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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era Ryu Oct 08. 2024

한국 독립 애니메이션의 20번째 비행을 지켜보다

서울인디애니페스트 2024


국내 유일 독립 애니메이션 영화제를 본다는 것 


지난 9월 26일부터 10월 1일까지, CGV 연남에서 서울인디애니페스트가 개최되었다. 서울인디애니페스트는 한국에서 유일하게 독립 애니메이션을 다루는 영화제로, 올해로 어엿하게 20주년을 맞이한 장수 영화제이기도 하다. 


다른 영화제와 차별되는 점을 이야기하자면, 주류 애니메이션과 다른 새로운 감성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 있겠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극장에서 보는 매끈하고 깔끔한 애니메이션 영화들에 비교했을 때 다소 거칠고 투박하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더욱 새로운 아이디어를 접할 수 있다. 


오로지 상상력으로만 이끌어가는 창의적 에너지를 만끽할 수 있다는 것 역시 서울인디에니페스트의 매력이다. 실사 영화와는 다르게, 애니메이션은 연출자의 의도에 대부분 의지해서 탄생할 수 있는 장르다. 그러니까 순수하게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예술적 로망을 착실하게 수행하는 장르라고도 할 수 있다. 예술가의 손에서 직접 만들어진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은가?  



독립보행1: 날것의 상상력을 엿보다 


서울인디애니페스트의 ‘독립보행’ 섹션은 일반적으로 한국의 교육과정을 통해 탄생하지 않은 작품을 조명한다. 교육과정에서 제작되지 않았다는 것은 그만큼 감독 개인의 개성이 강하게 담겨있는 작품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독립보행의 첫 번째 섹션 역시 독특한 상상력과 그림체로 관객에 파격적인 충격을 주는 작품이 많았다. 그중 몇 가지를 소개하려 한다. 


박인주 감독의 <리본 윗 유>는 TV를 매개로 국적의 제약을 받지 않는 여성들 간의 심리적 동화와 연대를 감각적으로 그리는 작품이다. 논리적인 스토리의 진행보다도, 텔레비전으로 추정되는 프레임과 그를 둘러싼 화려하고 압도적인 비주얼의 향연이 인상 깊다. 


전영찬 감독의 <동상>은 배경의 깊이감을 현명하게 활용해 평평한 2D 화면에서도 3D와 같은 입체감과 현장감을 느낄 수 있음을 증명한 작품이다. 수미상관으로 마무리되는 엔딩은 ‘동상’의 철거와 제작이 반복되는 과정을 정치적 알레고리로 읽을 수 있는 여지를 주어, 관객에 따라 더 깊은 해석을 상상할 수 있게 허용하는 유연한 이야기였다. 


박한얼 감독의 <곰팡이>는 관객들이 익숙하게 접했을 법한 미망인의 소재를 다루되, 필요하지 않은 요소는 적극적으로 배제하며 관객의 흥미를 이끈다. 다만 남편을 잃은 여자의 상실감과 망자에 대한 그의 집착을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로 각인할 뿐이다. 이미지에 더해지는 실제 같은 사운드 효과는 기괴한 영상과 맞물려 탁월한 감상을 일으킨다.   



사리나 니헤이: 귀여운 듯 기괴한 백지 속 세계 


이번 서울인디애니페스트에는 일본 출신 애니메이션 감독 사리나 니헤이의 단편 애니메이션 작품들이 상영되었다. 사리나 니헤이는 어린아이가 그린 듯 천진난만하고 알록달록한 그림체로 서늘하고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아티스트로, 영국 왕립예술대학에서 애니메이션을 전공, 졸업 작품 <모자 쓴 난장이>를 통해 세계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이번 사리나 니헤이 기획 상영의 주목할 점은 감독이 직접 관객에 자신과 자신의 예술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진행하는 시간이 있었다는 점이다. 감독이 직접 준비한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스크린에 띄우며 영화관 관객을 상대로 이야기하는 모습에서 마치 비즈니스 프레젠테이션이 떠오르기도 했다. 


감독이 설명하는 생애는 집안의 엄격한 부모님과 그로 인한 학업적 스트레스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런 이야기를 듣다 보면 동아시아 문화권에 속하는 관객이라면 그의 세계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사리나 니헤이 감독은 이 자리에서 에스토니아의 애니메이션, 프랑스 일러스트레이터 토미 웅거러, 감독 스탠리 큐브릭 등 자신이 영감을 받은 다양한 아티스트를 소개하기도 했다. 독특한 스타일의 기원을 찾아볼 수 있는 유의미한 기획이다.  




어두운 현실에도 ‘이영(20)차’ 


올해 서울인디애니페스트의 공식 슬로건은 어떤 문장이나 단어도 아니다. 여러 사람이 힘을 합칠 때 내는 감탄사인 ‘이영차’는 올해 20주년을 맞이한 영화제를 기념하는 귀여운 언어유희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전례 없는 예산 삭감으로 인해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도 끝까지 함께 하겠다는 다짐이기도 하다. 예술의 지속에는 금전도 중요한 몫을 한다. 금전은 보통 주목도에 비례해 발생하기 마련이다. 


21번째 서울인디애니페스트가 존재할 수 있도록 독립 애니메이션에 한번 관심을 두어 보는 것은 어떨까.



원문: #아트인사이트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7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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