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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 얼굴 학생 Jun 22. 2024

48 - 고객사 재무정보 기입

 여느 때처럼 전염병 전표를 처리하는 그, 사업지원팀도 평화롭다. 영업팀 C 대리가 사업지원팀을 방문한다.


 C 대리는 '영업팀' 소속이지만, 사실상 IT사업부에서 '영업기획'을 맡고 있다. 팀이 따로 분리된 것은 아니어서, 회사 시스템에서 이름을 검색할 경우 C 대리는 영업팀 소속으로 조회된다. 하지만 IT사업부 내부 조직도에는, 영업팀에서 가지를 쳐서 나온 '영업기획 파트'가 있다. 비록 인원은 C 대리 한 명 뿐이지만, C 대리는 나름 영업기획 파트의 파트장인 셈이다. 


 영업기획의 특성인지, C 대리는 다른 영업팀 인원들에 비해 내근이 잦다. 매출 데이터를 분석하고 관리해야 한다, 협업을 효율적으로 해야 한다, 바쁜 리더들이 한눈에 보기 좋게끔 깔끔하게 데이터를 정리해야 한다는 말을 많이 했다. 이 회사는 시스템과 체계가 없진 않으나, 구멍이 많고 엉성한 측면이 있다. C 대리는, 회사 시스템의 이런 공백을 'Tool'을 사용하여 메꿔야 한다는 주의였다. C 대리가 지대한 관심을 가진 Tool(도구)는 구글 스프레드시트 / 노션 / 슬랙 / 두레이 / 세일즈포스 등이었다. 당시의 그로서는 뭐가 뭔지 감을 잡을 수 없는 이름들이었다.



 C 대리는 사업지원팀에 업무 협조를 요청한다.

  C 대리 : 과장님, 안녕하세요.

  T 과장 : 어, C야

  C 대리 : 저희 고객사들 신용정보를 데이터 베이스로 구축할려고 해서요. 작업 인원이 필요한데, 얼굴 사원을 지원해주실 수 있나요?

  T 과장 : 괜찮을 거 같은데. 팀장님께 여쭤봐.


 그는 새로운 일을 맡게 될 것이라는 가능성만으로도 설렌다.

  

  S 팀장 : 뭐 한다고?

  C 대리 : 채권 관리 측면에서, 고객사들 재무정보와 신용정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려고요. 3개년도 재무정보랑 신용정보를 기입해야 합니다.

  S 팀장 : 음... 요즘 내용증명 보낼 일 자꾸 생기는 거 보면, 필요하지

  C 대리 : 얼굴 사원이랑 같이 작업해도 될까요?

  S 팀장 : 그렇게 해. 마음대로 갖다 써


  C 대리 : 얼굴아

  그 : 네 안녕하십니까!

  C 대리 : IT사업부 고객사들 재무정보 기입이 필요해. 지금 시트 공유해 줬어. 들어가봐봐.

  그 : (전달받은 링크로 타고 들어간다. 신세계다)

  C 대리 : 편집자 권한 줬거든. 여기 고객사 재무정보 기입 열을 채워주면 돼. 우리가 고객사가 좀 많아. 이 고객사들의 3개년도 재무정보 넣어주고, 신용등급이랑 현금흐름등급도.

  그 : 알겠습니다!

  C 대리 : 하다 보면, 정보 없는 것들도 있을 거야. 이상한 거는 나한테 물어보고, 없는 거는 일단 비고에 적어놓고 패스해.



 새로운 일에 대한 기대, 설렘, 신선함으로 사로잡힌 그가 작업을 시작한다. 코로나 전표 외의 다른 일을 맡았다는 것이 새롭고, C 대리가 공유해준 '스프레드시트'라는 것이 새롭다. 이 구글 스프레드시트라는 것은, 문서를 공유한 인원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작업을 할 수 있는 엑셀이다. 그가 정보를 기입하고 있노라면, 가끔씩 C 대리가 스프레드시트에 접속한 것이 보인다. 붉은 테두리로 칠해진 셀이, 마음대로 여기저기를 돌아다닌다. C 대리의 움직임이다.


 그에게 새로 부여된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크레탑'이라는 신용 정보 서비스 페이지에 로그인하여, 고객사를 검색한 뒤 해당 정보를 기입하면 된다. 기입해야 되는 정보는 아래와 같다.


  202X년 자산 / 자본 / 부채 / 매출 / 당기순이익 / 신용등급 / 현금흐름등급

  202Y년 자산 / 자본 / 부채 / 매출 / 당기순이익 / 신용등급 / 현금흐름등급

  202Z년 자산 / 자본 / 부채 / 매출 / 당기순이익 / 신용등급 / 현금흐름등급


 즉, 3개년도의 재무정보와 등급을 입력해야 한다. 문제는, 고객사를 하나하나 검색한 뒤 정보를 일일이 타자를 쳐서 기입해야 한다는 점이다. 일괄적으로 복사-붙여넣기를 할 수 없는 구조다. 그리고 고객사는 600개에 조금 못 미친다. 그가 기입해야 할 정보의 수는 아래와 같다.

  고객사 500개*6개 정보*3개 년도 = 9,000개 



 그는 경영학도의 머리를 짜내어, 입력해야 할 정보 중 하나는 자동화한다. '자산=부채+자본' 이니, 자산과 부채를 기입하면 자본은 자동 계산이 가능하다. 자산에서 부채를 빼면 되니까. 그렇게 줄여도 아직 7,500번의 수작업이 남았다. 


 키보드만 누르는 단순 작업은 쉬울 것이라고 생각한 그다. 몸이 크게 힘들 것도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작업이 지속될수록 어깨와 목은 뻐근해지고, 눈은 빠질 것 같다. 고객사를 검색할 때마다, 결과가 뜨기까지 최소 2~3초가 걸린다. 재무정보와 신용등급/현금흐름의 조회 메뉴가 다르기 때문에, 정보를 기입하다가 마우스를 움직여 다른 화면으로 넘겨줘야 한다.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에서는 이런 조그마한 시간이나 에너지 하나하나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의 눈덩이로 불어난다. 마라톤에서 팔의 미세한 움직임 하나가 기록에 영향을 끼치는 것처럼 말이다.



 전염병 전표를 치던 때와 동일하게, 고객사 신용정보 업무도 자유도가 크다. C 대리가 가끔씩 상황을 확인할 뿐, 별다른 재촉은 없다. 그의 속도가 아주 느리진 않았던 모양이다. 다만 업무를 진행하며, 그에게 든 의문이 있다.


 이러다가 혹시라도 숫자를 틀리게 기입해 버리면, 그 검증은 어떻게 하는가?

 이렇게 단순 반복 노가다로 기입하는 게 맞나? 다른 방법은 없는 걸까?

 3개년도 정보를 기입하는 것이면, 이전까지는 이 업무를 하지 않았다는 뜻인가?

 나름 중요한 업무인 것 같은데, 왜 지금까지는 진행이 되지 않았나?


 의문은 의문일 뿐, 그는 고객사 재무정보 기입을 계속한다. 뜻을 잘 모르겠지만 똑같이 기입한다. 재무정보 AA, 좋은 회사인 것 같다. 재무정보 CC, 나쁜 회사인 것 같다. 현금흐름등급은 CR1이 제일 좋은 것이고 CR6가 제일 안 좋은 것이구나.


 약 2주 뒤, 그는 500개 고객사의 3개년도 재무정보 기입을 끝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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