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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지현 Jan 01. 2024

오늘의 치앙마이를 있게 한 것들

도이푸이, 도이수텝, 화폐박물관

모처럼 멀리(?) 치앙마이에서 유명하다는 산 '도이수텝'과 '도이푸이' 그리고 '사원'을 방문하기로 했다.

도이수텝은 산 이름(태국어로 '도이'는 산, 수텝은 이름, 하여 수텝 산)이다.

도이수텝 산은 해발 1,676m로 화강암 산의 쌍둥이 봉우리 중 하나이며 또 다른 봉우리는 Doi Pui(도이푸이)인데 1,685m로 약간 더 높다고 한다.

도이수텝에는 치앙마이 현지인들도 많이 찾는 이름난 사원이 있고 조금 깊숙히 들어가면 소수민족의 하나인 몽족이 사는 마을, 도이푸이도 근처에 있다.



우리는 그랩을 이용해 이동하기로 했는데 도착하는데 예상보다 시간이 꽤 걸렸다. 아니, 시간보다 도이수텝까지 도달하는 과정이 만만치 않았다.

산으로 들어가는 오르막길에 구불구불한 산길을 쉬지 않고 택시로 오르니 심지어는 멀미도 난다.

편안한 택시를 타고 가는데도 이런데 썽태우를 타고 갔더라면 중간에 내려야만 했을 것 같다.

도이수텝까지 가는 길은 포장이 되어 있긴 했지만 산이라 경사도 심하고 굴곡도 매우 심해 가는 길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도이수텝에서 조금 더 깊이 들어가 산속의 작은 몽족 마을인 도이푸이( Doi Pui)를 먼저 방문하기로 했기 때문에 더 들어가야 했다.

우리를 태웠던 택시는 '도이수텝'에 내려주더니 '도이푸이'로 가려면 썽태우로 다시 바꿔 타야 한다고 한다.

택시로는 이동이 불가능한가 보다.

우리는 빨간색 썽태우로 옮겨 타고 약 20분 정도 더 깊은 산속 굽은 길로 한참이나 들어가야 했는데 길이 좁고 험하다.

.


산악 부족 공동체인 '몽족(Hmong)'이 살고 있는 '도이푸이',

라오스에 머물던 많은 몽족들이 라오스 정권에 맞서 저항하다 실패하자 태국으로 망명을 신청했고 이런 이유로 태국 북부에 많은 몽족들이 살고 있는데 그중 한 곳이 '도이푸이(Doi Pui)'이다.

우리가 도착한 시간이 아직은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관광객도 없고 아주 조용하다.

이곳 마을 입구와 좁은 골목엔 기념품들과 음식을 파는 가게들이 들어서있는데 이제야 문을 여는 가게들도 있다.

주로 라탄으로 만들어진 가방들, 직접 손으로 짠 뜨게 용품들, 몽족이 입는 화려한 전통복을 전시해 놓고 팔고 있고 갓 구운 아몬드와 와인도 판다.

첩첩산중에 위치한 이들의 삶은 왠지 궁핍해 보인다.

도이푸이 골목 상점들


골목길을 걸어 올라가니 색색의 꽃들이 곳곳에 피어있고 잘 가꾸어진 정원이 나온다.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다양한 색들로 무리 지어 피어있다.

순간 마치 딴 세계에 온 듯한 느낌이 든다. 신선이 살고 있는 세상이랄까?

구름이 걸쳐있는 이곳에 아름답게 가꾸어진 식물들이 사방에 펼쳐져 있으니 마치 신선세계에 와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조금 걸어 아래로 내려가니 Doi Pui Waterfall Garden 이 나온다.

폭포라는 말에 우렁찬 물줄기를 기대했는데 막상 도착해 보니 절벽 바위를 따라 졸졸 흐르는, 물의 양이 적은 폭포(?)다.


이 마을엔 박물관도 있다.

박물관이라고는 했지만 생각지 못한 건물이다.

콘크리트로 지어진 번듯한 박물관이 아닌 짚으로 만든 작은 공간에 그들이 사용하던 농기구들과 놀이 용품등이 전시되어 있고 그들의 삶이 담긴 오래된 사진들도 걸려있어 잠시나마 그들의 역사와 문화도 엿볼 수 있었다.

