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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교선 May 20. 2021

남미 여행 일지 14. 신의 거울, 우유니 소금사막 1

20대 중반 남자네 명의남미 배낭 여행기

 아침해와 함께, 우유니로

 

 새벽같이 일어났다. 졸린 눈을 비비며 새벽에 일어나는 게 이제는 익숙해질 때도 되었지만, 역시 새벽에 눈뜨는 것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호텔 앞까지 온 택시에 올라 엘 알토 공항으로 향했다. 우유니로 가는 비행기가 아침 시간대라 위장에 음식을 넣을 새도 없이 공항으로 갔다. 라파즈에서 우유니는 버스를 탈까 했지만, 역시 시간도 오래 걸리고 5시간 이상 버스 타는 게 쉬울 것 같지는 않아서 비행기를 택했다. 다소 비싸지만, 편하고 빠르게 가는 게 여행 전 에너지를 아껴줄 것이다. 


새벽과 아침 사이, 비행기에 타기 전


새벽 공항은 조용했다. 고요한 적막을 안에서, 우리는 식당으로 향했다. 새벽녘의 공항은 아직도 잠든 듯했고, 아직 활기를 찾기 전이었다. 식당들은 고요했고, 우리는 열린 곳 중에서 선택해야만 했다. 우리 눈에 들어온 것은 작은 뷔페식당이었다. 손님은 한 테이블밖에 없었다. 유럽식 아침식사를 뷔페처럼 해둔 곳이다. 각종 빵과 주스 그리고 과일들이 있었고, 우리 배를 채우기에는 충분했다. 라파즈 공항은 생각보다 시설도 좋고 잘 되어있었다. 낙후된 도시 풍경과는 확실히 딴판이었다. 어제 입국했을 때는 보지 못했던 기념품 가게나 식당들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이미 배도 채워서 식당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기념품 역시 아직은 들고 다닐 여력이 없어서 그냥 지나쳤다. 이윽고 탑승을 알리는 방송이 귓가에 들렸고, 우리는 우유니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러 갔다. 비행기에 오를 무렵에는 해가 완전히 떠있었고, 햇살 아래 비행기를 탄 우리를 쏜살같이 우유니에 데려다주었다. 눈 깜빡하니, 우유니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


도착하고 보니 날이 너무나도 좋았다. 비행기에서 공항까지 게이트가 연결되어 있지 않아서, 걸어가야 했는데 내리자마자 파란 하늘이 우릴 반겼다. 공항 특유의 탁 트인 활주로 위로 새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이 흐른다. 마치 물감으로 칠한 듯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그런 날이다. 우유니 공항은 관광도시 우유니의 명성에 비해 상당히 작고 허름하다. 부대시설을 찾아보기 힘들고, 화장실도 간이 화장실을 쓰는 것만 같다. 짐을 내려주는 컨베이어 벨트 없이 그냥 사람들이 실어 날랐고, 쌓인 가방 안에서 우리 짐을 찾아내야 했다. 아직 호텔 체크인 시간이 되지 않아서 투어 예약을 위해 여행사로 바로 향했다.


마을에 자리잡은 놀이터


 사막에 지어진 도시답다. 우유니는 마치 어느 서부영화나 아랍을 배경으로 한 마을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다소 황량했고, 모래색 외벽의 낮은 건물들이 그러한 분위기를 더욱 돋게 했다. 여행사 앞은 으레 그렇듯 많은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중앙 광장 옆이 바로 투어사들이 몰린 탓도 있다. 투어를 기다리는 사람과 예약하려는 사람, 광장에 가려는 사람들도 북적인다. 늘어선 여행사들 중에서 우리가 고른 곳은 유난히 한국어 후기가 많이 붙어있는 집이다. 창문에는 색지에 익숙하고 반가운 한글로 각종 후기들이 붙어 있었다. 이곳이 한국인 단골 여행사인가 보다. 옆 여행사는 또 일본어로만 적힌 후기가 한가득이었다. 한국인이나 일본인이나 블로그, 인스타그램 후기를 보고는 한 곳으로만 몰리는 모양이다.


 우리의 원래 계획은 이렇다. 오늘은 우유니 시내 좀 쉬엄쉬엄 구경하고, 저녁때 즈음 별이 쏟아진다는 우유니의 밤 투어를 갔다가, 내일은 낮 투어를 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날이 너무나도 좋았다. 이렇게 좋은 날씨는 분명 바로 낮 투어를 하라는 우유니 토착신의 계시가 틀림없다. 그렇게 우리는 즉석에서 날씨를 놓치지 않고 낮 투어를 바로 하기로 결정했다. 쇠뿔도 단김에 뽑으랬다고 바로 오늘 낮부터 노을까지 보고 오는 데이투어와 다음날 새벽에 가서 별을 보고 일출까지 보고 오는 밤 투어를 예약했다. 데이투어와 스타라이트 투어, 우리의 몸을 혹사시킬 그리고 다시없을 절경을 가져다 줄 투어의 첫 단추였다. 우유니에 왔으니 뽕을 뽑고 가자, 이런 마음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연속으로 두 개 투어의 예약을 마치며 예약금을 지불했다.



