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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호정 Dec 03. 2021

/ 아름다운 동행

닛타 지로, 「아름다운 동행」, 일빛출판사, 1999

아름다운 동행 by 닛타 지로



원래도 산을 좋아하였으나 이제는 좋아한다는 말로는 부족해 산에 미치도록 빠져들기 시작한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 있다. 닛타 지로의 「아름다운 동행1,2」... 1999년 개정판(일빛출판사)이 나오기 전까지 「자일파티」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유명한 산악소설이다. 심산의 「마운틴 오딧세이」에는 이 책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일본 여자의대 산악부의 고마이 도시코는 홀로 겨울 산행에 나섰다가 조난을 당한다. 거의 탈진상태에 이르러 가까스로 찾아낸 대피소에는 그러나 그녀보다 먼저 그곳에 피신해 있던 또 다른 여인이 있다. 카마쿠라보리의 수련생인 와카바야시 미사코이다. 도시코와 미사코는 폭풍설 속에 갇힌 채 꼬박 5일을 그 대피소에서 머물지만, 훗날 그들이 필생의 자일파티로 엮일 운명이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다. 그들을 대피소에서 나오게 하여 안전하게 하산시킨 것은 세 명의 낯선 청년 산악인들. 그리고 얼마 후 그녀들은 재그산악회, 즉 일본전위암벽등반클럽으로부터 암장으로 나와 보지 않겠느냐는 초청을 받는다. 닛타 지로의 산악장편소설 「자일파티」의 매혹적인 도입부이다.     

- 심산의 마운틴 오딧세이, 139쪽 중에서 (풀빛, 2002)     



심산의 소개글 역시 매혹적이다. 이런 정도라면 산을 좋아하든 아니든, 누가 읽더라도 재미있는 소설이겠지만, 나는 이 소설을 이제 막 산을 시작하는, 그러나 그것을 단순히 “시작”이라고 말하기엔 모자람이 있어 “미치도록” 같은 다소 격정적인 부연설명을 해야만 비로소 이해될만한 그런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싶다. 


왜냐하면 이 소설은 그녀들이 우연한 기회, 아니, 운명적인 기회로 만나고, 산을 알게 되고, 산에서 성장하고, 결국 산을 통해 자신의 삶을 완성해가는 “시작”과 “끝”이 있는 한편의 스토리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흥미진진한 것은 산을 공통 분모로 한다 해도 그것을 대하는 그녀들의 서로 다른 방식이다.     


사실 산이란 누군가 “가장 철학적인 육체활동”이라 했던 것처럼 어느 부분은 상당히 고민스럽기도 하다. 특히 산에 막 미치기 시작한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 한 발짝 물러날 수 있는 여유로운 마음이란 절대 가져질 수 없는 것이다. 그때 산은 현실로부터 벗어나 무작정 올라야 할 절대적인 욕망의 대상이 되기 쉬우니까.


그래서 산과 현실 사이의 문제에 대처하는 그녀들의 서로 다른 방식은 그녀들의 상반된 캐릭터만큼이나 극명한 차이로 드러난다. 도시코는 산과 싸우려 든다. 극복하고 싶고, 이기고 싶어 한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확인하고 싶어 한다. 거기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미사코의 산은, 뭐라 표현해야 할까, 그것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수동적인 순응의 자세가 아니라, 오히려 도시코보다 더 절실하게, 더 강렬하게 다가간다. 그래서 미사코의 산은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다. 어찌 보면 비현실적이고 이상적이지만, 그런 대조가 이 소설을 더욱 흥미롭게 만들어 주는 것만큼은 자명하다.     



그녀는 열중할 수 있는 것을 오랫동안 무의식적으로 찾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것은 그녀 앞에 나타날 것 같지 않았다. 그녀는 단조롭게 릿지 오르내리기를 반복하면서 자칫하다간 이런 일에 열중해 버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일이란 바위타기였다. 머리 구석을 잠깐 스쳤을 뿐이지만, 뭔가 눈앞에 번뜩이는 바늘이 들어간 기분이었다.     

- 닛타 지로, 아름다운 동행 1, 78쪽 중에서 (일빛, 1999)     



재그산악회로부터 초대되어 간 암장에서 처음으로 바위타기를 하고 난 후, 도시코의 독백이다. 자, 산에 미치기 시작한 사람들이여, 산을 오르며, 바위를 타며, 이렇게 눈앞에 번뜩이는 바늘이 들어간 기분, 그것을 느끼지 않았다면, 애초에 산에 미칠 일도 없었을 테지... 도시코의 산은 이렇게 나를 투영할 수 있는 현실의 산이었다.      


그러나 일본에서도 소수의 사람들만 오를 수 있다는 병풍바위 등반에 성공한 후, 그 정상에서, 소용돌이치는 구름을 보며 전통적이면서 전혀 새로운 가마쿠라보리의 새 문양을 구상 - 그것은 미사코 자신의 예술혼의 완성이었다 - 하는 미사코의 산은 다분히 우리가 꿈꾸는 이상의 산이라 할 수 있겠다. 그렇기에 그녀는 산이 아닌 곳에서도 그녀의 산을 완성할 수 있었다. 산이 곧 그녀의 예술이고, 그 자신이었을 테니까.     


자, 이 소설은 앞서 말한대로 어떤 운명처럼 우연히 만난 두 여성의 산에 대한 입문기이자, 성장기이자, 산과 떨어질 수 없었던 그녀들의 삶에 관한 이야기이다. 소설 속 배경이 1960년대이니, 지금 시점으로 생각하면 몽블랑이나 아이거북벽 등 지금과는 맞지 않는 상황도 등장한다. 나야 그런 것까지 자세히 알 수 없지만, 산이라는 공통 분모에도 불구하고, 그녀들의 서로 다른 “시작”과 그렇기에 서로 다른 “끝”으로 맺음할 수밖에 없는 결말에는 어쩔 수 없이 긴 여운이 남는다.     


산에 미치도록 빠졌다 해서 우리의 산이 소설 속 그녀들처럼 되기를, 또는 되리라 꿈꾸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제 막 산을 시작하는 – 그 산이 꼭 암벽등반이 아니더라도 - 사람들에게 지금 자신에게 암벽등반을 그만두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밖에 없다던 도시코의 말은 도저히 흘려보낼 수 없을 것 같다.     



다만 이대로 어중간하게 그만두고 싶지가 않아요. 일단 시작한 만큼 바위를 탈 수 있다는 말을 들을 만큼 기술을 익혀 두고 싶은 거예요.     

- 닛타 지로, 「아름다운 동행 1」, 101쪽 중에서 (일빛 1999)     



누구나 자신만의 산이 있다. 그러고 나서야 누군가와 함께 하는 산도 있게 된다. 자신만의 산을 가지게 되기까지 영문도 모른 채 미친 열정에 빠지기도 하고, 그렇게 허우적대다 문득 산에서 멀어지고, 다시 가까워지기를 반복한다. 지금 혹시 그러고 있는가. 앞으로 산으로의 긴 여정을 밟는데 닛타 지로의 「아름다운 동행」이 바늘에 찔린 듯 번뜩이는 섬광으로 우리의 걸음에 보태질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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