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에서나 취업에서나, 어차피 도전해 봤자 까일 거라는 두려움이 든다면
나는 대학을 1년 반 다녔다. 서울 주요대가 아닌지라 전문직에 도전하거나 대학원에 진학하는 학생들 보다는 일반 사기업에 도전하는 학우들이 많았다. 나는 늘 대학원 진학을 희망했기에 취업준비는 할 생각이 없었다. 그렇지만 곁에서 보게 된 취업 준비는 다른 취준생들과의 경쟁보단 본인이 느끼는 무기력과의 싸움이었다.
이것도 해야 하고 저것도 해야 하는데 정답은 없다. 특정 직군에만 유리한 공부를 하면 길이 너무 좁아지고 기본적인 스펙을 쌓는 데에 집중하면 특색이 없어진다. 토익점수 700점을 넘기면 세상 사람들 다 800점 이상인 것처럼 느껴진다. 따기 전엔 그리 간절했던 자격증이 따고 나면 다들 가지고 있어서 큰 가치가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 밖에도 대외활동은 왜 경력과 sns 활동을 보는 건지, 왜 학점을 따려고 흥미로운 과목보다 '꿀교양'에 집착해야 하고 수강신청 때문에 피 말려야하는건지...... 등등 이런 생각이 뿜는 무기력에 잠겨가는 학우들이 굉장히 많았다. 자신에 대한 시선이 부정적이라면 타인에 대한 시선 또한 부정적으로 변해가기 마련이니 서로 까내리고 모욕감을 주는 말들도 굉장히 많이 오간다. 특히 익명 커뮤니티에서 정말 심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오프라인 상에서도 많이 느꼈다.
취업준비는 거절당함의 연속인 것 같다. 요즘엔 수십 장 써서 한 두 곳 붙을까 말 까라고 한다.
그런데, 감히 취업준비도 안 해본 내가, 주제넘게 이런 현상에 대해 할 말이 있다. 아래는 첨부한 기사 중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https://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1/14/2016011400070.html
온라인 만남 실험도 했다. 소개해 달라.
“결혼 적령기에 급하게 배우자를 찾는 사람을 생각해 보자. 이때 자신이 상대를 좋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상대가 나를 얼마나 좋아하는지도 문제다. 하지만 실제로 사람들이 얼마나 본인에게 관심이 있는지 알기 어렵다. 관심이 별로 없는데도 예의상 관심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경제학에서 이런 경우를 ‘정보의 비대칭성’이라고 한다.
내 실험은 정보의 비대칭성을 온라인 데이트에 ‘장미’를 도입해서 해소했다. 실험 참가자는 데이트 요청은 원하는 만큼 할 수 있지만 오직 2명한테만 장미를 보낼 수 있다. 즉 장미를 받는 사람은 본인이 상대의 호감 ‘탑 2’에 든다는 걸 알게 된다. 연구결과 장미의 효과는 엄청났다. 같은 조건에서 장미를 주면 데이트 신청을 받아들이는 확률이 30% 높아진다.”
-구인 구직시장에서도 이런 효과를 기대할 수 있나?
“당연하다. 남녀 만남과 결혼, 구인 구직 모두 매칭 문제다. 예를 들어 지방에 있는 중소기업이 직원을 뽑는데 스펙이 좋은 서울 출신의 여성이 지원서를 냈다고 생각해 보자. 기업의 입장에서는 이 지원자가 그냥 지원서를 내본 것인지 정말로 기업에 관심이 있고 열정이 있는지 구별할 방법이 없다. 지원자 역시 이 회사에 정말 관심 있다고 증명할 방법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장미 실험을 적용해 보자. 가령 모든 구직자에게 일정 기간 2개 회사만 관심 기업으로 등록하게 해서 회사 측에 이를 알려주는 방법이 있다. 위의 예에서 여성 지원자가 중소기업을 관심 기업으로 등록하고 이를 그 회사가 알았다면 지원자의 진의를 믿고 고용할 수 있다.”
나는 처음에 이걸 보고 보낼 수 있는 장미 개수 2개가 너무 적게 느껴졌다. 그런데 나 대학 입학 원서를 넣을 때를 떠올려보자면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정시만 지원해서 쓸 수 있는 원서가 총 3장이었는데, 두 곳만 진짜 갈 생각이 있었고 나머지 한 장은 그냥 성적대 맞는 대학에 가고 싶었던 과 선택해서 넣었다. 관심이 없어서 추가합격 전화가 왔음에도 받지 못했을 정도였다.
연애 얘기도 나왔으니까 내 연애를 회고해 보자면, 나는 주변 친구들에 비해 연애경험도, 연애할 기회도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함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 사람은 고작 세명에 불과하다.
그러니까, 늘 진심은 4개 이상으로 쪼개지기 어려운 것 같다.