호텔 해프닝


 여행사에서 가까운 호텔을 잡아두어, 걸어서 5분 정도면 갈 수 있었다. 날이 좋아 가는 길의 우유니 시내가 선명했다. 또 그만큼 덥기도 했다. 역시 사막 마을은 사막 마을이다. 고산이라도 사막은 더운가 보다. 호텔에 와서 생각을 해보니 투어를 연속으로 하게 되면 아무래도 다음날은 푹 쉬어야 할 것 같아 호텔을 하루 더 연장했다. 원래는 새벽투어를 하고 나서 호텔에서 쉬지 않고 돌아다닐 생각이었으나 체력 안배를 위한 선택이었다. 그렇게 해결은 되었는데, 다른 문제가 생겼다. 분명 4인실을 예약했는데, 침대가 3개밖에 없다는 것이다. 어이가 없네? 예약사항에 분명 4인으로 예약을 했고, 눈 앞에 보여주기까지 했다. 그런데 막무가내로 침대 4개짜리는 없다는 것이다. 


 여행지에서 관광객은 을이 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시간도 부족하고, 현지어도 부족하다. 아무리 영어로 소통해도 막무가내로 없다고 하는 걸 계속 따지기도 힘든 노릇이다. 돈도, 시간도 없으니 결국 침대 3개 방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다른 호텔을 이제 와서 잡기도 힘들고, 또 환불을 하면 카드 금액이 들어올 때까지 예산 공백이 생겨버린다. 적당히 타협을 하고, 다음 여행을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 계속 물고 늘어지다간 전체 여행의 일정도, 기분도 모두 상할 수 있다. 우리는 그냥 해프닝 정도로 치고, 다음 방법을 찾기로 했다.  결국 싱글 침대에서 한 명이 홀로 자고, 싱글 두 개를 붙여 세 명이서 자기로 했다. 승부는 가위바위보 단판승. 편안한 숙면을 건 치열한 가위바위보가 시작되었다. 하늘도 내 노고를 아는가. 나의 승리로 끝났고, 행복했다.


 투어 준비를 위해 더러워져도 되는 바지로 갈아입었다. 사진으로만 봤던 촉촉한 사막을 뛰놀려면 아무 옷이 필요할 테니. 그리고 사진을 위해서 페루에서 구매한 알파카 목도리도 챙겨서 갔다. 선크림도 바르고, 여분 재킷도 챙기고 드디어 투어를 위해 호텔 문을 나섰다. 여행사 앞에서 출발한다 하여 그 앞으로 향했다.



투어 시작! 그전에 실랑이 구경부터 보고 가시죠


 그런데 우리가 예약한 곳에서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었다. 한국어가 들리는 것을 보니 한국인 손님과 주인인 모양이다. 한국어가 귀에 쏙쏙 박혀서 본의 아니게 엿듣게 되었는데, 내용인즉슨 가이드가 변경되었다는 것이다. 가이드가 변경되는 바람에 손님은 화를 내며 원래 가이드를 요구하고 있었다. 손님은 짜증을 내며 왜 가이드가 바뀌었냐며 항의했고, 주인은 스페인어로 무언가를 열심히 말을 하고 있었다. 합의점 없는 평행선 같은 대화였다. 결국 손님은 다른 한국인들에게 여기서 예약하지 말라고 소리치며 환불해갔다. 


 가이드가 뭐가 그리 중요한가 싶었는데, 블로그나 SNS 후기를 보면 사진을 유난히 잘 찍어주는 유명한 가이드가 있다고 한다. 여행사 창문에 붙어있던 후기들에서도 자주 보던 바로 그 이름이다. 그래서 그런지 특정 가이드를 선택하러 오는 손님들이 많은 모양이다. 우리는 딱히 특정 가이드를 선호한고 온 것이 아니라서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한 번뿐인 여행이고, 우유니는 특히 오기 힘든 곳일뿐더러 예쁜 사진을 남기기 위해 오는 관광객들도 많아서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었다. 분명 주인도 그런 점을 알고 있을 테고 말도 없이 가이드를 바꾼 여행사도 분명 잘못이다. 사정이 있다면 말을 하고, 위약금을 주어야 했다. 


 손님의 여행 목적 역시 생각해본다면, 환불까지 하고 다른 여행사를 알아볼 정도로 화가 나는 일이었는지 생각해볼 일이기도 하다. 후기를 보면 다른 가이드 역시 정말 좋았다는 글이 많던데 유독 그 가이드만을 고집하고 투어를 취소할 만큼 가이드가 중요한 사안이었을까. 다시 또 다른 여행사에서 투어를 알아보고, 시간에 맞춰 예약하는 것은 일정에 무리를 줄 수도 있다. 무엇이 그 손님으로 하여금 그렇게 집착하게 만들었던 것일까. 여행지에서 관광객은 을일 수밖에 없다. 친절과 암묵적인 계약에 기대어 여행을 하더라도, 돌발상황이 발생한다면 우리는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다. 언어도 안 통하고, 시간도 부족하고, 여윳돈도 없는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차선을 찾아서 다음 여행이라도 기분 좋게 하는 것은 아닐까. 여러 생각이 들었다.


 실랑이가 끝나고, 드디어 약속된 시간이 되었다. 우리와 함께 투어를 가는 분은 한국에서 혼자 여행 오신 여성분이었다. 그렇게 우리 넷과 다른 한국 여행객 한 명은 가이드가 준비해온 차량에 탑승했다. 그 유명한 소금사막으로 우리는 향한다. 우유니 사막투어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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