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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새 May 20. 2022

따강가Taganga, 스킨스쿠버로 시작된 인연

따강가 생활의 첫 장

  “형, 같이 다이빙(스킨스쿠버) 자격증 딸래?”


  초등학교 때 학교에서 단체로 수영장에 간 적이 있다. 바다는커녕 그나마 있던 개천도 소 똥물에 오염되어 있던 동네에서 자란 시골 아이들에게 수영장이란 꽤나 유니크한 경험이었을 것이다. 선생들의 취지는 기본적인 수영을 가르치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거나 말거나 나는 첫 시간부터 물에 얼굴을 쳐박는 것이 어찌나 무서웠는지 그 자리에서 울고 말았다. 왜 그것이 무서웠는지 설명하지도 않고 아이가 울어댔으니 수영 강사들은 나를 수영장 한 켠에 앉혀 둔 채로 계속 수업을 진행했다. 시간이 지나 좀 진정이 되면서 부끄러움과 수업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 나를 감쌌던 것 같다.


  시간이 많이 지난 후에도 대학교 친구들과 몇 번은 바다에 갔다. 난 여전히 바다에 뜨라면 얼굴과 발만 겨우 내놓고 숨을 쉬었다. 친구들은 몸에 힘을 빼라고 했다. 난 입과 코로 물이 자꾸 들어오는데 어떻게 몸에 힘을 빼냐고 반문했다. 몇 번이고 더 몸에 힘을 빼라는 말을 하던 내 친구들은 이내 포기하고 간신히 둥둥 뜬 내 얼굴에 물을 끼얹곤 했다.


  “형, 따강가Taganga가 다이빙 자격증 가격이 싸기로는 세계 2등이래. 거기 가서 따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다이빙 하자. 일주일이면 딴대. 수영 못해도 엄청 쉽게 딸 수 있대.”


  하지만 상진이는 끈질겼다. 결정적으로, 상진이는 나를 설득하는 방법을 잘 알았다. 난 여행객이라기엔 장기 계획이 부재했고 자주 다른 여행자들의 계획에 합류하며 지냈다. 이민을 온 것은 아니었으니 일터나 스케줄도 없었다. 돈을 아껴서 지내야 한다며 싸게 싸게 할 수 있는 것들이나 먹을 것들을 찾아 헤매었다. 마침 일전에 만났던 장기여행자 형누나들이 말로 풀어내던 물 속 세상의 모습도 궁금했다. 수영을 못해도 된다니! 마침 상진이와 여행도 해보고 싶었기 때문에 우리는 급작스럽게 따강가로 떠나자고 결정했다.






  우리는 보고타에서 산따 마르타Santa Marta로 갔다. 비행기로만 1시간 하고 반이 더 걸리는 거리였다. 우리는 산따 마르따 공항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시내로 갔다. 시내 광장 앞에는 따강가행 버스가 있었다. 버스는 자기가 몸소 우리의 행선지 따강가가 얼마나 촌구석인지 보여주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버스 앞에 붙은 안내판은 촌스러운 폰트들이 제각각의 글자크기로 인쇄된 A4용지로, 디자인이 엉망이었다. 버스는 길을 무단횡단하는 인파를 헤쳐가며 앞으로 나아가야 했기에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그런 와중에도 엔진은 힘에 부친다는 듯 자주 그르렁거렸다.


  나름 큰 도시인 산따 마르따의 시내를 느리적느리적 지나면서 몇 명의 손님이 탔다. 그들은 대개 양손 가득 짐을 들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내 어린 시절 읍내 장에서 나물과 반찬거리를 한 보따리 사 집으로 돌아가는 할머니들을 연상케 했다. 아마도 따강가에는 큰 마트가 없어 산따 마르따 시내까지 나와야 구할 수 있는 물품들이 있을 것이다. 그때야 우리에겐 생소한 풍경이었지만 나중에는 우리도 따강가에서 한 달을 지내면서 고기 파티를 벌이고 싶을 때마다 산따 마르따에 나가서 장을 봐오는 것이 버릇처럼 되었다.


  버스는 외곽순환도로를 가로질러 따강가 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포장이 되지 않은 도로를 조금 지나자 산을 넘는 언덕이 시작되었다. 길 왼쪽으로는 하얀 빛이 도는 돌들과 회색빛 흙으로 된 가파른 언덕이 있었고 오른편에는 우리가 방금 빠져나온 산따 마르따가 보였다.


  여행 유튜버들이 영상에 담기에 좋은 풍경은 산따 마르따 도시가 보이는 쪽의 풍경이었겠지만 내 머리 속에는 반대편 가파른 언덕 위로 듬성듬성 나있던 선인장들과 관목들, 그리고 판자대기만 얹은 채 무미건조한 시멘트로 지탱되고 있었던 집들이 더 선명하다. 그런 집들에는 콜롬비아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창살도, 마당도 없었고 집 대문조차 없었다. 간혹 집 앞에 세워진 오토바이나 널려 있는 빨래들, 앞 길가에서 노는 아이들을 보며 저 집에 누군가 살긴 한다는 것을 유추해볼 따름이었다. 비를 막기조차 어려운 집에서 오토바이나 귀중품은 어떻게 보관할 것이며, 돈은 어디서 벌고 있을 것이며, 등등을 생각하면 나까지도 아찔해졌지만, 집 앞에서 노는 아이들의 표정은 천진한 것이 여느 집들과 다를 바 없었다.



  그렇게 꼬불꼬불한 길을 넘어 작은 산을 하나 넘으면 비로소 따강가의 근사한 해변이 보이기 시작한다. 따강가는 전형적인 만이었고, 우리는 만의 한 측면을 따라 내려왔기 때문에 버스를 타고 오며 따강가가 가진 만의 멋진 풍경을 한 눈에 담을 수가 있었다. 전망대Mirador와 몇몇 비싸 보이는 호텔들을 지나면서 방금 넘어온 산 반대편 집들과의 대비에 잠깐 아득하고 있자면 버스는 따강가 초입에 닿는다. 당시 초행길이었던 우리는 사람들이 우르르 내리자 숙소는 좀 더 가야 있는 것도 모르고 따라서 버스에서 우당탕 내렸다. 내려 보니 같이 내린 승객들은 각자의 집으로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고, 갈 곳을 모르고 어리둥절하고 있는 것은 우리 둘뿐이었다.


  그런 우리에게 오토바이를 탄 청년 둘이 다가왔다. 껌을 씹는 모양새나 우릴 보며 이죽이죽대는 것이 그 동네에서 좀 노는 녀석들인가 싶었다. 우리에게 다가온 아이들을 먼발치에서 지켜보는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도 몇 있었다. 상진이는 차분하게 스페인어로 숙소들이 어디 있는지를 물어봤고, 치안에 대해 물어봤다. 스페인어가 짧던 나는 상진이 뒤에 서서 이 어촌에서 가장 위험해 보이는 아이들에게 치안에 대해 물어보고 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우리의 한 달 짜리 따강가 생활의 막이 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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