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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era Ryu Jun 13. 2024

시티 오브 갓과 올드보이 ①

아, 그 영화요. 최고의 영화죠. 근데!

‘수박 겉핥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마치 겉과 속이 다른 수박을 외면으로만 보아 그 달콤한 과육은 채 알지 못하게 되는 것처럼, 어떠한 것을 채 제대로 알지 못할 때 사용되는 표현입니다. 브라질 한 입 파먹기 시리즈에서는 다채로운 브라질 문화를 다룹니다. 삼바와 축구, 자유와 열정… 그 속에 있는 이야기에 한 입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왜 브라질이냐고요? 이유는 없습니다. 수박, 맛있잖아요.


조그마한 어린아이가 총을 들고 있습니다. 우리는 마치 바닥에 누워있는 것처럼 그 아이를 올려다보고 있습니다.


에이, 무슨 어린애가 총을 다룬다고!


<시티 오브 갓> (2002)


…아니요, 이 아이는 우리에게 총을 겨누고 있습니다. 웃고 있죠. 그리고 …펑! 여러 차례 총을 쏘는 아이는 점점 성장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갓 성인이 된 것으로 보이는 청년이 총을 쏘고 화면 밖으로 사라집니다.

‘브라질 한 입 파먹기 시리즈’ 첫 번째 이야기, 브라질 현대 영화 명작, <시티 오브 갓>입니다.  


<시티 오브 갓> (2002)


'명작', <시티 오브 갓> 


<시티 오브 갓>은 브라질을 대표하는 도시인 리우데자네이루의 빈민촌을 배경으로, 범죄 조직이 자라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는 듯 그리는 작품입니다. 감독 페르난두 메이렐레스는 <시티 오브 갓>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았고, 한국에서는 <눈먼 자들의 도시>, <두 교황>으로 알려진 감독입니다.


영화는 주요 발화자인 부스카페의 시점에서 진행됩니다. 부스카페가 자신이 자란 동네인 ‘시티 오브 갓’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회고하며 관객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듯 영화는 진행됩니다. 속도감 있는 편집과 독특한 촬영 방법, 꾸밈없이 보여주는 빈민촌의 일상으로 브라질은 물론 해외의 많은 관객이 충격과 동시에 열광하게 한 작품이죠.


<시티 오브 갓> (2002)


‘파벨라(Favela)’는 빈민촌을 부르는 단어입니다. 앞으로는 이 단어를 빈민촌으로 번역하지 않고, 파벨라로 표기하겠습니다. 왜냐하면 파벨라는 브라질의 사회적 문제를 집약해 놓은 공간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으로 치면 빈민촌이 아니라 고시촌, 쪽방촌, 달동네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각각의 단어는 임대료가 저렴한 지역들을 부르는 말이지만, 비슷한 듯 다른 사회적 문제를 떠올리게 합니다. 브라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파벨라는 브라질의 기형적인 계층과 인종의 문제를 대표하는 공간입니다.


<시티 오브 갓>의 탁월한 점은 파벨라를 다루면서도 재미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언론인으로 성장하는 파벨라 출신 사진기자의 시선을 빌려 브라질 사회에 만연한 경제적 불평등, 인종차별, 그리고 계층 상승을 어렵게 하는 사회 정책과 구조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를 다루며 사회 비판적인 이야기를 하면서도,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질 만한 이야기를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시티 오브 갓>이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74개의 수상과 50개의 노미네이션이라는 기록을 세운 것은 그런 탓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영화가 너무나 잘 만들어진 나머지 부작용이 발생했습니다. 브라질에는 <시티 오브 갓>이라는 영화밖에 남지 않게 되었습니다.


<시티 오브 갓> (2002)   

<시티 오브 갓>, 애증의 영화 

시티 오브 갓은 사실 좀 복잡한 영화입니다. 영화가 복잡하다는 게 아니라 그 작품을 보는 브라질 시네필들의 심정이 복잡하달까요.

이를테면 이런 것입니다. 당신은 영화에 조금 관심이 있는 한국인이고, 해외 여행을 갔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현지인과 대화하게 되었죠.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가 상대방에게 ‘<올드 보이>를 봤는데 재밌더라고요’라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아마 당신은 뛸 듯이 기쁠 것입니다. 이런 심오한 명작을!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를 이끌고 세계에 한국 영화를 알린 감독 박찬욱! 날카로우면서도 유머러스한 감각으로 한국의 문제를 꽉 꼬집어내는 똑똑함!

한국 영화의 복잡하고 아름답고 충격적인 비주얼이 자랑스럽겠지요.


<올드보이> (2003)


그러면 이건 어떨까요? 당신이 그 사람과 계속 대화를 한다고 합시다. 그 사람은 자신이 한국 영화를 통해 한국의 문화를 제법 배울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 무슨 영화를 봤는데? 그러자 그 사람은 영화의 이름들을 줄줄이 읊습니다. ‘<올드 보이>, <복수는 나의 것>, <마더>, <살인의 추억>, <기생충>, <곡성>, …’ 어라? 그럼, 의문이 들겠죠.


거기서 무슨 한국 문화를 배웠는데…?


이것이 브라질의 영화인들이 <시티 오브 갓>에 관해 경험하는 감정일 것입니다.



원문: #아트인사이트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65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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