뮌헨에서 독일 여행을 시작하다
"엄마, 여기 중앙역인가 봐! 사람들 다 내려!"
"그래? 얼른 내리자!"
푹푹 찌는 7월 말, 13시간 비행의 피로를 갑옷처럼 두른 채 뮌헨 공항에 내렸다. S-bahn 1호선에 몸을 싣자 창밖으로 낯선 녹색 풍경이 스쳐 갔다. 사춘기 소녀답게 이어폰을 꽂은 채 핸드폰만 들여다보던 딸은 이내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나와 세상 가장 친한 껌딱지지만, 피곤함 앞엔 장사 없는 법이니까.
중앙역 바로 코앞에 예약해 둔 호텔은 그야말로 이번 여행 최고의 선택이었다. 거대한 캐리어를 낑낑대며 5분쯤 걸었을까, 푹신한 침대가 우리를 반겼다. 씻고 나와 저녁이라도 먹을까 했지만, 딸은 침대 위로 풀썩 쓰러지며 "엄마, 나 딱 5분만..." 하더니 그대로 딥슬립 모드로 전환했다. 나 역시 쏟아지는 잠을 이기지 못하고, 저녁도 못 먹은(!) '장렬한 전사'처럼 침대에 푹 쓰러지고 말았다.
"으음... 지금 몇 시야... 왜 이렇게 깜깜해..."
내 옆에서 부스스 일어난 딸이 눈을 비볐다. 시계를 보니 이제 막 새벽 3시. 지독한 시차 덕분에 원치 않는 '미라클 모닝'을 하게 된 것이다. 아니, 미라클 새벽인가. 배가 고팠던 우리는 비상식량으로 챙겨온 누룽지를 전기포트에 끓이고, 야무지게 참치 캔까지 하나 곁들였다. 아이는 옆에서 최고로 맛있다면서 깔깔댔다.
할 일이 없었던 우리는 일단 오늘 다닐 곳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유튜브를 보면서 호텔 조식당이 문 열기만을 애타게 기다렸다. 우리는 (당연하게도!) 호텔 조식당의 첫 손님이 되어 갓 구운 브뢰첸(독일식 롤빵)에 버터와 햄, 치즈를 양껏 끼워 넣었다. "엄마, 이 빵 미쳤다. 겉은 와그작한데 속은 깃털 같아."라며 볼이 터져라 오물거리는 딸의 모습에 웃음이 절로 났다.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호텔을 나선 시간은 아침 7시. 아직 인적이 드문 거리를 우리가 전세 낸 듯 신나게 걸었다. 카를 광장의 거대한 성문을 지나 텅 빈 쇼핑 거리를 걷고, 트램을 타고 피나코테켄 미술관 지구의 멋진 건물들을 배경으로 "인생샷"을 백만 장쯤 찍었다. 오데온 광장과 레지덴츠 궁전의 웅장함에 감탄하고, 드디어 뮌헨의 심장 마리엔 광장에 도착했을 땐 이미 정오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배고프지? 시장 가서 맛있는 거 먹자!"
우리는 곧장 빅투알리엔 시장으로 향했다. 온갖 소시지와 치즈, 과일 냄새가 뒤섞여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우리는 '레버케제 젬멜'이라는, 따끈한 햄을 빵에 끼운 바이에른식 샌드위치를 하나씩 사서 맥주 가든에 자리를 잡았다.
"오? 이거 뭐야? 스팸보다 백배는 고급진 맛인데? 엄마, 이거 완전 내 스타일이야!"
"그치? 엄마는 시원한 라들러(맥주+레모네이드) 한 잔, 너는 아펠쇼를레!"
왁자지껄한 사람들 틈에 앉아 뮌헨의 진짜 점심을 즐겼다. 오후에는 BMW 박물관으로 직행했다. 다리도 아픈데 자동차 박물관은 왜 가냐며 툴툴대던 딸은 미래에서 온 듯한 자동차와 오토바이 앞에서 눈을 반짝이며 방전되었던 에너지를 150% 충전했다.
에너지를 다 쓴 우리는 비틀거리며 저녁을 먹으러 호텔 근처의 오래된 식당으로 향했다. 나무로 된 인테리어와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딱 독일스러웠다. 곧이어 우리 앞에 나타난 건 만화에나 나올 법한 비주얼의 슈바인스학세(독일식 족발)였다.
"우와, 엄마! 이거 겉은 과자 같아! ASMR 각인데?"
딸은 포크로 껍질을 톡톡 두드리며 신이 났다. 바삭한 껍질과 촉촉한 속살을 한입 베어 물더니 엄지를 척 치켜세웠다. 우리는 오늘 하루의 고단함이 모두 용서되는 맛에 감탄하며 접시를 깨끗이 비웠다.
그리고, 호텔 침대 위
배를 두드리며 호텔로 돌아온 우리는 그대로 침대 위로 다이빙했다.
"아이고, 엄마... 내 발바닥에서 심장이 뛰어..."
끙끙 앓는 딸의 발바닥에 한국에서 챙겨온 비장의 무기, 휴족시간을 착 붙여주었다. 시원한 기운이 퍼지자 딸의 얼굴에 그제야 화색이 돌았다. 지친 몸을 뉘인 딸이 천장을 보며 중얼거렸다.
"엄마, 내일 슈투트가르트 가면... 포르쉐 박물관이 있다는 거지?"
이 녀석, 포르쉐가 멋진 건 알아가지고. 사실 우리가 슈투트가르트에 가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는데 말이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