화살을 쏘아 건너편 나무에 걸려있는 과녁에 맞히는 놀이기구가 있어 남편과 아들이 시도를 해보는데 제법  잘 쏜다.

'전생이 몽족이었나? ㅎㅎㅎ'

몽족도 화살을 잘 쏘는 부족인가 보다.  


도이 푸이 방문을 마치고 다시 썽태우를 타고 도이 수텝으로 내려오는 길...

조금은 마음이 씁쓸하다.

마을 안쪽까지 트럭과 자동차들이 많이 들어와 좁은 골목을 차지하고 있기도 했고 주민들 역시 현대의 생활에 맞추어 생활하다 보니 그들에게서 그들만의 독특한 삶을 엿보기에는 무리였다.

빈약한(?) 폭포를 보는 곳마저도 돈을 지불해야 했고 내용이 충실하지 못했던 박물관으로 들어가는 곳마저 돈을 내야 했다.

마을 주민 대부분이 생업으로 가게를 해야 하다 보니 이해는 가지만 점점 그들의 전통을 보존하기보다는 이 깊숙한 산속마저 상업화되고 관광지로 변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안타깝기도 했다.

신비함마저 느껴지는 이 아름다운 마을이 오래도록 그들의 전통과 문화가 유지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도이수텝 사원에 도착했다.

사원은 치앙마이 시내에서 15km 떨어져 있고, 해발 높이는 1,073m이다.

태국 북부 치앙마이에 있는 도이수텝 사원은 소승불교(Theravada) 사원인데 1383년 케우 나오네 왕이 부처의 사리를 안치하기 위해 세운 사원으로, 태국 북부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원으로 손꼽는다고 한다.


도이수텝 사원의 입구에는 나가(Naga)라고 하는 용처럼 보이는 상들이 입을 벌리고 입구를 지키고 있는데 계단 모양 역시 용의 모습처럼 굴곡져있다.

울창한 나무와 함께 어우러진 이 계단이 아름답기조차 하다.

그런데 사원에 오르는 계단수는 약 300여 개쯤 된다. 아래에서 올려다보니 까마득하다.

하지만 이것쯤이야 하고 올라가 보지만 결국 중간즈음에서 쉬어야 했다.


사원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신발을 벗어 둔 채 맨발로 경내를 구경하고 있다.

관광객들은 물론 현지인들도 많이 보이는데 사찰 경내에서 신사에 경의를 표하고,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한다.

부처님의 탄생을 기념하기 위해 산에 오르고 사원 산책길에서 잠을 자는 '비사카 부차(Visakha Bucha)' 날에는 그 수가 더 많다고 한다.

이들 방문객들 대부분은 태국, 싱가포르, 중국, 인도에서 많이 오는데 유적지에 경의를 표하고 주변 명소도 탐방하기 때문에 스스로를 "순례자"라고 부른다고도 한다.


우리도 신발을 벗어 놓고 여기저기 구경하는데 이곳이 황금빛 사원으로 유명하다더니 과연 치앙마이의 대표 사원답게 화려한 탑과 불상들이 많다.

이렇게 많은 탑과 불상에 금색을 칠해놓은 이유는 무얼까?

금이 상징하는 신성함과 강력함을 보여주기 위함일까?

하긴 이집트에선 금색을 '태양의 분비물'이라고 했고 심지어 과거에는 금색은 왕과 귀족들 외에는 사용할 수 없었던 시대도 있었다.

파란 하늘에 우뚝 선 화려한 탑이 오늘따라 내 시선을 압도한다.

사원 뒤쪽으로 돌아가니 치앙마이의 전경을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도 있다.

다행히 요즘은 미세먼지가 없어 멀리 아래까지 치앙마이의 멋진 풍경이 보인다.

많은 나무들이 사이에 간간히 숨겨져 있는 마을들과 건물들이 빼곡히 모여져 있는 곳들까지 모두 보인다.

사원 방문을 마치고 치앙마이 시내로 내려오는 길...

한 때는 이곳을 오고 가는 불편함을 이유로 케이블카를 설치하려고 했다고 한다.

