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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숙 Jul 09. 2024

우리집은 케이블 TV 안 봐요


거실에서 TV가 사라진 건 아이들이 중 고등학생 무렵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사실상 결혼할 때 혼수로 샀던 비디오비젼을 빼고는 TV를 산 적이 없다.

VTR과 TV가 결합된 제품이 새로 나왔던 무렵이었는데 

그 걸로 결혼식 영상도 보고 막내 시누이는 매일 퇴근길에 비디오를 빌려다가 밤늦게까지 오빠의 신혼방에 앉아 영화를 보기도 했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만화영화를 틀어놓고 저녁을 준비하기도 했고

김수현 드라마도 보고 무한도전도 봤었다.

(그 때 봤던 ‘시튼동물 이야기’, ‘그림 명작 동화’는 아직도 아이들 기억에 남아있다고 했다.)

막장드라마의 뻔한 소재가 식상한 게 먼저인지 이런저런 하는 일이 많아진 게 먼저인지

언제부터인가 TV가 재미없어졌고 집 안을 그득 채우는 TV소리가 소음처럼 느껴졌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부터 시작해서 잠자리에 들 때까지(때로는 잠이 든 후에도) K가 집에 있는 시간에는 온통 TV소리로 왁자지껄한 분위기에는 정신이 다 산만해졌다. 

나는 좇아다니며 TV를 껐고 K는 어느틈에 다시 켜기를 반복하기도 했다. 

중간에 친구가 쓰던 것을 가져왔던 29인치 텔레비전 상태에 문제가 생겼을 무렵

거실을 서재로 만든다는 명분으로 TV를 치웠던 걸로 기억한다.

세상이 다 조용해진 것 같았다. 




몇 해 전, 동생집에 와 있다는 엄마를 만나러 갔었다.

우리집보다 두 배 가까이 넓은 그 집에는 대형 TV가 있다.

한 낮이었는데 엄마와 올케가 소파에 나란히 앉아 TV를 보고 있었다.

TV에서는 트로트가 나오고 있었고 처음 보는 가수들이 등장해 노래를 불렀다.

음악에 특별히 관심이 없는데다 특히나 트로트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 그냥 멀뚱히 소파 끝에 꿔다논 보릿자루처럼 앉아있었다.

올케는 가수가 나올 때마다 그의 사연을 얘기하며 더러 눈물을 글썽이기까지 했다.

그 즈음에 한 방송사에서 트로트 오디션을 했고 그 곳을 통해 배출된 남성 트로트 가수들이라고 했다. 


“나는 트로트가 너무 좋아요. 요즘 매일 어머니랑 트로트만 듣잖아요.”


올케는 사뭇 벅찬 표정으로 트로트를 예찬했다. 

트로트 무식자였으니 같이 변죽을 맞춰주지는 못했지만 엄마도 즐겁다니 그러면 됐지 싶었다. 

문제는, 엄마가 우리집에 오실 때였다.

그 무렵 우리는 19인치쯤 되는 컴퓨터 모니터에 TV안테나를 연결해서 뉴스를 보거나 축구경기를 보고는 했다.

이 집으로 이사를 온 후에는 프로젝터를 달아 스크린을 펼쳐 넓은 화면으로 보기도 하는데 그 절차가 이만저만 번거로운게 아니다. 그래봤자 채널 수가 늘어나는 게 아니라서 지상파 삼 사, 아니 EBS 두 개까지 채널 여섯 개가 고작이다.

큰아들이나 작은 아들네 집에서는 오래된 드라마에서부터 사극이면 사극 트로트면 트로트 등 입맛대로 골라 볼 수 있는 채널이 수도 없이 많은데 비하면 엄마에게 우리집은 절간이나 다름없을 터였다.

그나마 방송 삼사에서 아침 드라마를 방영할 때는 11번 다음 6번, 6번이 끝나나 싶으면 채널은 어느새 7번, 9번으로 돌아가는 등 엄마의 TV 시청에는 다 계획이 있었다. 

그러느라 엄마가 집에 와 계실 때는 그나마 보던 뉴스시간도 드라마에 양보해야했다.


지난 겨울, 오빠집에 갔을 때 올케언니가 물었다.


“아니 왜 TV를 안 사요?”

“TV...있는데요?”

“지상파 방송만 나온다면서요.”


그 때 옆에 있던 K가 말했다.


“우리는 케이블 TV 안 봐요.”

“그거 뭐 얼마 한다고요. 재미있는 건 다 케이블에서 하더구만.”

“지상파 채널도 다 못챙겨 봐요. 거기 없는 건 OTT로 봐도 되고요.”


허세가 아니라 사실이 그랬다.

TV 자체를 잘 켜지 않으니 채널이 부족해서 아쉬울 일도 없었다. 



어느 일요일 아침, 밖에는 비도 오고 몸이 나른해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불현 듯 마루 바닥에 길게 누워 텔레비전을 보고 싶었다.

낮에는 빛 때문에 화면이 밝아, 보이는 게 없는 프로젝터 TV말고 K의 방 안에 있던 쪼꼬미를 데리고 나왔다. 

그리고는 쿠션을 베고 거실 바닥에 누워 TV를 봤다.

아침 시각인데 라디오스타 재방송을 한다. 

끝나고 나니 다음은 서프라이즈 였던가? 

저 프로그램이 아직도 하고있네 싶어 반가웠다.

텔레비전라는게 그랬다는 기억이 떠올랐다.

한 번 보기 시작하니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 채널 저 채널 뒤적거리게 된다.

빈둥빈둥 하다보니 입이 궁금해져서 군것질 거리를 찾게 됐다. 

그런 느낌이 얼마만인지, 이런 안온함을 느껴본 적이 있기는 했는지 새삼스러웠다. 

엄마도 이렇게 TV와 친구가 되어 갔던 걸까?

엄마를 위해서 60인치쯤 벽걸이 TV도 걸어놓고 케이블방송도 신청했어야 했나?


이후로 쪼꼬미 TV는 거실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매일 여섯시가 되면 맛집이며 시골에 있는 멋진 집, 카페 등 정보 프로그램을 보고 뉴스를 보고 

졸리지 않으면 예능 프로그램도 본다.

주말에는 늦은 시간에 방송했던 예능을 재방송으로 본다.

새삼, TV가 참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여전히 채널수가 부족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나도 엄마처럼 TV와 점점 더 친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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