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미유 생상 <동물의 사육제>
카니발
이곳은 유럽의 카니발이 열리는 한 거리예요. 사람들은 한껏 들뜬 기분으로 퍼레이드가 시작되길 기다리고 있어요. 그런데 관객들의 눈이 휘둥그레 집니다. 올해 퍼레이드의 주인공은 바로 동물들! 동물들은 가장 큰 환호성을 받으며 차례차례 모습을 드러냅니다. 어떤 동물들이 출연했을까요? 그 자태와 걸음걸이는 어떠했을까요? 이것을 음악으로 묘사한 음악이 있다면 아이들은 얼마나 궁금하고 신나 할까요?
프랑스 작곡가 생상은 카니발(=사육제) 기간에 연주될 음악의 작곡 의뢰를 받게 됩니다. 카니발은 가톨릭 문화권에 속하는 지역에서 사순절이 시작되기 전 며칠간 열리는 축제를 말해요. 사순절 기간 금식과 절제를 해야 하니 그전에 맘껏 놀고 즐기는 카니발이 생겨난 것이죠. 생상은 고민하던 중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라요.
“그래! 동물들이 퍼레이드에 등장하는 음악을 만드는 거야!”
까미유 생상 (1835~1921)
까미유 생상. 대중들에겐 다소 생소한 음악가입니다. 김연아 선 수의 피겨 작품 중 특히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죽음의 무도’(2009년 세계 선수권 대회)가 그의 곡이라고 한다면 조금은 친숙하게 느껴지실까요?
그는 만 두 살의 나이로 작곡을 시작하여 어릴 적부터 프랑스의 모차르트라 불렸던 대단한 신동이었습니다. 당대 최고의 슈퍼 스타였던 리스트와 견줄만한 피아니스트였고요. 드뷔시는 그를 두고 '세계에서 음악에 대해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다' 라고 경탄했지요. 그만큼 동시대 음악가들에게 많은 추앙을 받던 그인데 지금의 인지도를 생각하면 조금 억울할 법도 합니다. 게다가 그는 걸출한 화가였으며 시와 희곡을 썼고, 심리학, 식물학, 지질학까지 학자 수준의 방대한 지식을 갖춘 진정한 천재였어요.
저는 그를 이렇게 소개하고 싶습니다. ‘3B(바흐, 베토벤, 바그너)로 일컬어지는 클래식의 종주국 독일과 오페라의 나라 이탈리아 사이에서 문화강국 프랑스의 자존심을 지켜낸 첫 번째 클래식 작곡가’ 라고요. 이전엔 이렇다 한 음악가를 배출해내지 못했던 프랑스이지만 생상 이후로 포레, 라벨, 드뷔시로 이어지는 클래식 계보의 시작점에 있는 그인 것이죠. 무엇보다도 <둥물의 사육제>라는 아이들을 위한 클래식 선물과 같은 유산을 남겨주었으니 이제 우리가 그를 기억해야 할 이유는 충분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요, 정작 그는 가벼이 유희하고 싶은 마음으로 작곡한 <동물의 사육제>를 대중 앞에 드러내길 원치 않았어요. 그는 진지하고 무게감 있는 작곡가로 여겨지길 바랬습니다. 더욱이 동료 작곡가의 멜로디를 인용하며 아무래도 마음이 편치 않았던 것 같아요. 그는 조심스러워집니다.
결국 이 모음곡은 생상 사후에야 전곡이 출판됩니다. 그러나 이제 ‘생상’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대표곡이 되었으니, 생상이 이 사실을 알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요? 기뻐할까요? 당혹스러워할까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난감해하는 생상의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납니다.
제게는 카니발에 관한 즐거운 추억이 있습니다. 학창 시절 한 연예 프로그램에서 당시 최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한 여배우가 프랑스의 니스 카니발에 꽃의 여신으로 참가한 장면을 보게 되었어요.
“아! 나도 그곳에 가고 싶다. 저 즐겁고 화려한 축제의 현장에 있고 싶다! ”
그리고 마치 꿈처럼, 대학 졸업을 앞두고 단짝 친구와 꼭 그곳에 있게 되죠. 하지만 당시에는 카니발의 의미를 몰랐답니다. 그저 그곳에 와있다는 사실에 감격해하며 축제를 만끽하고 돌아왔지요. 후에 아이들과 예술 수업을 진행하며 다시 이 작품을 새로이 만나게 되었으니 얼마나 반갑고 뜻깊었을까요? 이 각별한 음악을 어떻게 전해야 할까 고민이 시작되었어요.