정부와 주민들 간의 오랜 논쟁 끝에 결국 사원의 신성성을 해친다는 주민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져 케이블카의 설치는 무산되었다고 한다.

종교적인 목적을 위해 편리성과 경제성을 포기한 이들이 갑자기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과연 우리나라가 이런 상황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종교의 신성함을 위해 불편함을 포기했을까?, 아니면 편리함과 이익을  위해 케이블카를 설치했을까?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치앙마이 올드타운에 있는 화폐박물관(The Treasury Museum Chiang Mai)을 방문했다.

올드타운 한가운데  커다란 건물로 자리 잡고 있지만 관람객은 우리 가족뿐이었다.

신발을 벗어 둔 채 안으로 들어간 우리는 제법 잘 알차게 조성된 화려한 내부를 만났다.

박물관 내부

게다가 많은 직원들이 공손히 우리를 맞는다.

마치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직원 한 분이 우리를 담당하여 안내를 한다.

란나왕국의 역사와 치앙마이 화폐의 변천사 그리고 과거 그들의 문화와 삶 등을 알 수 있도록 다양한 전시물들이 제공되고 있었다.

왕의 통치기간에 따라 화폐가 다양하게 변한 걸 알 수도 있었는데 그때마다 바뀌는 화폐로 일반인들의 화폐 사용에 많은 혼란이 있었을 것 같기도 하다.

이 박물관에는 시대에 따른 다양한 화폐의 변천을 알 수 있었음은 물론 란나 시대부터 전해져 오는 치앙마이 원주민 전통 복장과 변천 그리고 그들이 착용했던 다양한 장신구들과 부적들도 전시되고 있었다.

문신을 몸에 가득 새긴 란나 원주민이 보였는데 치앙마이에서는 몸에 문신(부적 talisman)을 하는 전통이 있었다고 한다.

그들의 몸에 새기는 문신은 결혼 상대를 선택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그들의 전통이라고도 했다.

남성들은 천사, 사자 등 다양한 그림으로 다리에 문신을 하기 시작했는데 이 전통은 남자의 힘과 끈기를 상징했으며 남자의 몸에 문신이 없으면 다리가 여자처럼 하얗다고 여겼단다.

치앙마이 번화가를 돌아다니다 보면 유독 타투 가게들이 많았는데 이제야 조금 이해가 된다.

란나 문화가 다양한 부적과 미신적인 물건을 자랑하는 이유는 불교가 이 지역에 전해지기 전, 란나 사람들이 자연의 영혼을 존경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불교가 전해지자 신[神]이나 영혼을 존경하는 사람들을 이교도로 여겼다고 한다.


요즘 우리에게 '부적'이란 의미는 모든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상징물은 아닌 것 같다.

부적은 미신이 사람들의 삶을 지배했던 과거의 대표적인 상징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말도 안 되는 이야기나 교육받지 못한 미신적인 과거에 속한 환상으로 여기기도 한다.

하지만 부적은 그 이상으로 우리의 과거의 삶의 증거이며 일부에게는 현재에도 때때로 신념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 또한 부적은 편안함을 제공하고 신뢰와 믿음을 주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믿고 있으며  어느 순간엔가 이런 부적들이 마음에 위로가 될 수도 있다고 믿고 있다.

갑자기 영화 '아바타(Avatar)'가 생각이 난다.

나비족의 신앙이자 생명의 근원이라고 여기며 교감하는 거대한 나무, 그들은 '생명의 나무'라고 불리는 영적인 나무가 그들에겐 삶의 의미로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무와 자연에 대한 강한 믿음을 갖고 있는 나비족들과 현대인들의 이기적인 욕심에 그들이 의지하는 정신적 존재를 파괴하면서 겪는 갈등...

결국 우리에게 다양성과 서로에 대한 이해를 전달해 주는 영화였다.

현대를 살고 있는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에게는 영적인 위로가 필요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말이다.

박물관 방문을 통해 치앙마이의 오래된 역사와 그들의 문화에 대해 알게 되니 치앙마이가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오늘 우리는 치앙마이의 속살을 경험하며 알 찬 하루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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