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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교선 Jun 03. 2021

남미 여행 일지 14. 신의 거울, 우유니 소금사막 3

20대 중반 남자 4명의 남미 배낭여행기

  짭짤한 바람이 불어오는, 새하얀 소금의 사막


 차를 타고 이동한 곳은 정말 말 그대로 소금 사막이었다. 물기 하나 없이 바짝 마른 소금들이 온천지에 모래처럼 가득했다. 하얀 모래를 밟고 있는 기분이었다. 바삭거리는 발자국 소리가 거친 느낌의 소금을 밟고 있음을 환기해주었다. 이곳은 원근감이 사라진 곳이다. 저 멀리 지평선을 기준으로 파란 하늘이거나 하얀 땅이거나. 그렇기 때문에 원근감을 이용한 사진이 아주 잘 나오는 포토 스팟 명소로 자리 잡았다. 그 기회가, 마침내 우리에게도 온 것이다!



 


 투어 안에 포함되어 있는 서비스였다. 가이드 조메르는 주섬주섬 차 트렁크에서 이것저것 물건을 꺼내왔다. 의자와 패들, 프링글스 과자통과 공룡인형이었다. 우리는 미처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는데, 기대되기 시작했다. 다양한 자세와 역동적인 사진과 영상을 남기기 시작했다. 의자에 앉아서 마치 지평선에 앉아있는 모습으로 사진을 찍기도 하고, 프링글스 통 위에 앉아있는 소인족처럼 사진을 찍기도 했다. 카메라 앞에 프링글스를 놔두고 멀리 의자에 앉아 있으면 마치 프링글스 통 위에 앉아있는 것처럼 나온다. 처음 보는 광경이 너무나도 신기할 따름. 언제 또 이런 사진을 찍어보랴.




 



 공룡을 카메라 앞에 두고 찍으면 마치 거대한 공룡이 그대로 나온다. 공룡에게 쫓기는 구도로 사진도 찍었다. 자그마한 인간이 영락없이 공룡에게 쫓기는 모습이라 웃음이 나왔다. 영상도 빠질 수 없었다. 프링글스 통에서 나왔다가 공룡을 발견하고는 허둥지둥 도망치는 장면이 연출되었다. 또, 한 사람이 앞에 있으면 마치 거인처럼 나왔기에 거인의 발에 밟히는 듯한 사진도 찍었다. 사진을 찍는 것 자체만으로도 즐거웠다. 









  사진을 잘 찍어주기 위해 조메르는 몸을 아끼지 않았다. 풍부한 경험을 뽐내는 베테랑의 모습이 보였다. 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 열심히 사진을 찍어주었다. 영어가 잘 통하지 않았지만, 손짓 발짓으로 우리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었다. 그의 헌신적인 촬영 덕분에 재밌는 사진, 인생 샷들을 건질 수 있었다. 사진을 다 찍고 난 후, 사진을 확인하는 과정도 정말 재밌었지만, 사진을 같이 찍는 것 자체만으로도 재밌는 경험이었다. 


 마른 사막 구경을 마쳤다. 다시는 못 볼 하얀 소금 사막들. 아마도 그 광경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원근감이 사라진 세상에서 놀다가 나온 것만 같다. 우리는 이렇게 투어가 끝일 줄 알았다. 건기 때의 하얀 소금사막을 본 줄 안 것이다. 그래서 촉촉한 사막을 못 보는 줄 알고 있었다. 그것은 우기 때의 사막이니까. 그런데 차를 타고 또 이동한다 했다. 어디로 가나 했더니, 대망의 촉촉한 소금사막이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물기가 찰랑찰랑하게 발목까지 오는, 마르기 전의 염전 같은 곳이었다. 




신의 거울, 그 안에 들어가다






 바로 이곳이다. 신의 거울이라 불리는 곳. 얕게 깔린 물기가 하늘을 반사하는 그곳. 남미 여행의 가장 큰 목적 중에 하나. 차로 가는 동안 얕은 물살을 가르는 소리가 기대감을 더욱 키웠다. 마침내 우리도 우유니 소금사막이 진경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윽고 차는 멈추었고, 서둘러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내 눈앞에 신의 거울이 펼쳐지리라! 


