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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주하 Mar 22. 2024

타인은 외계행성이다

Intimate Strangers(완벽한 타인)

20240320 독서후 사유하기-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아이가 예쁘지 않고 울면 짜증이 난다.'

'뉴스 보는 데에 흥미가 없다. 세상 사에 관심 가져봤자 머리만 아프다.'

'요즘 누가 책을 읽냐. 시대가 변했다. 유튜브에서도 질 좋은 정보를 많이 습득할 수 있다.'

'나를 불행하게 만든 부모라도 자신을 태어나게 해 준 것에 대한 보답을 해야 한다.'

  

 위의 네 문장은 나의 '발작 버튼'이라고 할 수 있다.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 네 가지를 모아 둔 것이다. 이런 말을 들으면 뭐랄까, 조금 논쟁적으로 대화를 하게 된다. 나는 어린아이들을 사랑하고 뉴스 보는 것을 좋아하고 책 읽는 것을 좋아하고 나쁜 부모 밑에서 자랐지만 그들에게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나를 사랑한다. 그러나 나의 이런 특성들은 '옳은 것'일까. 타인에게 옮기면 좋은 특성들일까.


우리가 수십 년째 외계 생명체를 그토록 찾아 헤매는 것은 오로지 우주에 대한 궁금증, 자연을 이해하고자 하는 탐구심 때문이다. 우리는 관찰자일 뿐, 바깥 천체를 마음대로 주무를 권리는 없다. 생태계를 위해 어떤 잔인한 포식자 종을 절멸시키거나 가여운 피식자를 집중적으로 키워낼 권리가 우리 인류에게는 없는 것처럼. 스타트랙> 시리즈에서는 우주 곳곳의 문명이 서로 교류하며 행성 연방을 구성하는데, 연방의 규칙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연방에 가입하지 않은 다른 외계 문명에 어떠한 영향도 미 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천문학자들은 이 '프라임 디렉 티브' 규칙에 완전히 동의한다. 화성에 페스트가 창궐하여 웰스의 문어들이 줄줄이 쓰러진다고 해도 다른 문명이 끼어들어 항생제를 살포해서는 안 되며, 반대로 먼지바람에 돌 메이들만 굴러다니는 세계에 선인장을 심거나 베르베르의 여왕개미 '벨로키우 키우니'를 이주시켜서는 안 된다.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김영하 작가는 '작가는 소설 속에 뭘 알아내보라고 숨겨두지 않는다.'라고 했지만 나는 있다고 가정하고 윗 문단을 읽었다. 왜 페스트가 창궐하여 쓰러지는 걸 가만히 보고만 있으라고, 어떤 개입도 하지 말라고 했을까.


그때에는 이런 사실은 몰랐다. 그래서 딜런이 신이 나서 대학생활 계획을 세우면서 동시에 총기 난동과 자살 계획도 세웠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딜런이 원해서 참여한 게 아니라는 또 하나의 확실한 증거라고 생각했다.
 그 뒤 몇 달, 몇 해 동안 나는 아들에 대해 내가 몰랐던 사실들을 수도 없이 마주하게 되었다. 판도라의 상자가 바닥이 나지 않을 듯했다. 나는 남은 평생을 내가 알던 아이와 딜런이 한 행동을 하나로 합치는 일로 보내게 될 것이었다. 그날 밤이, 내가 알던 딜런의 모습 그대로를 내 마음속에 담고 있을 수 있는 마지막 밥이었다. 사랑스러운 아들, 동생, 친구의 모습으로.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이 책은 열 세명의 사망자와 스물네 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콜럼바인고등학교 총격사건의 가해자 딜런에 대한 이야기이다. 저자는 딜런의 친모로서 가해자의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 사건 직전까지를 돌이켜보며 '무엇을 놓쳤는지.' 분석한다. 우리가 쉽게 접하는 범죄자의 어린 시절(극심한 가난, 학교폭력, 아동학대 경험)과 달리 가해자 딜런은 너무나 평범한, 아니 오히려 남들보다 유복하고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저자 피셜이다. 후기들을 찾아보니 여러 번 '이걸 그냥 넘긴다고?' 했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딜런의 부모는 모범적이고 따스한 사람들이었다. 평판이 좋았던 덕에 사건 직 후 도움을 청할 만한 사람들이 많았고 흔쾌히 응한 사람들도 많았다.


오늘날 많은 매체에서 '부모가 모범을 보이면 자식도 자연스럽게 모범적으로 자라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딜런의 엄마는 그 스스로도 모범적인 삶을 살 뿐만 아니라 젊은 시절 아이 돌보는 일도 했었고 아동교육을 전문적으로 공부한 사람이었다. 아직 책을 다 읽진 않았지만 '무슨 문제가 있었을까' 하며 눈에 불을 켜고 보더라도 범죄와 직결될 만한 결정적 실수는 잘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딜런의 형, 같은 집에서 살았고 같은 부모에게 양육된 바이런은 아무 문제 없이 잘 자랐다. 왜 이토록 '좋은 부모'를 두고도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른 후 자살을 선택한 걸까.


