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카르마2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얀 얼굴 학생 May 15. 2024

47 - 머리 다리 머리 다리

 그는 입사 4개월차에 접어들었다. 온갖 총무/지원 업무를 도맡아 진행한 탓에, 신입사원임에도 그는 사업부 내에서 인지도가 높은 편이었다. 이는 사업지원팀 S 팀장이 의도한 바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초창기에 모르는 용어를 교육한다는 명목 하에, 영업팀과 기술팀 막내들에게 그를 보내어 일부러 문의하게끔 했으리라. 


 인맥이 넓고 아는 사람이 많으면 당연히 좋다. 물론 친밀도나 속내를 공유하는지에 따라 기준이 달라지기도 하지만, 보통의 경우 아는 사람이 많을수록 좋은 축에 속한다. 하지만 그의 경우, 꼭 좋지만은 않을 수도 있겠다 생각된 지점이 있다.



 업무를 수행하던 어느 날, 그는 계단을 내려가다가 층계참에서 두 명을 마주친다. 모두 팀이 다르고, 그보다 상사다. 그가 인사를 하자 반가운 티를 내며, 옥상으로 올라가자고 한다. 


 이 회사의 옥상은 흡연장으로 쓰이고 있다. 구전되어 내려오는 설화에 따르면, 옛날에는 사원대리급이 옥상에서 흡연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주로 임원이나 팀장급의 공간이었으며, 사원이나 대리급은 상사가 데리고 올라가줘야 수줍게 담배를 피울 수 있었다는 전래 동화가 있다. 

 개인적인 경험에 의해 담배 연기를 혐오하는 그는, 가장 전망 좋고 공기도 좋을 옥상을 하필 흡연자들이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 이해하기 힘들다.


 개인적인 선호와 상관없이, 그는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열정 있는 신입사원이다. 거절하지 않고 함께 옥상으로 따라올라간다. 싹싹하고 완벽한 신입이 되려면, 비흡연자라 하더라도 라이터를 품에 품고서 상사가 담배를 피우려 하면 자동으로 불을 붙여줘야 하는 시절이 있었다 한다. 그도 싹싹함을 추구하긴 한다. 하지만 예전 기준에 부합할 정도로 싹싹하지도, 그렇게 되고 싶지도 않다.



옥상

 그는 360도로 시야가 탁 트인 옥상을 기대했으나, 이 회사의 옥상은 그렇지 않다. 옥상이라기보다, '건물의 꼭대기층'이 더 적합할 정도다. 옥상 전체 면적의 80%가 실내 공간이고, 나머지 20% 정도만 실외 공간이다. 그나마 실외 공간도, 하늘만 보일 뿐 옆은 약 4m 높이 벽으로 막혀 있다. 그는 흡연자들이 차지하고 있는 '옥상'이, 전망도 좋지 않고 그저그런 공간이라는 점에 내심 안도한다. 드라마 '미생'의 건물 옥상처럼 전망이 좋았다면, 담배연기를 감내하면서라도 올라와서 매일 노을을 바라보려 한 그다. 그런 경관이 없으니, 싫은 담배연기를 굳이 인내할 필요도 사라진다.


  - (자리에 앉는다) 어 앉아요 앉아

  - 오랜만에 뵙네요

  그 : (따라 앉는다)

  - (담배를 피며) 그렇네요.

  - (담뱃불을 붙이며) 아 얼굴이 너, 담배 피나?

  그 : 아뇨, 저는 안 핍니다.

  - 그럼 왜 따라왔어?

  그 : 불러주시니까는 왔습니다.

  - 아 그렇구나?

  

  - 얼굴 씨 요즘 바쁜 것 같은데. 어때요?

  그 : 아뇨, 괜찮습니다.

  - 얼굴이가 최고죠. 얼굴이 없으면 안 된다니까요?

  - 그러니깐. 사업지원팀에 활기가 돌아요

  그 : 아, 감사합니다.


 진심인지 농담인지, 그를 향한 칭찬이 이어진다. 그는 그저 감사하다고 말할 뿐이다. 자신을 너무 칭찬해줘서, 그는 이 사람들이 좋은 사람들이라고 인지하기 시작한다. 물론, 좋은 사람들이었음에 틀림없다.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양면성을 갖고 있으며, 중요시하는 가치가 다르기 마련이다. 그를 향한 칭찬이 끝나고, 이야기 주제가 바뀐다. 그를 제외한 둘은, 회사 내부보다는 외부가 주요 무대인 이들이다. 이야기가 조금씩 산으로 가기 시작한다.


  - 요즘 전염병 때문에 아주 난리에요

  - 맞아. 도대체 여기는 언제까지 검사를 받으라고 하는거야?