.

.

.


 그런데... 생각보다 하늘이 잘 비치지 않았다. 그냥 수면이 잔잔한 하얀 호숫가에 온 듯했다. 사막 위 잔잔한 수면은 그저 여느 호수와 다를 바 없이 주변을 연하게 비추고 있었다. 그토록 바랐던 하늘이 그대로 보이는 풍경은 아니었다. 하늘도 구름도 옅은 그림자처럼 담겼다. 하얀 소금이 도화지처럼 배경으로 남았다. 동화 같은 거울의 모습은 아니어도 자연이 만들어낸 수채화 같은 풍경 즈음은 되었다. 우리는 차에서 내려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으며 놀았다. 이 마저도 경이로웠기에. 소금물을 튀기며 점프샷도 찍고, 광활한 뒷 배경과 함께 독사진도 찍어주었다. 청아하게 맑은 물 그리고 푸른 하늘. 속이 시원해지는 풍경이다. 사이다 혹은 포카리스웨트가 자연이라면 분명 이런 모습일 것이다. 하늘이 맑아 청량감이 느껴진다. 하늘마저 회색빛으로 우중충했다면 우린 실망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



 






 세상을 비추는 시간, 하늘이 우유니를 들여다보는 순간


 그런데! 조금 시간이 지나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서서히 땅이 하늘을 닮아가고 있었다. 물가에 하늘이 담기기 시작한 것이다. 답은 해의 위치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해의 위치가 변했고, 햇살이 변하면서 점차 물이 하늘을 반사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림자가 길어질 즈음, 우리가 바라고 바라던 풍경이 눈 앞에 펼쳐졌다. 경이롭고, 놀랍고, 아름다운 모습이다. 사진으로만 보며 로망을 품게 한 그 풍경. 내 눈앞에 실제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마침내, 신의 거울을 마주하였다.






 하늘과 땅의 경계가 보이지 않았다. 사방이 하늘로 가득 찼다. 하늘에도 구름이 흘러가고, 땅에도 구름이 흘러갔다. 참방 거리는 발, 하늘로 가득한 사방 그리고 불어오는 바람. 우리는 자연을 얼마나 많이 알고 있을까. 온몸으로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 모든 감각을 열었다 어쩌면 신이 소금사막을 만들고, 이를 자랑하기 위해서 하늘을 만든 것이 아닐까. 신이 예술가였다면, 소금사막은 가장 자랑스러운 작품 중에 하나로 당당히 선정될 것이다. 원 없이 원 없이 사진을 찍으며 시간을 보냈다. 다양한 포즈를 취하고 다양한 구도로 찍었다. 시시각각 달라지는 배경이 있어 그저 카메라 너머의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넋을 놓고 바라만 보아도 좋은 풍경이다. 순간을 만끽하며 눈이 시리도록 담아두었다.




저물어 가는 해, 시린 눈, 아쉬운 시간


 해가 지면서 지평선에는 해가 두 개나 떠올랐다. 해가 한 번에 두 개나 떠있는 듯한 광경을 언제 또 볼 수 있을까. 해는 우리를 기다려줄 새 없이 하나가 되어가고 있었다. 촉촉이 차오른 물가에 햇빛이 부서지면서, 하나가 되었다. 바람이 강해지고 기온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밤의 사막이 다가오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는 슬슬 추위가 느껴졌다. 이윽고, 사진이 가장 잘 나오는 시간 매직 아워가 찾아왔다. 이 때에 이르면 우유니는 완벽한 거울이 된다. 자연이 만들어낸 조명 아래서 우유니 사막은 지상 위부터 하늘까지 모든 것을 보여준다. 사람도, 차량도, 하늘마저도 모든 것이 담긴다. 슬슬 햇살은 노르스름한 황금빛으로 구름을 물들이기 시작했다. 