각기 다른 개성과 아름다움을 지닌 악보
총 14개의 모음곡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에는 사자, 거북이, 수탉과 암탉, 코끼리, 캥거루, 커다란 새장, 백조, 당나귀 등의 동물이 등장합니다. 문득, ‘동물들의 특징을 담아 작곡된 음악인만큼 악보도 저마다 다른 생김새와 개성을 지니고 있지는 않을까?’ 궁금증이 일었어요. 서둘러 악보를 찾아보았어요. 과연 각각의 질서와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악보예요. 마치 하나의 그림처럼 말이죠. 호기심을 갖고서 악보를 바라보세요. 각 악보마다의 특징을 찾아보아요.
학생:
“개미가 줄지어 가고 있는 것 같아요"
“무언가를 꼬집고 있는 것 같아요”
“전깃줄에 참새가 앉아 있는 것 같아요”
꿈샘:
악센트예요^^ 그 음을 특히 세게 연주하는 거지요. 이 부분은 곡에서 제일 처음 퍼레이드의 시작을 알리는 팡파르랍니다. 곧 모든 악기들이 일제히 같은 멜로디를 연주하는 유니즌이 나와요. 이때 첫 퍼레이드의 주인공이 등장한답니다. 어떤 동물일까요? 힌트를 줄게요. 유니즌으로 연주되는 선율의 느낌에 귀 기울여 보세요.
학생:
“계속 똑같아요. 규칙적인 악보예요”
꿈샘:
잘 찾아내었어요~ 빨간 네모 박스 안의 쿵 짝짝 대표적인 왈츠 리듬이 끝까지 반복되고 있어요. 잠시 후 더블 베이스의 멜로디가 등장하네요. 더블 베이스는 가장 크고 무거운 악기예요. 왈츠에 맞춰 춤을 추며 등장하는 이 동물은 누구일까요? 잠시 후 음악으로 확인해 보아요.
어린이
"프라이팬에서 기름에 튀는 콩들 같아요!"
"요요하는 아이들 같아요"
꿈샘:
우와! 정말 멋진 상상이에요!
스타카토로 올라갔다 내려오네요.
어떤 동물일지, 어떤 음악일지 가장 궁금한 악보예요.
어린이
"구슬이 또르륵 굴러가요"
"오르락내리락 롤러코스터 같아요."
"기다란 기차 같아요"
꿈샘:
생상은 피아노는 수면 아래서 바삐 헤엄치는 백조의 발을, 첼로 선율은 수면 위의 우아한 백조의 모습을 악보에 담았어요. 생전에 출판을 허락한 유일한 곡이 바로 ‘백조’ 였던 것을 생각하면 이 곡만큼은 자신의 명성에 걸맞은 곡이라 여겼던 것 같아요. 어떤 기품 있는 음악이 흘러나올지 기대해 보아요.
이제 음악을 들으며 악보와 동물을 매칭해 보아요. 아이들은 그 어느 때 보다도 음악을 유심히 듣습니다.
동물의 사육제 중 <사자>
동물의 사육제 중 <코끼리>
비로소 처음 동물을 묘사한 음악을 듣게 된 아이들은 탄성을 지릅니다.
“사자가 으스대며 으르렁 거리는 것 같아요!”
"코끼리가 뒤뚱거리며 춤을 추고 있어요! “
“작은 새들이 사람들 머리 위로 파드득 날아다녀요~~~"
나는 악보 아티스트
음악에서 받은 영감을 악보에 그림으로 담아냅니다. 그림이 더해진 악보는 다시 내게 말을 걸어오지요. 아이는 이제 악보 아티스트입니다.
평화로운 오후, 풀이 무성하게 자란 호수에서 백조 3마리가 헤엄치고 있어요. 따스한 햇빛이 내리쬐고 희미한 새들의 지저귐이 들려와요. (5학년 노단희)
엄마와 아기 코끼리가 신나게 진흙놀이를 해요.
철퍼덕철퍼덕
서로의 눈을 마주치며 웃는 코끼리 가족
(김한나 꿈샘)
오케스트라, 합창, 성가곡, 크고 작은 규모의 앙상블까지 대부분의 장르를 섭렵했지만, 오늘날 동물의 사육제로 기억되는 생상. 조금은 서운하고 당혹스러울 그의 손을 꼭 잡고 이렇게 얘기해 주고 싶어요.
어느 부모나 내 아이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은 마음은 똑같을 거예요.
어린아이들에게 이처럼 쉽고 즐겁게,
음악적 영감이 충만한 멋진 곡을 만들어주어 정말 고맙습니다.
동물의 사육제는 영원할 우리 모두의 클래식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