본론인 취업준비로 돌아와서. 취업준비생들도 붙으면 좋을 것 같은 기업들은 많지만 조건도 괜찮고 본인과 여러모로 잘 맞을 것 같아서 합격만 시켜준다면 정년까지 다닐 것 같은 회사는 소수일 것이다. 그럼 취업준비생 입장 말고 면접관, 인사팀 직원, 사장님, 회장님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한번 본인이 중소, 혹은 중견기업 사장님이 되어 신입사원을 뽑는다고 생각해 보자. 여기 두 명의 지원자가 있다. 한 명은 고학벌, 고스펙에 이쪽 계통을 전공하고 늘 전공분야에서 일하길 갈망해 온 티가 나며 호감형 인상까지 갖춘 지원자. 다른 한 명은 비 명문대, 평범한 수도권 4년제 혹은 국립 4년제 대학 졸업에 기본적인 스펙 (토익, 컴활, 학점)은 부족하지만 실무에 필요한 자격증이 몇 개가 있다. 또 자세히 보면 교양학점이 낮은 거지 전공학점은 꽤 높다. 심지어 전공과목을 초과해 들어서 교양학점으로 인정된 학점까지 있다.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이 기업은 대기업이 아니다. 1차 서류심사에서 한 명만 붙여서 면접을 봐야 한다면 누굴 뽑겠는가? 사실 경험이 부족한 사장님이라면 전자를 뽑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니, 지원자 스펙에 대한 본인만의 특별한 가치관이 있어도 전자를 뽑을 수 있다. 그러나 잘 교육해 놓은 사원 한 명이 퇴사선언을 하고 그 이후에 후임자를 구하고(그 사이 다소 뒤숭숭한 분위기와 애매함은 덤), 후임자를 구해서 다시 교육하고,업무 스타일이 완전히 같을 수 없으니 그 신입사원에게 기존 직원들 또한 적응하는 과정을 반복해서 겪는다면 '스펙 고고익선'은 머릿속에서 흐려질 것이다. 설령 고스펙 지원자가 자소서에 진심으로 이 회사를 원한다는 것을 강력어필해도, 회사의 문제점에 대해 아주 자세히 잘 아는 내부자의 입장에선 이런 고스펙 지원자가 우리 회사에 온다면 곧 이직 준비 할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사실 기업 사장님, 회장님까지 안 가고 알바 면접 꿀팁들만 찾아봐도 공고에 특별한 말이 쓰여 있지 않는 이상 오래 일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게 합격확률을 높인다고 한다. 실제로 면접을 보러 갔을 때도 사람 구하고 교육하는 게 너무 힘들다고 많이들 호소하신다.
그런데 이거, 대학에서도 벌어지는 일이다. 많은 학생들이 1학년 때 반수를 시도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대학들은 1학년 1학기에 휴학이 불가하며 일부 학교들은 1학년 한 해동안 휴학이 불가하다. 그래서 재수학원생들 사이에선 어떤 학교가 반수 하기 적당한지가 중요 이슈이다.
한양대는 이런 문제 (딱 반수를 막기 위해서라기 보단 학업성실도가 낮은 것)를 해결하기 위해 '파격실험'을 했었다.
http://www.veritas-a.com/news/articleView.html?idxno=77087
한양대 학생부종합전형엔 수능최저가 없다. 그래서 일반고 출신으로 학교 생활을 무지 열심히 했지만 수능 성적은 그만큼 좋지 못한 학생들, 동라인대 다른 대학들은 지원하기 어려운 학생들이 1 지망으로 많이 꼽는다.
위 기사를 보면 학종 학생들의 만족도와 학업성취도가 가장 높다. 동라인대 대학은 지원이 어려웠던 학생들이 많으니 반수 생각은 절대 하지 않고 입학한 것에 감사하며 열심히 다닌 다는 것이다. (물론 동라인대 다른 학교를 붙고도 한양대를 선택한 학생들도 많을 것이다. 또한 이미 기사에서 객관적으로 증명되었듯이 한양대 학종 출신 학생들이 부족하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대학이든 회사든 아님 연애든지 간에 늘 스펙도 좋고 인상도 호감형인 사람이 유리하나 그것의 전제는 '진심으로 원한다는 가정 하에.'이다. 나보다 훨씬 좋은 조건을 가졌어도 그 사람은 진심으로 원하지 않는데 그냥 한번 트라이를 해본 것이고 나는 진심으로 갈망한다면 그것 자체가 강력한 스펙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추가. 맥락에서 좀 벗어나지만 쓰다 보니 자기는 특출 난 점이 없다며 자신 없어했던 친구가 떠오른다.
출처:https://youtu.be/oO1nXasetSQ?si=OomPC_eMckqkmTK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