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숄'
홀로코스트(Holocaust)는 그리스어 holókauston에서 유래하는데, 이는 고대 그리스에서 신에게 동물을(holos) 태워서(kaustos) 제물로 바치는 것을 의미한다. 196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홀로코스트는 대량 학살을 지칭하는 데 쓰였지만, 1960년대부터 학자들과 유명 작가들에 의해 특별히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지칭하는 개념으로 쓰이기 시작하였다.
홀로코스트, 그리고 문학
위의 홀로코스트에 대한 정의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세계의 곳곳에서 발생한 대량 학살을 지칭하는 말이고, 그러한 대학살을 다룬 모든 문학 작품이 ‘홀로코스트 문학’, 혹은 ‘증언 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2차 세계대전 시기에 일어난 유대인 학살 사건을 다룬 문학작품을 언급할 때 ‘홀로코스트 문학’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듯하다.
이 장르의 여러 중요한 도서 중 한국에서 널리 알려진 작품들을 꼽자면, 청소년 수용자의 경험이 담긴 ‘안네의 일기’, 수용소에서 의사로 생활하며 경험한 수용자의 이야기를 다룬 ‘죽음의 수용소에서’ 등이 있다. 이렇듯 홀로코스트 문학은 주로 수용소의 생활을 경험하지 않은 현대인에게 수용소 내부의 실상을 낱낱이 고발하기 위해 사실을 기반으로 한 기록에 초점이 맞춰진 작품들이 많다.
단편집 ‘숄’은 유대계 미국인인 작가 신시아 오직의 단편집으로, ‘숄’과 ‘로사’라는 단편 두 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두 단편 모두 로사라는 인물이 주인공, 1980년에 발표되었으며, 그간 한국에는 번역되지 않았다가 이번에 최초로 발간되었다.
만일 제거되지 않는다면 "유대인 인종"이
독일 민족을 영구적으로 부패시키고 파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출처: 홀로코스트 백과사전
‘숄’, 홀로코스트 문학의 변주
일반적으로 ‘피해자의 고통을 생생히 증명해 인류가 부끄러운 과거를 망각하지 않도록 한다’는 증언 문학의 특징이 ‘숄’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이 작품은 작가 신시아 오직이 직접 경험한 내용에 기반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신시아 오직은 1928년 뉴욕에서 태어났다.
따라서 상상에 의해 쓰인 픽션이기 때문에 구체적이지 않은 언어를 사용한다. 특히 ‘숄’에서는 집단 수용소 내부의 생활이 마치 직접 경험하듯이 상세하게 묘사되지 않고, 인물과 그들의 억압된 감정에만 의지하며 스토리텔링이 이어진다.
유대인 수용소에 있다는 것은 ‘노란 별의 색깔’, ‘철조망’ 등의 단어로 표현된다. 마그다의 존재를 둘러싼 로사와 스텔라 사이의 갈등의 원인 중 하나가 마그다의 출생의 비밀이기도 하다는 점과 같이, 등장인물인 로사, 스텔라, 마그다가 유대인임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으면서, 여러 상징으로 인물의 사연을 파악할 실마리를 제시한다는 점이 ‘숄’에서 주목할 만한 지점이다.
큰 피해가 발생한 사건을 이야기할 때, 사건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표현을 삼가는 것은 피해자의 상처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선택하는 방어 기제이자 배려 중 하나이다. 이런 간접적인 언어가 소설이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기록된 것 같은 느낌을 강하게 준다.
초기에 이 부대들은 징병 연령대의 유대인 남성들을 표적 했다. 그러나
1941년 8월부터 나이나 성별 상관없이 유대인 공동체들을 무차별하게 학살하기 시작했다.
출처: 홀로코스트 백과사전
‘로사’, 홀로코스트는 계속된다.
신시아 오직의 다른 작품 ‘로사’는 ‘숄’이 발표되고 3년이 지나서 세상에 나온 작품으로, 숄의 주인공의 30년 후를 다룬다. 소설은 시작부터 로사가 ‘미친 여자이자 과거의 쓰레기로 살아가는’ 형편임을 설명한다. 강렬한 이미지가 주가 되는 ‘숄’보다 직관적으로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끝나지 않는 고통을 그린다.
홀로코스트의 생존자인 로사는 정신적으로 불안정하며, 그의 고통은 계속된다. 이는 과거의 공포를 없던 일인 척하며 극복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로사의 조카 스텔라와 대비되며 더더욱 부각된다. 생존한 사람들임에도 유대감이 없이 갈등을 빚고 있는 스텔라와 로사의 관계는 과거를 청산하는 과정에서 여러 내부적인 갈등을 빚는 피해자 커뮤니티의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이야기가 전개되는 동안 로사가 느끼는 감정들은 수치심과 슬픔, 우울, (타인이 자신에 나쁜 짓을 할 것이라는) 불신과 불안(피해망상)이 대부분이다. ‘로사’는 피해자들의 시간은 느리게 가고 특히 취약한 (너무 심한 고통의 경험을 한) 생존자들에게는 ‘생존’ 이후의 삶을 꾸리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되는 과정을 담담히 보여준다.
게토가 설립된 후 처음 몇 개월간 게토의 생활은 정상적인 것처럼 돌아갔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음식이 부족해지고 주거 환경이 열악해지기 시작했다.
출처: 홀로코스트 백과사전
우리는 ‘로사들’에 떳떳한가
로사의 시작과 끝은 ‘미친 여자’로 요약할 수 있다. 시작부터 로사는 미친 여자로 존재했고, 소설이 끝나고도 그는 미친 여자로 살아갈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런 그가 미친 여자로 살 수 있도록 용인해 주는 사회다.
억울한 마음을 위로해 주면서도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는 관용이 필요한 것이다. 로사 같은 사람에게는 퍼스키 같은(미친 듯이 굴어도 다음 날 다시 찾아와 주는) 인내가 필요하다. 우리는 그런 사회인가?
모든 것은 ‘그러지 않았더라면’으로 귀결되기도 한다. 바꿀 수 없는 과거에 대한 원망. 그러나 미래에서 바라볼 때 현재는 과거이다. 지금 우리가 하는 선택들은 과연 ‘로사들’이 보기에 괜찮은 것들인가?
뉴스를 틀면 보이는 사망자 집계 수. 계속해서 올라가고 있다. 홀로코스트라는 단어의 유래를 제외하고, 위에 인용된 문장들은 나치 정권하에서 유대인 학살이 일어난 것을 널리 알리기 위해 관련 정보들을 아카이빙한 사이트인 ‘홀로코스트 백과사전’에서 인용해 왔다.
이 문장들에 몇몇 빈칸을 만들면 우리는 그것이 요즘에도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계속되는 학살의 역사에서 퍼스키가 될 수 있는 방법을 고심해본다.
만일 제거되지 않는다면 "( ) 인종"이
( ) 민족을 영구적으로 부패시키고 파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초기에 이 부대들은 징병 연령대의 ( ) 남성들을 표적 했다. 그러나 ( )년 ( )월부터
나이나 성별 상관없이 ( ) 공동체들을 무차별하게 학살하기 시작했다.
( )가 설립된 후 처음 몇 개월간 ( )의 생활은 정상적인 것처럼 돌아갔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음식이 부족해지고 주거 환경이 열악해지기 시작했다.
역사에는 이와 비슷한 문장이 기록된 페이지가 끝없이 나오고 있다. 여전히 ‘숄’을 봐야 하는 이유다.
원문: #아트인사이트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681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