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말에 가까운 화법을 구사하는 의사, 그것이 옳고 그르고를 떠나, 충격 요법이라는 측면에서는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눈물바다를 만들고 온 어머니와 그는, 의사의 말대로 식단을 통제하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최소 몇 달의 기간 동안, 그가 집에서 먹는 식사는 오로지 '비빔밥'과 '된장국'이었다.
하지만 통제가 되지 않는 식단이 있었으니, 바로 점심 식사다. 학생인 그는, 점심 식사를 학교에서 해결한다. 매 점심시간마다 급식차가 교실까지 올라오고, 학생들이 돌아가면서 배식을 맡는다. 그가 고기를 먹을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어머니는 그에게, 학교에서의 점심 식사에서도 고기를 되도록 먹지 말라고 했다. 특히나 제육볶음의 경우, 고기 기름이 그대로 녹아있는 그 국물만큼은 먹지 말라고 했다. 그가 이런 세세한 부분을 기억하는 것으로 보아, 어머니의 말을 아주 무시했던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고 아주 제대로 따르지도 않았다. 이 시절 그는, 집에서는 매일 비빔밥과 된장국을 먹고 학교 급식 시간을 기대하곤 했다.
사람은 참 신기하다. 그리고, 반복이 가진 힘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그는 원래부터 고기, 피자, 햄버거를 좋아했다. 가뜩이나 초중학교 시절이었으니, 그야말로 '초딩입맛'이었음은 이루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처음 보는 의사 앞에서 영문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펑펑 울었던 경험이 나름의 동기부여가 되었나 보다. 독기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다. 그만큼 아토피가 낫고 싶었고, 또 생판 모르는 의사한테 괜히 혼나며 울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는 어머니가 해주는 비빔밥과 된장국을, 불평불만 없이 먹었다. 피부가 이렇든 말든 나는 고기를 먹고 싶은데 왜 집에서는 고기를 안 해주느냐. 철딱서니 없는 그이기에 분명 할 법한 투정이었으나, 신기하게도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학교에서 너무 기름진 메뉴를 먹게 되면, 이렇게 몰래 먹어도 되는 건가 일말의 죄책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렇게 몇 달 동안 지속한 비빔밥과 된장국 식단이 마침내 임계점을 돌파하여, 그의 입맛이 개화한다.
이날 그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비빔밥을 한 숟갈 퍼서 입안 가득 넣고 씹었다. 우걱우걱, 밥알과 야채가 씹히며 고추장의 매운맛이 느껴진다. 동시에, 어머니가 뿌려준 참기름의 고소함이 퍼져나간다. 원래도 느끼긴 했었으나, 감도가 낮고 각기 따로 느껴졌던 맛이다. 그런데 이날은 명확하고 확실한 맛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짐이 느껴진다. 이게 무슨 맛이지?
입 안 가득했던 비빔밥을 삼킨 뒤, 옆에 있던 따뜻한 된장국을 한 숟갈 떠먹는다. 과히 짜지 않은 적당한 간의 된장국이 넘어가며, 고추장과 참기름 향으로 가득했던 입안을 중화해준다. 게다가 된장국에는 감자까지 들어있었다! 한 숟갈 더 떠서, 된장국과 감자를 함께 음미한다. 적당한 크기로 썰어진 포슬포슬한 감자가, 세게 씹지 않아도 이 사이에서 부드럽게 뭉개진다. 참을 수 없다. 비빔밥과 같이 먹고 싶은 맛이다.
된장국을 먹자마자 비빔밥을 다시 양껏 떠서 한 입 가득 넣는다. 우걱우걱, 입 안 가득한 상태로 된장국까지 떠서 먹는다. 비빔밥 속 김치, 야채, 밥, 고추장, 참기름이 따뜻한 된장국, 감자와 함께 어우러진다. 그는 무아지경이 되어 수저를 멈추지 않는다.
이 날 이후, 그는 집에서의 식사 시간을 학수고대하게 되었다. 오늘도 또 먹는다! 비빔밥과 된장국을 함께 먹었을 때 그 맵고 고소하고 구수한 조합을 또 맛볼 수 있겠구나.
자극적이고 화려한 것은 처음에 현혹되기 쉬우나 오래가지 못하며 여운이 짧다. 반면 소박하고 담백한 것은 그 매력을 찾기까지 오래 걸리나, 한번 그 매력을 알게 되면 여운이 끊기지 않는 법이다. 몇 달 간의 통제된 식단 속에서, 그는 결국 비빔밥과 된장국의 담백한 맛을 알아버렸다. (초중학생 시절 이를 알게 된 것은 행운이라고도 할 수 있을 정도다) 이를 알아버린 시점부터, 그는 학교에서 먹는 급식 고기 메뉴보다 집에서 먹는 비빔밥과 된장국이 훨씬 더 맛있어졌다. 그리고 그런 맛있는 식사를 만들어주시는 어머니에 대한 존경심과 감사가 높아졌다.
건강한 식단 덕이었을까, 담백하고 소박한 즐거움을 알게 된 덕이었을까. 이 시절 그의 아토피는, 아주 약간 호전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괄목할 만한 정도는 아니었다.
눈물바다를 선사했던 의사는, 그에게는 '아토피 의사'라기보다 '비빔밥, 된장국 전파자'로 기억에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