  - 바깥 얘기 들어보면 이렇게 심하게 하는 건 저희밖에 없어요.

  - 근데 솔직히, 전염병 때가 편하긴 했잖아요

  - 그것도 그렇죠. 아예 미팅을 할 수가 없었으니까

  - 이제 슬금슬금 전염병이 풀리니까. 다시 미팅하러 다니고 있는데, 하~

  - 맞아요. 저번에 같이 가셨었죠? 걔네는 진짜...

  그 : ??

  - 진짜, 내가 00 씨 이야기를 듣고 가서 망정이지. 진짜 그런 놈이 있는 줄 몰랐다니까?

  - 말씀드렸잖아요. 진짜 엄청나다니까요

  - (그를 보며) 아니, 핸드폰으로 메모장을 딱 열어. 거기에 막 무슨 맥북, 이번에 새로 나온 스마트폰 이런 게 리스트로 이만큼 적혀 있어.

  - 어, 얼마 전에 스마트폰 새로 바꾸셨다고 했잖아요?

  - 맞아, 바꿨지. 괜찮더라고.


이야기가 잠시 삼천포로 빠졌다가 되돌아온다.


  - 그래서, 아니 진짜 어이가 없어서. 지가 이번에 받았으면 좋겠다고 하더라니까? 어 음, 이번에는 이 정도는 받았으면 좋겠는데~

  - 아니, 하하하하하하

  - 아니 뭐 일하면서 이런저런 사람들 만나보지만. 진짜 이건 양아치 아냐

  - 그래서 제가 마음의 준비하시라고 말씀드린거에요.

  - 이렇게 해도 되는 거야?

  - 법적으로는 안 되죠. 그쪽도 아는데, 원래는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갈수록...

  그 : (조심스럽게) 고객사가 그걸 달라고 하는 건가요? 원래 그런 건가요?

  - 얘네는 너무 대놓고 요구하지



 회사 바깥에서 일하는 이들의 고뇌에 그는 말문이 막힌다. 가뜩이나 그는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사원이다. 그가 끼어들 만한 내용이 아닌 듯하여, 그는 입을 닫고 듣기로 마음을 굳힌다. 그런데, 판단하기 애매한 이야기가 추가되기 시작한다.


  - 그래서 가끔 그런 식으로 요구하는 데가 있어서 따라가게 되면 참...

  - 요즘에는 전염병 때문에 없지 않아요?

  - 한창 때는 없었는데. 이제 또 다 슬슬 다시 생겼어. 저기 가면 다 영업하고 있어

  - 아 그래요? 얼굴이도 데려가야 하는데

  - 얼굴이? 얼굴이도 한 번 갈 때가 되긴 했지.

  - 어때 얼굴아

  그 : (정확히 무슨 말인지 파악되지 않아) 네?

  - 진짜 깜짝 놀랬다니까. 무슨 말인지 알지?

  - 하하하하하

  - 갔다오면,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야. 그러니까,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랄까


 이 시점까지도, 그는 무엇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다음 발언을 통해, 아니길 바랬던 불안감이 명료해진다.


  - 정신 없죠.

  - 깜짝 놀랬다니까. 눈앞을 딱 보니까는. 머리, 다리, 머리, 다리 이렇게 있는거야.

  - 하하하하하



 머리와 다리가 연속으로 줄지어 있는 모양새일 것으로 예상된다. 그는, 더 이상 구체적으로 이해하지는 않기로 결정한다.

 그가 이해한 바가 아닐지도, 그 혼자만의 망상일지도 모른다. 그의 이야기를 들은 지인은, 그가 생각한 바가 맞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자신의 취업이 늦어진 것에 대해, 30대에 들어선 후에 취업을 성공한 것에 대해 처음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만일 20대 혈기 왕성한 시기에 입사하였더라면, 해당 주제에 대해 아직 명확한 의견이 성립되지 않은 시기였더라면. 하필 그때 그가 몸 담은 회사와 직속 상사들의 분위기가 그런 식으로 흘러갔다면 어땠을까. 그는 혼자서 거부할 수 있었을까. 어린 나이에, 오히려 새롭고 신기한 경험이라고 포장하며 적극 뛰어들었을지도 모른다.


 눈앞의 이들이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지는 않다. 어쨌든 그는 다짐한다. 그런 식의 장소는 방문하지 않으리라고, 그런 식의 업무는 하지 않겠노라고. 여지껏 '선비 정신'이라는 말을 싫어했던 그이지만, 정작 자신 안에 '선비 정신'이 피어나고 있었나 보다.

매거진의 이전글 46 - 커피머신 찌꺼기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