 시작은 봄부터이다.>


제야의 종이 울리고 요란한 카운트다운 소리와 함께 옛 달력이 버려지고 새 달력이 그 자리를 차지해도 겨울은 그 자리 그대로다.


올해는 다를 것이라는 근거 없는 희망은 새해의 들뜬 공기에 실려 이 사람에서 저 사람으로 두둥실 떠다니지만 살을 에이는 추위도, 앙상한 나뭇가지도, 매캐한 미세먼지도 모두 그 자리 그대로다.


그렇게 눈을 잠깐 감았다 뜨면 어느덧 입춘, 봄의 시작에 가닿아 있다. 어리둥절한 채로 주위를 둘러보면 봄바람과 설렘에 한껏 취한 사람들뿐이다.


벚꽃을 통째로 심어놓은 카페와 알록달록하게 치장한 채로 그 앞에 늘어선 사람들. 그 모든 풍경 앞에서 봄은 나에게 또 거짓위안을 속삭인다.


그럴 때가 있다. 한 없이 무거운 감정이 한 없는 가벼움으로 바뀌는 순간이.


더 이상 흘릴 눈물이 없을 만큼 펑펑 운 날에도 배는 고프다.


죽음에 대해 온종일 생각한 하루에도 나는 먹고 싸고 자며 온몸으로 생에 대한 의지를 표한다.


죽음의 겨울의 터널을 지나 난 그렇게 또 봄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였다. 그때 자그맣게 가슴속 떠오른 희망이라는 단어 앞에 난 실소를 금치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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