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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era Ryu Sep 15. 2024

취미에 관하여

목적지: 따분하고 지루한 인생

최근엔 '취미'에 관해 많이 생각하고 있다. 나는 딱히 취미가 없던 사람이었다. 영화 감상, 독서... 그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취미이다. 그리고 사실 진심으로 영화를 감상하고 책을 읽는 사람들은 나만큼 어중간하게 보고 읽지 않는다. 그 사람들은 '진짜'다.


수영이 취미로 하는 유일한 운동이 된 지도 이제 일 년 반이 넘었다. 이건 이제 나의 생활이 되어 오늘 이야기에는 굳이 끼우지 않으려 한다. 오늘 내가 얘기하고 싶은 건 뜨개질과 식물 키우기다.


로즈마리. 지금은 좀 자랐다.


별안간 식물이 키우고 싶어졌다. 지금도 그 이유를 모르겠다. 나는 뭘 잘 키울 줄 아는 사람이 아니고, 나는 그걸 잘 알고 있어서 정말로 내가 식집사가 될 줄은 몰랐다. 어거지로 이유를 생각해 내보자면 1. 일을 하면서 일상 루틴이 생겨 규칙적으로 무언가를 돌볼 여유가 생김 2. 다이소가 원예용품을 아주 싸게 팔고 있음, 이렇게 두 가지가 아닐까 싶다. 취미에 시간과 경제력은 제법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하여튼 다이소에서 씨앗, 화분, 흙 등등을 처음 사 온 날, 새삼 내가 이런 원예용품을 한 아름 갖고 있다는 점이 너무 신기해서 (내가 알던 나와는 너무 다른 것 같아서) 사진을 찍어뒀다. 그때까지만 해도 잠깐 키우다 죽이고 말 줄 알았다. 지금은 한 4개월 넘게 키우고 있는 것 같다. 어찌어찌 안 죽이고 키우고 있는 애들이 남아있다.


아 근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원예용품은 계속해서 돈이 많이 든다는 것이다. 벌레/균 퇴치제를 서울 자취촌 원룸에서 보게 될 줄이야. 흙은 일단 많이 사 뒀는데 자리를 많이 차지해서 난리다. 다이소에서 산 흙은 또 품질이 안 좋다길래 싹을 처음 틔워보려는 누군가에 무료로 나눔 해야 하나 고민 중이다. 뭐 식물에 관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시간이 빨리 간다. 지루함을 견디기 위해 인간은 식물을 키우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티코스터 중독


최근엔 뜨개질을 시작했다. 뜨개질은 은근히 나와 연관이 깊은 활동인데, 엄마가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뜨개질을 취미로 했기 때문이다. 엄마는 어떻게 뜨개질을 시작했는지 모르겠다. 한번 물어봐야지. 아무튼 그래서 어릴 때부터 작고 낡은 뜨개방 같은 데를 엄마 손 잡고 갔던 기억이 난다.


'결국' 뜨개질을 하게 됐다는 점이 내 기분을 참 이상하게 한다. 왜냐면 나는 뜨개질을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많은 딸들이 '엄마와 같이 살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젊고 새파란 애들의 치기로 엄마 아빠가 이루어 온 삶에 어떤 노력이 숨겨져 있는지 모른 채 그냥 결과만으로 판단해서 나오는 다짐이다.


아무튼 뜨개질은 나에게 '절대 따라 하지 않을 활동'중 하나였다. 내가 이십여 년 동안 지켜본 뜨개질은 집에서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손을 꼼질거려 하는 활동이었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완성할 수 있지만 결국 다시 풀어서 無의 상태로 돌려보낼 수 있는, 언제든 중단해 부엌일을 보거나 빨래를 널 수 있는 (시간적) 가성비가 있는 활동.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냥 집에서 있기 싫었다. 집 밖으로 도시 밖으로 나라 밖으로 나가면 더 큰 세상이 있을 거로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집을 나와 일을 해 보니 집에 갇힌 건 똑같고 (심지어 집보다 더 작은 방 한 칸에 갇혀 산다) 매일 집안일에 허덕이고 (어떻게 1인분인데도 이렇게 일이 많냐는 말이다) 무료함에 치를 떤다. 뜨개질에 이끌린 건 어쩌면 운명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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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 과거의 나에게 지금의 내가 어떤지를 묻고 싶어 진다. 이건 뭐랄까, 너무 인정받고 싶은 나머지, 그리고 너무 자신감이 떨어진 나머지 과거의 나에게까지 인정을 갈구하는 것 같다. 그래서 지금 이 질문들이 좀 부끄럽다. 네가 생각했던 나보다 나는 더 지루하고 따분한 사람이 됐어, 자유분방하지 않고 한 곳에 머물러 있는 겁쟁이가 된 것 같다. 어떠니? 그래도 네가 생각했던 것보다 다양한 것을 하고 있기는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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