나는 이 두 가지 물음에 대한 답을 '우리 모두는 고유한 함수이기 때문에.'로 정했다. 나는 a 값을 넣었을 때 b값이 나왔다고 해서 상대방도 똑같이 b값이 나오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는 것이다. 사실 같은 a 값을 넣은 게 맞는지부터 확신할 수 없다.


https://www.mk.co.kr/news/it/6660885


"문제의 원인은 우리의 뇌가 눈에 보이는 색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데 있다. 같은 색이라 하더라도 사람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이다."


"같은 개나리꽃을 보더라도 나와 상대의 뇌 속에는 서로 다른 신호가 오가는 셈이다."


 몇 년 전 인터넷을 불타오르게 했던 '흰금파검드레스' 이야기이다. 나는 '흰 금파'였다. 그 당시 금색 부분이 고급스러워서 예쁜 드레스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가격대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누군가 나에게 사고 싶냐고 물었으면 그렇다고 했을 것 같다.


 그러나 실제론 파검 드레스였다. 실물 컬러와 질감이 잘 드러난 색깔을 보자마자 '아 내 취향 아니네.'라고 생각했다. 내가 좋아하는 색감이 아니었고 몸을 좀 둔하게 보이게 하는 질감인 듯했다.

 누군가가 보면 두 사진에 나온 드레스가 같은 드레스로 보일 텐데 내 눈엔 매우 다른 드레스였다. (쉐입은 같으니 완전히 다른 드레스로 느껴지진 않았지만.)


그러니까, 화성에 페스트가 창궐하여 웰스의 문어들이 줄줄이 쓰러진다고 해서, 너무 안타깝다고 해서 항생제를 잔뜩 실어 보내준다고 해도 우리가 경험한 효용과 같은 효용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또한, 딜런의 엄마가 아이 돌보는 일을 하고 교육학을 전공했어도 그게 딜런에게 도움이 됐다고 확신할 수 없다. 딜런의 엄마가 공부한 것이 딜런 잘 기르는 법인 것도 아니다. 그런 건 존재할 수 없다.

 

 그동안의 나는 나라는 함수의 입력값과 상대라는 함수의 입력값이 같다고 가정했던 것 같다. 조금 더 친밀하거나 나와 꽤나 많은 부분을 공유했다면(예를 들어, 같은 학교를 졸업했거나 비슷한 성향과 고민을 가지는 것) 함수 자체도 같다고 착각했던 것 같다. 나와 상대방은 본질부터 그것을 둘러싼 환경 A-Z까지 완전히 다른, 완벽한 타인인데 말이다.

  

+그럼 같은 사람은 늘 변함없는 함수일까, 어떤 사람에게 a를 입력했을 때 b가 출력됐었는데 나중에 한 번 더 똑같은 a를 입력했다고 b가 나오리라 기대할 수 있느냔 말이다. 나는 갑자기 옛날에 본 영화 '첫 키스만 50번째'가 생각났다.

https://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nexearch&sm=tab_etc&mra=bkEw&pkid=68&os=1776129&qvt=0&query=%EC%B2%AB%20%ED%82%A4%EC%8A%A4%EB%A7%8C%2050%EB%B2%88%EC%A7%B8

첫 키스만 50번째 - 나무위키 (namu.wiki)

줄거리-헨리는 하와이에 살며 낮에는 동물원 사육사 일을, 밤엔 아름다운 관광객과 함께 보낸다. 그런 일상 가운데 식당에서 와플집을 만드는 루시에게 첫눈에 반한다. 루시도 헨리에게 호감을 갖는 듯했으나 그다음 날, 루시는 자신에게 말을 거는 헨리를 마치 처음 보는 듯이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한다. 사실 루시는 교통사고로 머리를 크게 다쳐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려, 자고 일어나면 전날의 기억을 잊고 항상 사고 당일인 10월 13일 일요일의 삶을 산다. 하루가 지나면 자신을 기억 못 하지만 헨리는 날마다 새롭게 그녀에게 다가갔고 늘 첫 만남인 것처럼 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영화를 보면 같은 사람에게 같은 방식으로 '플러팅'해도 성공하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한다.


최근에 같이 읽고 있는 책 '생각에관한생각'의 일부도 떠오른다. 공식적이고 중요한 결정도 식전이냐 식후냐 같은 아주 사소한것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생각과 선택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사소한 것에 좌우된다. 우리는 우리의 '메커니즘'도 알 수가 없는데 타인의 메커니즘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우리가 수십 년째 외계 생명체를 그토록 찾아 헤매는 것은 오로지 우주에 대한 궁금증, 자연을 이해하고자 하는 탐구심 때문이다. 우리는 관찰자일 뿐, 바깥 천체를 마음대로 주무를 권리는 없다.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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