 

 





가이드 조메르가 우릴 부르더니 무언가를 시켰다. 카메라의 하이퍼 랩스 기능을 이용하여 재밌는 영상을 찍어준다고 했다. 우리가 포즈를 취하고 있으면, 조메르가 카메라를 들고 차를 탄 채 우리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영상을 찍어주었다. 차는 천천히 돌았고, 우리는 포즈를 내내 취하느라 힘들었다. 이게 다 멋진 영상을 남기기 위해서다라며 부들부들 떨리는 팔을 간신히 부여잡았다. 팔이 빠지는 줄 알았다. 처음엔 어리둥절했으나 찍힌 것을 보니 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유니의 배경과 우리의 재밌는 포즈가 그대로 비친 영상이 남았다. 조메르가 한 바퀴 돌 때마다 자세를 바꾸며 같은 포즈를 계속 취해야 했다. 영상에는 우리의 모습이 사막에 비쳐 완전한 대칭을 이루고 있었다. CG가 따로 없다. 거울 위에서 촬영한 것만 같았다. 우유니에서만 만들 수 있는 소중한 추억이다. 포즈를 취하는 내내 힘들었지만, 그만큼 값진 작품이다.






황금빛 우유니를 뒤로


해가 저물어간다. 구름이 다소 끼어 있는 탓에 지평선에 바짝 붙어 타오르는 태양빛은 볼 수 없었다. 불타는 태양이 하나가 되는 걸 보고 싶었지만, 그래도 구름이 해와 어울리며 신비로운 분위기를 만들어주었다. 처음에는 황금빛이었고, 금색으로 구름을 물들이더니 서서히 분홍빛이 여세를 몰아 사막을 물들였다. 하늘의 해와 땅의 해가 하나로 합쳐질 즈음에는 지평선이 금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오직 하늘과 땅을 빛으로 경계선을 만들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가는 게 아까울 줄이야. 분홍빛이었던 하늘은 다시 붉은 불꽃의 색으로 지평선을 태우기 시작한다. 구름은 점점 어두워졌다. 해는 마치 빛나는 공처럼 한 손에 들어왔었는데, 이제는 그 형체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반대편에서는 달이 떠오르고 있었다. 달도 해와 같이 사막에 비쳐 마주 보는 모습으로 두 개가 떠올랐다.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이 모습들을 눈에 담아내었다. 사진을 얼마나 많이 찍었는지 모른다. 투어 내내 사진을 찍는 것 자체만으로도 눈이 즐겁고, 그 순간순간이 행복했다. 사방을 가득한 경이로운 자연이 꿈속 세상인 것만 같다. 






 그렇게 해는 저물었다. 미약하게 지평선 너머의 불빛만이 남아 차를 타고 떠나는 우릴 밝혀주었다. 추위가 강해지고, 온 세상에 어둠이 내린 듯 어둑해질 무렵 우리는 소금사막의 끝자락을 바라보며 차에 몸을 실었다. 가이드는 무덤덤하게 차를 끌고 우유니를 떠났다. 하늘은 이미 타고 남은 숯처럼, 잿불처럼 미약하게 빛을 내뿜었다.








  붉게 타오르는 소금사막의 지평선과, 검게 그을린 구름을 뒤로하며 사막을 달렸다. 물기를 지나, 다시 마른 사막을 지나기 시작했다. 밤이 내린 소금사막은 마치 우주의 어느 소금으로 된 행성 같았다. 바지는 그날의 흔적을 기억하듯, 하얀 점으로 얼룩졌다. 저게 다 소금이라니, 바지가 짭짤해졌다. 




 



 우유니 시내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깜깜한 밤이었다. 내일 아침으로 먹을 컵라면만 산 뒤 바로 숙소로 돌아왔다. 사막의 밤과 새벽의 공기는 차갑다. 뜨끈한 국물이 우릴 녹여줄 것이다. 간단하게 씻고 침대에 쓰러졌다. 피로가 몰려왔다. 숙면을 취할 새도 없이 침대에 누운 채 눈만 잠깐 붙였다. 점프샷을 하도 찍어낸 탓인지, 허벅지가 아파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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